[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58] 바다 한 가운데서 꿈틀대는 은빛 모래톱의 진실
하루에 두 번씩 모래언덕이 솟는 서해 적막한 섬, 이작도
이작도 큰말선착장에 도착한 여객선. 뒷편 섬은 소이작도
이작도는 옹진군에 소속된 섬으로 인천항에서 44㎞ 해상에 떠 있다. 대이작도와 소이작도로 구성돼 있는데 대이작도의 면적은 2.5㎢, 소이작도는 1.3㎢이다. 이작도의 유래는 옛날에 해적들이 숨어 살았다고 하여 이적도라 불렀다고 한다. ‘이적’이 다시 ‘이작’으로 변하면서 이태리 이(伊), 지을 작(作)자의 이작도가 되었다.
옛날에 운둔의 섬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무공해 섬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사람 성씨에 자주 등장하는 이태리 이(伊)자가 섬 지명에 등장하는 것도 특이하다. 그만큼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섬이 이작도이다. 현재 이작도에는 1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작도 앞 바다 무인등표. 자월도 승봉도로 오가는 뱃길의 이정표이다.
이작도에는 3개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있다. 풀치해수욕장은 서해에서 아주 맑고 고요한 해변이다. 전라도 진도, 충청도 무창포, 경기도 제부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작도 바다가 갈라지는 섬이다. 썰물 때 바다 한 가운데에 은빛 모래섬이 형성돼 햇살에 눈부시다. 밤이면 달빛에 비친 하얀 모래섬의 바다와 하늘이 맞붙어 있는 모양새도 아름다운 풍경화이다.
이 모래섬은 풀등과 풀치라고 부른다. 모래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모래풀이라고 불러왔는데 그 모래톱의 등성이가 드러난다고 해서 풀등이라고 부른다. 또 풀치는 물이 흐르는 곳의 가장자리에 두둑하게 생긴 언덕 모양의 둔치에 모래풀이라는 단어를 합쳐 불렀다는 설과, 갈치 새끼인 풀치 떼들이 푸른 바다를 길게 휘어가는 모양새라고 해서 그리 불렀다는 설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실제 이작도 섬 모롱이에서 내려다보면 풀치는 영락없이 갈치 떼가 바다 한 가운데를 휘젓고 가는 모습이다.
바다를 가르는 풀등의 모습
어쨌든 풀치 떼 형상의 모래섬을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바다 밑으로 사라지고 만다. 풀등의 면적은 자그마치 30만 평. 이 넓은 모래언덕이 바다를 두 갈래로 나누어 놓다가 다시 밀물에는 모습을 감춘다. 이런 모양은 정확히 12시간25분54초 주기로 매일 두 번씩 반복한다. 한 번씩 바닷물이 빠지면 은빛 모래섬이 수면 위로 솟았다가 6시간 동안 이방인들의 눈길을 잡아끌다가 다시 밀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튼 이 모래섬이 신비로운 것은 이 뿐만 아니다. 모래가 아주 가늘어 감촉이 부드럽고 맑다는 점이다. 손바닥 위에 모래를 얹어 놓고 입으로 불면 날아갈 듯이 가볍다. 또한 은빛 햇살 반짝이는 모래 위로 게 구멍을 뚫려 잇는데, 이 구멍에서 나온 작은 방게들이 기어 다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곳은 맞은 편 사승봉도와 함께 2003년 12월 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바지락 채취가 금지되었는데 2006년 6월부터 다시 허가가 나서 바닷가에 널린 바지락을 1인당 1kg 내외에서 채취할 수 있다.
풀등해변에는 파도가 밀려오면 살아있는 조개도 함께 밀려온다.
풀치 해변은 어른 가슴을 넘지 않을 정도의 깊이와 완만한 해안선을 타고 났다. 그래서 바다를 찾는 사람에게 호숫가를 찾는 느낌을 준다. 바닷물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동네 청년들이 태워다 주는 어선이나 모터보트로 건너갈 수 있다. 이용료는 5,000원 내외. 이작도는 송이산(소리산)과 부아산을 양 어깨로 출렁이는 섬인데, 풀등과 마주보는 산이 부아산이다. 아이를 업은 듯 보이는 이 산 정상에서는 인근 자월도 승봉도 선갑도는 물론 인천 시내까지 내려다보인다. 산과 산 사이로는 70미터의 빨간 구름다리가 만들어져 있고 정상에는 쉴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 이름 모를 수많은 야생화들과 조우한다.
평화로운 이작도 앞바바다를 지나는 여객선. 마주보이는 섬이 자월도이다.
그 다음 해수욕장이 큰풀안, 작은풀안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의 길이는 3km에 이른다. 수심이 낮고 조용해 가족단위로 즐기기에 좋은 여행 코스이다. 여름철에 해수욕은 물론 물이 빠져 나가면 고동, 낙지, 방게, 꽃게 등을 잡을 수 있다. 밤에 후레쉬를 들고 여러 조개와 해산물을 잡을 수 있다. 또 이작도 끝자락에 있는 계남리 해변은 모래가 밀가루처럼 가늘고 부드럽다. 앞 바다에는 섬 전체가 모래로 싸인 모래섬과 그 옆에 사승봉도가 마주한다. 해변에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하얀 백사장이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계남리 해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모래톱에 세워진 모래침식 측정기였다. 측정기는 모래톱이 50㎝ 낮아졌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해안가 사구도 모두 깎여 있었고 백사장에는 바위가 드러나 있었다. 이러한 모래톱의 유실은 요즈음 이작도 주민들의 골칫거리이다. 옹진군은 그동안 재정자립도가 낮은데다가 주민 소득원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모래 채취업에 큰 비중을 두는 행정을 펴왔다. 수도권 17개 바다모래 채취 업체는 매년 1600만㎥ 이상의 모래를 이 지역에서 채취해왔다. 그 대가로 2004년까지 연간 100억 원 이상의 공유수면 점용사용료를 옹진군에 납부해왔다.
노을을 몰고오는 하오의 햇살에 눈부신 큰풀안의 갯바위. 바위 끝에 걸쳐 있는 섬이 모래섬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거센 반발로 되돌아오고 있다. 한 주민은 “내 집 짓는데 이작도 모래를 한줌도 사용하지 않고 인천시에서 모든 모래를 사오는데 왜 우리 마을 모래를 마음대로 외부 업체에게 내주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지금처럼 마구잡이 모래 채취가 계속된다면 해안이 무너지는 속도는 앞당겨질 것이다. 그러면 어족도 고갈될 터이고 궁극적으로 옹진군도 주민도 모두 피해자가 될 것이다. 최근 이작도가 부쩍 언론에 등장한 이유도 이러한 생태계 파괴 현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옹진군이 군 재정을 늘리기 위해 모래 채취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관광자원과 어자원 개발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계남리 해변에서 한동안 해양생태계의 중요성을 되새김질한 후 해변 너머 계남 마을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가수 이미자 씨의 유명한 노래 ‘섬마을 선생님’의 영화 촬영지인 계남분교가 있다. 이미자씨의 애닯은 노래 가사는 이렇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지금은 응달진 운동장에 덤불뿐, 고즈넉하고 허름한 교실 흔적만 남아 섬 학교 유년 시절을 떠 올려보게 하지만 아직도 해마다 해당화는 피고 진다.
계남분교에 세워진 섬아르선생님 촬영기념비. 맞은편 섬이 승봉도이다.
이작도 맨 끝자락인 계남분교에서 산길을 30여분 걸어 도착한 풀등 앞 민박집 펜션. 이국적인 펜션도 풀등도 모두 노을에 젖어들고 있었다. 민박집 주인 김유숙씨(49)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이에게 섬마을선생님 촬영 이야기를 물었더니 “그 때 감독님이 애기 업은 마을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막내 동생(김유호)을 업고 영화에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 때 그 시절 이야기 속으로 돌아갔다.
당시 분교는 이작국민학교로 불리며 전교생이 7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6학년 한 반만도 12명이었다.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던 시절, 그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땔감이 없어 산으로 가서 덤불 뜯고 솔가지 꺾어 저녁에 아궁이 불 지피던 일이었단다. 바깥소식에 어두워 인천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지도 몰랐다. 어른들은 대부분 파시를 따라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문제는 기상악화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바다에서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사실이다. 그 때 그녀의 아버지도 4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불을 지피던 그 시절을 들려주던 그이에게 솥 안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민박 온 손님들 간식으로 주려고 고구마를 삶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자 땅에 묻어두었던 항아리에서 김장 총각김치를 꺼내고 방금 그이의 어머님이 잡아 온 싱싱한 굴을 내놓았다. 시대는 변했어도 섬마을선생님 시절의 인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섬마을선생님 영화에 등장했던 김유숙씨. 지금은 마음씨 좋은 민박집 주인이다.
그런 정성과 사랑이 겨울바다를 찾은 우리 일행의 여행길을 더욱 정겨운 추억으로 빠져들게 했다. 한 때 이곳 섬사람들은 살기가 버거워 마을을 하나 둘씩 떠났고 이작도 전체 학생들이 다니는 이작분교 학생 수는 현재 12명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유숙 씨 가족들은 거꾸로 하나 둘씩 객지에서 돌아왔다.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을 이작도 사랑으로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에서 일부 융자를 받아 체험학습장을 겸한 이국적인 민박집 펜션을 지었다. 풀등의 중요성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이따금 언론에 등장한 것도 모두 그이의 가족들이다. 가족들은 풀등의 생태환경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봄철에는 광어들이 밀물따라 들어왔다가 썰물에 미처 따라 나가지 못하고 풀등 아래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작살로 잡아내는 고기잡이 방법을 선보여 여행객들에게 이색적인 체험과 추억 만들기를 선사하기도 했다.
이작도는 아직도 이처럼 순수한 어민들만큼 때 묻지 않은 섬과 바다를 간직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이 최근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섬으로 급부상 중이다. 인천지방해영수산청이 지난해 피서철 특별수송기간에 섬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인천 앞바다 섬 중 가장 많이 찾는 곳이 5,3174명의 덕적도였고, 그 다음이 바로 이작도였다. 여름 피서철만 이작도를 찾는 여행객 수는 36,738명에 이르렀다. 그 다음이 35,652명이 찾아간 백령도였다.
민박집 바로 앞 풀등 위로 밀물이 밀려오고 노을도 젖어들고 있다. 오른쪽 작은 섬이 선갑도이다.
섬 하면 뭐니 해도 낚시하는 맛일 거다. 이작도에서는 봄과 가을에 우럭, 농어, 망둥어, 놀래미가, 광어, 도다리, 숭어, 돌돔 등이 많이 잡힌다. 그래서 강태공들의 발길도 잦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낚시가 어려운 편이었다. 그래서 겨울 나그네들은 한적한 겨울바다에서 사색하기를 즐기고픈 로맨티스트에게 적격이다. 물론 겨울에 낚시가 잘 안 된다고 해서 회를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하면 바다에 그물을 털러나간 주민들을 알아내 포구에서 싸고 싱싱한 회를 구입해 요리해 준다. 1㎏당 3만원 내외이니 아주 저렴한 편이다. 여기에 해삼, 멍게, 굴, 다시마, 파래 등은 거저 올려준다. 특히 이작도의 겨울 별미 중 하나는 이 섬의 특산물인 자연산 굴이다. 깨끗한 모래톱에서 채취한 것으로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직접 구입할 수도 있는데 1㎏당 1만원 내외이다.
● 이작도로 가는 길
1.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이작도(1시간 20분소요)
2.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이작도(성수기 1일 3회, 동절기 1일 1회 1시간 40분소요)
-배편문의:우리고속훼리(032-887-2891~5)/진도운수(032-888-9600)/대부해운 (032-886-3090)/인천항여객터미널(1544-1114)
3. 섬 안에는 대중교통이 없고 민박집 차량으로 이동한다. 섬 안에는 펜션형 민박이 많다.
- 풀등민박(032-834-1224. 1일 4만원).
4. 배에서 내리자마자 매점에서 먹거리를 준비한다. 이작도에는 가게가 없고 현금만 사용할 수 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 이글은 섬과문화(www.summunwha.com)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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