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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불감증과 미디어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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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방울 2007. 11. 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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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상식과 원칙을 파괴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쏟아낸 말들을 무슨 사서삼경의 구절인 양 중계한다. 한 개 기업이 대한민국 심장부 검찰수뇌와 국가청렴위원장 등에 5백 만 원에서 수 천 만원의 돈을 줬다는 사실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이회창 전 총재 출마는 정도가 아니다”는 한마디를 1면 머리기사로 부각한다. 정책과 역사적 인식보다 정치공방이 압도한다. 한 기업이 국가조직을 ‘권력시장 마케팅’으로 삼은 경악스러운 뉴스야말로, 특이성, 근접성, 의외성, 영향성(impact), 부정성(negativity)이라는 기사가치 조건에 맞는 것이다.


폭로자는 ‘뇌물’이라는데 굳이 ‘떡값’으로 용어를 순화한다. 명절 전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는 정겨운 보너스가 ‘떡값’이다. 그런데 이를 일부 장사꾼과 정치꾼은 합법적 환유의 키워드로 악용해왔다. 그 쇠사슬에서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유독 삼성공화국 앞에서 관대한 메이저 언론의 순위는 삼성광고 수주 순위와 일치한다. 제시 잭슨의 “언론 자유의 가장 위험한 적은 언론 자신이며, 이 무서운 사실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진단과도 일치한다.


사실 2005년 이상호 기자가 공개한 X파일에 97년 9월 명절 전에 삼성이 검사들에게 문제의 돈을 돌렸다는 내용이 있다. 문제는 언론의 침묵이다. 지난달 27일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할 당시도 침묵했다. 사제단이 세 번째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무려 17일간도 침묵했다. 마침내 네티즌 분노가 폭발하고 시민단체가 ‘삼성․검찰․언론의 동맹관계’라고 일제히 비판하자, 마지못해 보도했지만 검찰과 삼성의 반박을 사제단과 자체 취재기사 분량보다 많이 할애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5백만 원은 떡값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 1인당 세금 부담액은 532만원이다. 신음하는 300만 신용불량자와 577만 명의 비정규직들에게 5백만 원은 자괴감의 무게일 뿐이다. 전국 대학생 절반 수준인 56만 9,000명이 휴학 중이다. 학기당 등록금이 인문계 5백만 원, 이공계 1천만 원이다. 그들은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고 부모는 억장이 무너져 군대를 자원케 하고 시간 알바를 선택케 한다. 한강에서 자살한 휴학생 유서에는 취직의 고민이 짙게 배어 있었다.


<한겨레>는 지난 10일자 1면에 이명박후보가 두 자녀를 자기회사에 유령직원으로 위장 채용해 월급을 지급해왔는데 이는 횡령과 탈세에 해당한다고 보도했다. 채용 시점은 서울시장 재직 때부터이다. 네티즌 분노는 거셌다. 대변인은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당일 댓글만 2만여 건을 넘었다. 결국 이 후보는 ‘나의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수년간의 일을 ‘한 순간의 작은 잘못’을 의미하는 ‘불찰’ 표현으로 넘길 일은 아니다. 수백억 재산가가 자녀 월급 경비처리로 세금을 덜 내려 한 의도는 이 땅의 수많은 월급쟁이와 셋방살이 인생의 희망을 가로 젓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2대 교역국가이다. 그러나 부패지수는 10점 만점에 5.1로 후진국 수준이다. 부패지수만큼 검증저널리즘 실종지수도 낮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검증의 규율(discipline of verification)이다. 언론에게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일종의 편파보도이다. 불공정보도 유형 중 대표적인 것이 ‘묵살 혹은 은폐’, ‘일면보도’, ‘과장과 축소’, ‘현상만 보도’, ‘후속보도 생략’, ‘편파적 분석’ 방식이다.

 

죄 짓고도 숱한 논리로 되레 큰소리치고 여론을 호도하는 그들의 리그를 바라보는 서민들은 속이 들끓는다. 그 유일한 버팀목이 언론이다. 그러나 역대 최악의 관권선거를 능가한 언권선거가 지속 중이다. 저널리즘의 첫째 의무는 진실추구이다. <워싱턴포스트>지의 행동기준과 윤리규정이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까닭은 무엇인가? “첫째, 중요성이나 의미가 큰 사실을 생략하는 어떠한 이야기도 공정하지 않다. 둘째, 중대한 사실을 희생시키고 기본적으로 무관한 정보를 포함하는 어떠한 이야기도 공정하지 않다. 셋째, 독자를 의식적으로 오도하거나 속이기 조차하는 어떠한 이야기도 공정하지 않다. 넷째, 교묘하게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들로 기자가 자기의 감정을 숨기는 어떠한 이야기도 공정하지 않다.”

 

<기자협회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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