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직도 창밖으로 줄기차게 내립니다
일자로 꼿꼿하게 서서 내리던 비가
허리가 어팠던지
아니면 종강이가 아팠는지
저녁무렵부터는 비스듬히 내리네요
저렇게 내리다가
아예 길바닥에 내리누으면 안되는데
물 첨벙첨벙 사람의 길이 지워지는데
아예 고무줄 주욱 당기듯이
하늘로 당겨 올라 갈일이지...
저 비는 무슨 사정이 깊어
진종일 내리는 걸까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
밀린 숙제를 하려는데
도체 손에 일이 잡히질 않습니다
어쩜 빗방울도 많은 상심과 고뇌에 가득차 있는지 모르죠
하긴
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임하면서
얼마나 많은 산하를 건너고
얼마나 사연 많은 집집을 건너
예까지 왔겠습니까?
그렇게 비가 오면서
세상만사 잡념들을
쓸어 왔을 터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한해 끝자락까지
죄다 쓸어모아 망년회 술잔 기울일
그 포장마차 연탄불에 다 태워버리고 싶었겠지만
세상은 맑은 물로만 살 수도 없는 일이서
적당히 먼지와 번뇌의 찌꺼기들을 모아
저렇게 적시고 있을 터입니다
그렇게 내리면서 세상사 다 잊으라는 뜻일 겝니다
빗줄기는 그렇게 비우고 있습니다
빗줄기는 그렇게 버리고 떠나는 중입니다
늘 서서 내리는 저 빗줄기,
빗줄기는 세상을 그렇게 토닥이면서
열반하여 갑니다
그렇게 빗줄기가 훑고 간 자리로
눈이 내리겠지요
눈발이 포물선으로 휘어지며
허공에 나부끼겠지요
눈은 직선으로 내리지 않습니다
눈은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합니다
눈이 하얀 허공에 일렁이며 내리는 것은
한줌도 안된 세상에서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일 겝니다
그래서 눈은 뿌리며 내립니다
한 줌 두 줌씩
허공에 버리면서 내립니다
우리가 밭붙고 선 이땅에 내려와서는
눈물처럼 녹아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한해가 기울겠지요
눈발 속에서 말입니다
그 눈 밭에 묻어 놓은 묵은 김치처럼
묵은 해는 영원히 지구 밖 어느 섬으로 밀려나겠지요
어차피 버리는 세월들
우리는 왜 그리 바둥바둥 살아왔는지...
이제 새해 새 징검다리를 건너갑니다
아니 단절될 수 없는 세상
어제와 오늘의 구름다리를 건너갑니다
무거운 짐 12월쯤에서 내려놓고'
가뿐히 눈발로 날리면서 새해로 건너 가지요
그렇게 홀연히 떠나보지요
굳바이 2004
오케이 2005!
2004.12. 섬 사무실에서
한방울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