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17] ‘눈 내리는 날 모닥불에 조개를 구으며’
우리 서로 어깨동무하여 따뜻한 불꽃이 되자
눈 내리는 공사장에서 일꾼들이 모닥불에 조개를 굽는다
옛 양계장 터를 파헤쳐 판판한 주차장으로 고르는 중인데
흙무더기 팔수록 검게 그을린 판자더미들에 갇힌 닭울음소리
일제히 눈발로 일어섰다
질척이는 흙 털며 군데군데 끌어모아 불 지핀 모닥불
붉은 닭 슬기 불꽃 일어 석쇠 붉게 달구었다
밑불을 끌어내 화덕에 고구구마와 오겹살 호일로 싸 넣어두고
밑불 위에 생굴, 청어, 피조개, 소라, 바지락이 파도소리로 타들어갔다
눈은 내리는데, 하염없이 눈 내리는데
판자더미 서로 가슴 맞대 피어 문 불꽃,
쐐주 한 잔에 조개를 구워먹는 어느 하룻날
매운 바람 휘돌아 눈시울 붉힌다
문득, 어릴 적 아랫목 데피고 실가리국에
따뜻한 밥 말아주던 그 장작불 맵게 탰다
눈발 장작어깨 다독이며 눈물 흘려 적신다
석쇠 위 하얀 생굴 푸른 고등어에 짠바람 타들어가는 소리
조새 찍어 싸면서도 굴뿌리는 넉넉히 남겨두던 아낙네들
똑딱선 통통대는 화도 앞 바다 그물에 걸린 새끼 고등어 다시 방생하던
그 넉넉함이 공사장 모닥불 위에 눈발로 휘날린다
그 뜨거운 사랑 불붙어 장작 옹이 튀는 소리
사랑도 삶도 불붙고 보면 널빤지에 붉게 박힌 못처럼 튀는가
눈발, 참 무심히 파도소리 쏟아놓고 드러눕는다
-(박상건, ‘눈 내리는 날 모닥불에 조개를 구우며’ 전문)
사람들 가슴을 환장하게 흔들어놓고 낙엽은 지고 겨울이 성큼 다가섰다. 봄은 왔는데 정녕 봄이 아니라고 안타까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무는 한 해의 끝자락에 겨울이 서성이며 우리를 맞는다.
겨울이 추은 것은 결코 날씨 탓만은 아니다. 마음이 앞서 추운 까닭이다. 얼마 전 공사장에서 일꾼들과 함께 곡괭이질을 한 적이 있었다. 눈은 내리는데, 하염없이 눈은 내리는데 시린 손끝과 눈방울에 따뜻한 전율을 울리는 풍경을 목도했다. 일하며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검게 타 잿물 질척이는 흙더미에서 판자더미를 찍어쌓던 일꾼 몇 명은 파라솔을 펴 놓고 판자더미를 장작불 삼아 생선과 조개를 굽는 것이었다. 서로 어깨 걸고 불쏘시개가 되어 벌겋게 타오르던 모닥불. 그 뜨거운 불꽃 열기에 대못이 붉게 이글거리더니만 이내 툭, 튕겨 나갔다. 내 가슴에 박힌 아픈 옹이 하나도 함께 튕겨 나갔다.
우리네 삶도 사랑도 어깨동무하면 함께 뜨거워지는 법. 서로 보듬는 열정에는 아픔도 서러움도 타닥, 탁탁, 타오로는 법. 생채기도 툭, 툭 튕겨 나가는 법. 구은 조갯살과 익은 생선의 속살을 꺼내 물면서 가슴은 이내 뜨거워지고 남녘 고향 섬이 그토록 그리워지는데, 눈발은 아무 일 없는 듯 왜 그리도 무심히, 무심히 하얗게 휘날리던지....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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