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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동포들은 ‘뜨겁게’ 울었다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7. 8. 2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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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요코하마 동포들은 ‘뜨겁게’ 울었다

광복절 62주년기념 한국전통공연 취재기

총영사, 민단 단장 그리고 동포들이 요코하마 행사장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5시간 동안 함께 한 2천여 동포들의 만남

지난 8월 15일 일본 가나가와현 민단(단장 은종칠)은 광복절 62주년 행사를 요코하마 행사장(간내홀)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장 5시간 동안 치렀다. 민단은 기념사에서 북한에게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정부에게는 탈북자 지원과 납북문제 해결을, 일본 정부에게는 지방참정권 실현을 촉구하는 한편, 한일우호 증진과 재일 한국인의 위상 강화를 위해 민단은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결의했다.

기념사를 하고 있는 박종철 총영사와 은종칠 단장 등 각 지부장들 


박종철 요코하마 총영사는 기념사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빈국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었다”면서 “민단을 중심으로 한 재일 한국인이 조국에 기여한바 크며 이는 매우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고 격려했다. 만세삼창을 끝으로 기념행사를 끝낸 이날 광복절 행사가 내내 주목을 끈 것은 재일동포들의 끈끈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각종 기념행사장 풍경이라는 것이 ‘형식적’ 식순을 마칠 즈음 뿔뿔이 흩어지던 것과는 다르게 이날 동포들의 행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참여폭이 커졌다. 2층 홀로 구성된 대극장을 가득 메웠는데 어림짐작 2천여 명이 훨씬 넘었다.


45년 해방 이후 타국에서 갖은 고생을 한 민단 동포들의 행사가 궐기대회와 정치적 이데올로기 무대가 아닌 문화 중심으로 진행되며 시종 우리 전통문화를 즐기고 사라져 간 것 들에 대한 향유의 열망이 참으로 대단했다는 점이다.


민단, 동포 2․3세를 위한 전통문화 계승 작업에 박차

일본에는 48개 민단 지부가 있다. 특히 가나가와 본부에는 9개 지부가 있고 특히 민단 중 유대관계가 끈끈하고 유일하게 전통문화를 통해 동포 2세와 3세들에게 조국에 대한 향수와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지난 97년 전통무용가 천명선씨를 중심으로 의기투합하여 2000년에 문화사업추진위원회를 꾸려 천명선씨가 위원장을 맡았다. 천 위원장은 이번 광복절 62주년 행사를 한국 전통예술 특별공연을 중심으로 기획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민단 2층에 자리잡은 동포2세 문화도량인 천명선 연구소에서 갑자기 플래시가 터지자 놀래고 있다.  


천명선 문화추진위원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동포들의 위상은 견고해지고 있지만, 가슴 깊이에 뿌리내려야 할 애국심과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관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면서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우리 것보다는 무의식적 일본문화에 휩쓸려 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것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민단가’에 스며 있는 조국애와 금수강산에 대한 그리움의 흔적만큼은 지워버리지 말자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민단가는 이렇다. “맑은 하늘 꽃피는 동산 그리운 내 조국/가슴에 지니고 힘차게 사는 우리는 대한의 겨레/이성의 풍상은 거칠고 매워도 우리 앞길 막을 자 없나니/보아라 눈보라 무릅쓰고 피어나는 매화꽃”

 

그가 상징어로 말하고픈 ‘매화꽃’의 의미를 웅변하듯 요코하마 민단 건물 2층에는 각종 전통악기를 구비한 청소년 전통문화 도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10여 년째 동포 2세들을 상대로 한국 문화예술 전승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식후 행사의 첫 무대로 그 2세들이 준비한 춤 솜씨를 선보였다.


공연단도 관객도 ‘한국인, 한국의 풍경’ 속에 뜨겁게 젖어

그에게 자녀들의 미래를 맡긴 동포들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공연장에는 팔순의 노인에서부터 아이들을 보듬고 입장한 동포 2세, 3세, 4세까지 그 연령층이 다양했다. 첫 프로그램은 경기민요 ‘황진이’. 서울과 경기도지방에서 전승되는 경기민요는 가락이 많고 경쾌한 도시풍의 노래여서 참석자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호흡했다.

공연을 앞두고 동포2세 제자의 분장을 해주고 있는 무용가 천명선 

 

동포 2세들이 그간 갈고 닦은 춤솜씨를 무대에서 펼쳐보이고 있다

 

그 다음은 ‘자연의 소리’라는 제목이 붙은 가야금산조. 가야금의 오해향과 그 스승 문동옥 선생 장단으로 우려내는 자연의 소리는 잠시 들뜬 공연장 간내홀 분위기를 차분한 산천유곡 속으로 이끌어갔다. 이에 흠뻑 빠진 한 중년 여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야말로 천상의 소리인데, 한국의 방송사들은 왜 한사코 ‘전설의 고향’ 배경음악으로나 사용하는지 모르겠다”고 뼈 있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다시 전통 민요에 목이 마른 사람들을 위해 김명순 선생의 한오백년, 강원도아리랑이 5분 동안 울려 퍼졌다. 그녀의 서정적이고 유창한 음색은 수십 년의 타향살이에 길 뜬 동포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들었다. 노래하는 사람이나 박수를 치는 관객이나 모두 그 애절한 가락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 순간만은 ‘한국인, 한국의 풍경’ 속으로 동행하는 순간이었다. 거창하게 민족정신과 민족애를 들먹이는 일보다 이처럼 전통예술의 한 가락 춤사위로도 얼마든지 뜨겁게 공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찬장에서 민단도 총감독도 공연단도 울음바다

객석과 무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순간, 아쟁(문동옥),대금(장영숙), 거문고(김지영), 가야금(오해향)으로 구성된 ‘한국 민속음악의 향기’라는 주제의 산조합주가 6분 동안 이어졌다. 남도 시나위 가락과 판소리 가락을 근간으로 한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등 민속장단의 틀에 맞춘 기악독주곡은 악기마다의 다양한 음색을 통해 한국 민속기악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한복과 소품을 사용해 무용과 함께 선보인 민요 ‘비나리’는 객석을 클라이맥스로 몰아갔다. 경기민요 전수자들인 이들 출연진은 김진영, 이순경, 이옥순, 강재연, 강은숙, 황진경, 장홍순, 이금연 등이다. 타국에서 긴 세월을 보냈을 할머니와 할머니는 물론 중년층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리움’, ‘전통예술의 향수’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공연단이 무대로 사라진 한참 후에도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멈춰 설 줄을 몰랐다.

 


김명순예술단의 비나리 공연

 

이날 광복절 행사가 주는 키워드 하나는 조국 혹은 고국에 대한 향수 그것을 선율에 담아내고 온몸으로 풀어내는 뜨거운 전율, 즉 서로간의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도 그런 것이 공연 후 민단에서 주최한 만찬장에서까지 공연 총감독인 천명선 위원장은 ‘타향살이’라는 노래를 선창했다. 민단 관계자, 그리고 한국에서 건너간 공연단도 합창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천 위원장은 눈물을 터뜨렸고 만찬장은 이내 눈물바다가 되었다.

 

만찬장에서 모두가 ‘타향’, ‘동포’, ‘고국’, ‘민족’...이런 단어들이 수없이 스쳐 지났을 터이다. 그렇게, 한국인에게 광복은 슬픔과 기쁨이 반반씩 버무려진 ‘그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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