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의 이색테마 주말농장 ‘쇠꼴마을’을 찾아서
맑은 공기와 황토길의 향기로운 흙 내음. 그 길 따라가 풋풋한 풀내음도 바람결에 실려 이방인의 걸음에 아름다운 동행을 한다. 조금 더 깊은 자연의 품으로 들어설 무렵, 물소리와 새소리가 적막한 농촌을 흔들어 깨운다. 이런 모든 자연의 소리를 원두막에 드러누워 듣고 있노라면 도체 도심으로 되돌아가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저 푸른 하늘의 구름처럼 그저 흘러가는 세월에 맡겨두고 근심걱정 없이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쯤이면 왜 노자와 장자가 자연에 빠져 살며 덧없는 인생들이여, 비우고 버리며 살라 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서양의 루소는 또한 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는지 다시금 되새김질을 하게 한다. 주말농장은 바로 이런 자연의 품에서 나를 찾고 새로운 나의 길을 준비하는 사색의 마당으로 적격이다.
세상이 자꾸 변할수록 사람은 자연으로의 돌아가고자 한다. 인지상정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살면 좋으련만, 가족과 이웃, 사회를 구성하는 몫으로서 개인은 이 사회에 참여적 의미를 지닌다. 참여하며 개성을 발휘하게 해 놓은 것. 개인은 사회적 참여와 역할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주제가 있는 삶의 반경은 바로 주말농장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고 있다.
상추, 쑥갓, 고추, 시금치 등을 기르고 자기가 기른 농작물을 밥상에서 만났을 때의 그 신선함과 뿌듯함. 그렇게 매료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꽃을 기르고 사과와 포도를 기르고 꽃사슴과 염소를 기르며 전문적인 모습으로 변신했다.
테마 주말농장의 대중화 시대
이쯤 되면 주말농장 수준이 상당히 업그레이드되었음을 감지하게 한다. 땅만 사면 주말농장주가 아니라 경영할 줄 아는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세상이 변했으니 땅도 변하고 땅의 속성도 변했다. ‘무공해 채소’가 별난 것이 아니라 무공해가 아니면 먹지 않는 시대. 나만의 가꾸기 수준을 넘어 모든 소비자 문화를 꽤 차고 이를 경영하고 만족시킬줄 알아야 시대를 만났다. 이제 주말농장은 가족농원, 테마 체험농장, 휴양림, 팜스테이, 테마형펜션 등으로 그 개념이 세분화되고 한편으로는 확장되면서 저마다의 장점을 모두 살리는 농장주만이 대접받는 길이 됐다. 그것이 자신도 살고 농촌문화도 살리는 길로 통하고 있다.
원시적 쉼터로서 주말농장, 레저공간을 제공하는 의미로서의 주말농장, 자연의 귀중함을 일깨워주는 배움터로서의 주말농장, 쾌적한 환경에서 기른 먹거리 제공자로서 주말농장, 놀이공원과 생태체험장으로서의 주말농장 등 농장은 농작물이 성장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바지할 요소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나만의 공간에서 우리 모두의 공동체의 공간으로 변신할 때 지속적인 이용률이 담보된다.
바야흐로 테마가 있는 주말농장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휴가 때나 주말에 도시를 벗어나 가족 단위로 채소 등을 가꾸던 원론적인 주말농장은 이제 돌담길 따라 지게지고 오가던 옛 시골 영상쯤으로 기억되고 있다. 평상시에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 경쟁력을 염두하고 살아가야 하는 산업으로서의 농업, 소비자를 생산하고 확보할 줄 아는 시스템적 농업, 환경과 생태체험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이벤트가 있는 농업과 농촌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사교 골프처럼 회사 모임이나 귀중한 손님을 초대하는 장소로서 주말농장이 있는가 하면 대학생이나 단체의 극기 훈련장이면서 생태체험을 동시에 하며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그 결실을 자기가 수확해 가져가는 한 곳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다목적 다중적 주말농장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한 주말농장에서 만난 모 은행 김영규 지점장은 “사원 가족과 이곳을 자주 온다”면서 “이곳에 오면 정신이 맑아지고 어린 시절의 고향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싱싱한 농산물을 직접 수확해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농장문화와 사교문화를 동시에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날도 그이는 주말농장 운동장에서 가족대항 경기를 하고 주변에 심어진 식물들과 오래 전 농촌에서 보았던 농기계 등 민속 문화도 구경하며 자녀들과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7만여평의 황무지를 개간한 쇠꼴마을
통일전망대를 한참 지나 다시 임진나루터를 지나자 파주시 법원읍 금곡마을이 나왔다. 연평산 줄기를 이어받은 이 마을에는 소먹이 풀인 ‘쇠꼴’을 따서 이름지어진 ‘쇠꼴마을’이라는 주말농장이 있다. 농장주 김교화씨는 올해가 환갑으로 이 마을에서 태어난 타고난 농군이다. 중소기업 사장으로 있다가 귀농하여 7만여 평의 황무지를 개간해서 테마형 주말농장을 만들었다.
자투리땅을 조금씩 사들이면서 개간하기 시작한 이곳은 30년 전 군부대가 주둔했던 자리라서 각종 쇠붙이가 땅에 묻혀 녹물이 깊게 고여 있었던 곳. 실제 이 마을 사람들은 변변한 저수지 하나 없이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나마 땅을 파면 녹물천지라서 어려운 환경과 지독한 가난의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삶이 버거워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났고 마침내 유일한 교육시설이자 공공기관인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김교화씨에게 이 마을은 참으로 정겹고 대대로 살붙이들이 살아온 어머니 품 같은 곳이었다. 비록 가난에 짓눌려 살았지만 그래도 동서남북으로 울창한 산이 에워싼 채 맑은 공기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아름다운 농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이라도 고향을 지키겠다는 포부로 운영하던 사업체를 접고 흙과 함께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젖소 6마리로 시작했다. 젖소 우리와 임시 거처를 만들고 시작한 일은 거대한 목장으로 성장했다. 몇 십 그루의 배나무는 어느새 4천 그루를 넘어섰다. 봄날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소꼴마을 골짜기가 배꽃 물결로 하얗게 뒤덮곤 했다. 가히 꿈속에서나 봄직한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되었다. 임진강에 흰 물결 그리고 그 물위로 물수제비를 뜨던 백로 떼의 아름다운 자태가 있다면 이곳 산골에는 임진강 쪽으로 불어가는 봄바람이 연출하는 쇠꼴농장 배꽃 물결이 있었다. 그 풍경은 매년 그이의 가슴을 환장하게 흔들어 놓곤 했다.
어릴 적 농촌 풍경 재현한 정겨운 초가집과 농기구들
이런 풍경들을 홀로 감상할 수만 없어 직접 시를 짓고 사진을 곁들여 여러 액자로 만들어 농장에 전시했고 방문객들에게도 그 감상 기회를 주면서 쇠꼴마을의 변천사를 설명하는 홍보용으로도 활용했다. 그이는 누구보다도 흙을 사랑하고 그런 삶을 살아온 어른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려운 시절 목장을 만들며 거처로 사용하던 자리에 초가집을 본뜬 건물 한 동을 지었다. 그곳에는 할머니 적 쓰던 녹슨 다리미, 떡치던 절구, 쇠 다듬이돌, 빗자루 볏짚으로 만든 광주리와 조리, 물레, 박으로 만든 바가지 등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그 옆에는 폐교가 된 초등학교에 있던 책걸상과 패인 칠판, 풍금과 빛바랜 환경정리 사진과 친구들의 앨범 등 각종 추억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재현해놓고 있었다. 이날도 그이는 그 때 친구들을 그리며 아내와 아내 친구들과 함께 걸상에 앉아 그 때의 그리운 그 추억들을 떠올리며 잠시 사색에 잠기곤 했다.
그 후미진 교실에서 나오면 바로 낙산홍 붉게 핀 연못이 나왔다. 물이 흐르지 않는 터전이라서 그이는 큰 연못을 만들어 전체 농장에 물이 흘러가게 만들어 놓았다. 물레방아가 쉬지 않고 물을 퍼 올리고 그 물이 그이가 만들러 놓은 자연석 위에서 계곡물처럼 철철 넘쳐 흘러가는 것이었다. 흐르지 않는 것도 흐르게 할 수 있는 일, 녹슨 땅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는 일, 이제는 그런 일에는 이미 이력이 나있는 것 같았다.
배나무 과원에는 유난히 열매가 많이 열렸다. 그이는 배를 신문지로 싸지 않는다고 하여 이 배를 ‘누드배’라 불렀다. 봄에는 이 배밭에서 배꽃축제를 연다. 배나무 아래는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다. 아이들의 농사체험을 염두 한 것. 봄에는 나물 캐기를 하고 배가 열리면 배따기 축제를 한다.
사계절 자연의 변화에 맞춘 테마가 있는 농장축제
포도밭에서는 포도축제, 흙의 촉감을 느끼고 직접 작품도 만드는 황토축제, 그리고 전통문화를 되새겨주는 메주축제 등 사계절 테마가 있는 축제를 열고 있다. 이 밖에도 두부 만들기, 떡매치기, 한과 만들기, 목공예 체험 프로그램들이 이곳을 찾는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다.
때마침 분양한 배밭에서는 서울에서 온 젊은 부부가 배를 따고 있었다. 가족들은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일만으로 행복이라고 느꼈는데 하룻밤 자연 속에서 묵으면서 달고 시원한 배를 마음껏 따먹을 수 있는 행복을 덤으로 얻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배밭에는 또 온실화원이 있었다. 추운 겨울에는 눈꽃 축제를 여는데 밖이 추워서 이곳에서 각종 식물의 이름과 성장 모습을 관찰하는 실내 체험코스로 활용중이다. 수 없이 많은 야생화들이 실내를 향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식물 넝쿨이 천장으로 뻗어 올라가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세상사 저렇게 푸르게, 푸르게 살 일이었다. 그리고 산다는 일은 천천히, 천천히 그러면서 한걸음, 한걸음 뻗어나가는 일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쇠꼴마을 주말농장은 크게 배나무 밭을 중심으로 배농사를 지어보는 주말농장, 체험장인 배따기 축제장, 우리 것을 되살리는 숯가마, 버섯재배 체험장 및 산림욕 숲, 천연의 지층 화석 전시장, 하룻밤 묵는 데 불편함이 없는 숲 속의 황토 방가로, 원숭이 등 동물 체험장,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며 그 숨결을 그대로 전해주는 수생식물원, 산줄기로 이어지는 긴 등산로로, 수많은 야생화 재배장과 체험 코스, 서바이벌게임장, 그리고 어지간한 학교의 운동장 뺨치는 대운동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툭 트인 넓은 자연 속에서 펼쳐질 수 있는 좋은 환경 탓에 입소문을 늘어나고 있다고 있다. 최근 적십자회에서는 탈북자 가족을 이곳으로 초청하여 우리나라 주말농장의 진면목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우리 농업에도 길이 있다…고향을 돌려드립니다”
이처럼 새로운 농촌 문화를 창조해내겠다는 그이의 당찬 포구를 대변하듯 농장 입구에는 “우리 농업의 길이 있다”는 당당한 글귀가 아로새겨진 장승이 서 있었다. 그이는 농사짓는 일이 힘든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는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분명 농사짓는 일이 쉬운 일이 어닌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 당장 어렵다고 농촌을 떠나는 모습들을 마주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미어진다는 것이다. 자연의 작은 식물들도 말없이 묵묵히 생명력을 키워가는 데 우리 인간의 모습은 너무 경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이는 농촌에서 사는 일은 낮고 겸허하게 사는 일이라고 말했다. 농촌에서는 농작물을 통해 수익을 얻기도 하지만 자연의 겸허함과 절망하지 않는 생명력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란다. 그래서 농촌은 떠나는 곳이 아니라 떠나서 다시 돌아오는 곳이란다. 수구초심이라 했던가. 농촌은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다. 늘 머물고 싶고 끝내 머룰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향이다. 그런 믿음과 정신이 찾아오는 농촌, 모두가 함께 하는 즐겁고 아름다운 주말농장으로 거듭나고 자리매김하게 하는 궁극적인 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이 사회가 갈수록 각박하고 탁탁한 메커니즘 속에 신음하고 소용돌이칠수록 우리는 자연으로,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그런 자연 속에서 정겹고 신선한 몸놀림으로 말없이 외치는 그이의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저는 모든 도시민에게 잊혀진 고향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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