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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농사 짓는 땅끝마을 황산벌을 찾아서

섬과 등대여행/섬사람들

by 한방울 2004. 7. 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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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눈이 살아있는 백미 생산 현장을 찾아서

- 갯바람 산바람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황산벌


토요일 새벽 첫차를 타고 반도의 땅끝 마을인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로 향했다. 목포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30 여분 달리자 김 양식과 각종 어류가 풍부하기로 알려진 송호 마을에 이르렀다. 어촌으로만 알고 있던 이 마을 안쪽이 이토록 기름지고 광활한 벌판을 끼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할 뿐이었다.


들판 앞으로는 섬, 뒤로는 푸른 산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런 탓에 태풍 매미도 민들레 감히 이 들을 넘보지 못하고 비켜섰다. 자연으로 바람벽을 삼아 타고 난 땅. 해안지역에서 발원하는 온도차로 벼의 생육이 더욱 튼튼하고 풍부하게 하는 땅. 한마디로 타고난 땅이었다.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을 정도로 푸른 벼들이 일렁이는 벌판은 영화 속에서 보던 외국 농촌 풍경이었다.


이제 우리도 이런 농촌 풍경에 이르렀구나 하는 생각에 먹는 것 없이도 배불러졌다. 들판 사이로는 사통팔달의 도로가 아주 잘 닦여져 있었다. 지게지고 탈탈탈 경운기 끌던 시절의 농부들  모습은 최소한 이곳에서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저마다 기동력 있는 지프 등을 손수 운전하며 이 들녘을 달리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황산벌에서 농사를 지어 왔다는 김채만(50) 씨는 개울을 지나 갈대숲을 헤치고 논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클랙션을 울렸다. 벼들 사이에서 열심히 벌레잡기를 하던 오리들이 반사적으로 깨악~ 깍! 응답을 하며 논두렁을 타고 지프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리들은 그렇게 주인장에게 화답하고 있었다.


무농약 벌판에는 오리와 두루미들이 어우러져 살고

김채만씨는 7만 평 규모의 농사를 짓는 전업농민이다. 일찍이 농업은 친환경 시대가 대세일 것임을 예감하고 8년 전 농민 56명을 모아 쌀농회를 만들어 이끌면서 전국을 떠 돌며 앞서가는 농법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실제 생산효과를 냈던 주인공이다. 그렇게 성공한 농민으로 거듭난 김채만씨와 황산벌의 쌀농회 사람들.


그이는 이 논에서 농약 없이 하루 두 번씩 오리 사료를 주는 것만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다. 농약이 사라지면서 황산벌에는 아침, 저녁으로 두루미들이 날아와 오리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이는 참게 농법도 도입하여 4필지 쌀농사를 오리 대신 참게를 풀어 놓고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 참게들은 병충해를 잡아먹으며 벼를 키운다. 특히 참게들은 제 때 먹이를 주지 않으면 오히려 벼를 깎아 먹는다고 한다. 게에게만 의지하지 말라는 뜻일까? 그만큼 부지런해야 한다. 농부가 벌판을 찾은 만큼 참게는 참한 참게 역할을 하는 셈. 뿌리는 대로 거두리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던 것일까. 하여간 그이는 올 가을에는 참게도 수확하고 참게가 일군 벼도 수확하는 일석이조의 농사 직기의 보람을 맛보게 될 것이다.


고품질 안전한 쌀농사로 경쟁력 높이겠다는 전략

려틈틈이 회원들과 특이한 농업 현장을 돌아보며 나날이 새로운 농업을 발굴해 접목하고 있는 그이는 안전하면서 품질 좋은 농산물만이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이다. 도시민들은 조즘 가격이 비싸더라도 질 좋고 안전한 상품을 선호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이는 조일균(50)씨 등 이 마을 쌀농회 회원들을 모아 놓고 이 마을만의 독특한 쌀을 생산해보기로 했다. 일단 벼 품종을 히도메보레, 고시히까리, 히노히까리 등 고품질 품종만 재배하기로 했다.


이 품종들은 벼의 키가 커서 생육 중에 비바람으로 쓰러지는 소위 도복현상이 심하고 병충해에 약하다. 그만큼 농사짓기가 어려우며 수확량 역시 적어 농촌에서 드물게 재배하는 품종이다. 이 희귀성에 다른 지역과 달리 해안 지대로서 토양에 유기물, 미네랄, 마그네슘 성분을 풍부하다는 점을 장점을 살려 쌀 맛이 좋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쌀 영양분들이 정미소에서 쌀을 깎아내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점을 보완해 쌀눈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을 찾는 길이었다. 쌀은 정미(연삭하는 과정), 연미(연마하는 과정) 과정에서 쌀의 눈인 배아가 서서히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쌀의 진정한 영양소와 맛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시중에서 판매하는 배아미들은 정미과정(6분도)에 멈춰 일부분만을 보존하고 있는 것. 하지만 완벽한 쌀의 성분을 보존하기 위하여 특수기술을 개발해 배아 보존율을 90%로 끌어 올렸다.


쌀눈이 중요한 것은  베타 시스테롤이라는 암 예방 성분이 있는데다가, 비타민 B6라는 동맥경화를 방지하는 성분, 류마치스를 방지하는 판트텐산, 어린이 성장촉진에 좋은 라이신, 중금속 배출 효과를 내는 피틴산 등 아주 유용한 영양소들이 죄다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영양소의 핵인 ‘쌀눈’ 90% 보존에 성공

이런 쌀눈을 고스란히 살린 제품의 브랜드를 ‘미미(米味)’라고 명명했다. ‘미미’는 배아를 보존하면서도 곡면을 매끄럽게 하는 고도의 연미과정에 키포인트가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밥알의 응집력이 높아지고 밥맛이 살아났다. 또한 청결미라는 인식이 소비자의 구미를 계속을 끌어당겼다. 응집력 높은 ‘미미’의 장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식은 밥일 때도 다시 데워서 먹을 경우도 그 밥이 풀어지지 않고 갓 지은 밥처럼 윤기가 났다는 점이다. 쌀눈의 원형질이 그대로 복원된 것이다.


이 마을 몇 사람들에 의해 소량 생산한 탓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양제동 등 일부 서울 지역에서 소리 소문 없이 팔려나가고 있다. 이 제품은 그만큼 가격 또한 높게 받고 있다. 일반 쌀 포대 형식이 아닌 영양즙 포장 형태로 1봉지에 1.4㎏,  4.5㎏ 두 종류로 포장해 팔고 있다. 배아미 1홉에는 리롤산, 옥타코사놀, 피틴산, 비타민 D, E를 포함해 비타민 B군 함유량만도 우유 2ℓ 이상, 계란 20개, 소고기 1.3㎏과 맞먹는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농림부 산하 국립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이 쌀을 무농약 재배 벼로 도정한 쌀임을 인증했다.  

우리 농민의 손으로 개발한 신 개념 고급 쌀이 선보였다는 자체로 획기적인 일이다. 농민은 고품질 쌀을 생산하고 황산농협은 미곡처리장에서 고도의 기술한 접목하여 정미하고 농민들이 일군 쌀을 실제 높은 가격에 파는 판로를 개척함으로서 농민과 농협의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관계 설정이 어떤 것인지를 본보기로 보여주고 있다.

농민과 농협이 한 마음으로 빚어낸 신제품 개발

논두렁에서 붉은 김치를 찢어가며 막걸리 한 사발씩을 돌려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던 쌀농회 회장 김채만 씨는 “태풍도 저 섬과 산이 두려워 연달아 비켜서는 것을 보면 분명 올해는 풍년입니다. 때로는 농사 잘 못 지어 빚지고 살았지만 요즈음처럼 우리 농사가 각광받을 때도 없죠. 농사짓는 맛이 납니다. 자꾸 새 농법 연구하는 일이 참 재밌어요”라며 마냥 행복에 겨워 있는 모습이 보는 이도 행복하게끔 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황산 농협미곡처리장 상무가 참 고마운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김 상무는 “어른들이 알아서 자꾸 새로운 농사를 시도하고 그런 농사를 통해 좋은 제품을 제공해주니 우리 농협이야 도정작업과 판로를 도와줄 뿐”이란다. 그러면서 “뭐니 해도 농민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마을 공동체 문화도 살아 있어 보기에 더욱 좋고 담당자로서 보람도 느낀다”라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을 돌리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모습에서 우리 농촌의 밝은 모습을 견주어 본다. 이 땅의 모든 농촌, 모든 농업이 이렇게 거듭나서 살맛나는 농촌, 살맛난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우리가 진정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으로서 자리 잡길 바래본다.


글: 박상건(시인. 농림부 공보자문관)

땅끝마을, 벼,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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