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아이들과 헤어지고 우린 다시 섬이 되었다
낙도분교 아이들과 함께 한 4일간의 기쁨과 슬픔
‘낙도분교어린이 수도서울 행정교육언론문화 체험단’으로 서울에 온 낙도분교 어린이와 선생님 13명이 지난 21일 3박4일간 서울체험을 마치고 섬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섬 분교까지 도착하는 데는 꼬박 하루 반나절이 걸린다.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하루 1~2회뿐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빨리 집으로 갈 수 있도록 고속철도를 이용했지만 그래도 광주를 거쳐 완도 본섬에 도착하면 꼬박 하루 걸린다. 읍내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분교로 떠나게 된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까지, 편부모 혹은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수업 외에 부모로서 또는 가정교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더 많은 날을 함께 하고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선생님들은 학교를 오래 비어둘 수 없다고 했다. 이번 행사의 취지는 대한민국의 미래이면서 수도서울 문화를 향유하지 못한 섬 아이들을 위해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프로그램 중심으로 수도서울의 중심문화를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섬문화연구소(소장 박상건), 서울여대(총장 이광자), 한국시인협회(회장 오세영) 등 3개 기관이 진행한 프로그램은 18일 낙도 분교 아이들이 선생님의 손을 잡고 용산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태풍주의보로 배를 못 탄 청산초등학교 여서분교 아이들이 서울로 올 수 없었던 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슬비 내리는 용산역에서 일행은 마중 나와 있던 서울여대 홍보바롬이들과 함께 스쿨버스를 타고 청계천으로 향했다. 긴 여정을 감안 해 30분 단위로 걷고 30분마다 퀴즈게임과 장기자랑을 하면서 쉬엄쉬엄 청계천 투어를 했다.
그 섬에는 단 한명의 학생에 한명의 교사가 수업과 행정처리
이어 시청광장에서 붉은악마와 월드컵에 대한 누나언니들의 설명을 듣고 그들도 마음껏 ‘대~한민국’을 소리쳐 보았다. 이어 무교동 숯불갈비 집에서 간단한 환영식 겸 불고기 파티를했다. 오세영 시인협회장은 “저희들 초청해 응해 멀리 섬에서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면서 “제 어릴 적 고향 영광에서 서울을 오려면 몇날 며칠이 걸렸는데 세상이 참 좋아졌다”면서 지난여름 신지도에서 섬사랑시인학교를 열면서 꼭 한번은 섬에 있는 여러분을 초청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동행한 분교 선생님들은 모두 분교장이다. 학생 한 명에 교사가 분교장도 겸한다. 한 학교에 학년이 다른 학생들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를 1복, 2복, 3복 수업이라고 불렀다. 한 교사가 3개 학년 수업을 맡다보면 저마다 과목과 진도가 달라 다음 수업 때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를 접어놓고 끝내지 않으면 다음 수업 때 교사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대화중에도 여러 차례 행정적인 전화가 걸려왔다. 수질검사 부적격판정을 받은 급수시설 보수공사 때문. 이처럼 분교 선생님들은 수업과 행정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
첫날밤을 호텔에서 지새운 아이들은 신문사 견학에 나섰다. 본격적인 서울 투어인 셈이다. 신문 기자가 동행해 취재팀에서 편집, 판매, 광고, 윤전시설에 이르기까지 신문제작 전 과정을 돌며 설명했다. 윤전기를 어루만지면서 신문이 찍히고 포장되어 가정에 배달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신문과 방송체험하고 자신들 모습을 보도로 접하며 신기한 표정
이어 은행 본점에서 영업장을 둘러보고 돈뭉치가 보관된 철제금고를 구경했다. 스위치 하나로 거대한 금고문이 열리고 닫히는 풍경 앞에서 영화를 보듯이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어 방송국.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방송 도중 지상렬과 노사연 씨는 음악을 틀어 놓고 잠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아이들과 악수를 하고 사인해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방송 중이라도 스튜디오 안과 밖의 의사소통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터득한 아이들은 다른 스튜디오에서 개그맨 박명수 씨가 출연 중인 것을 보고 프로듀서에게 “‘우~쉬!’ 한번 해주라고 해주세요?”라며 닦달했다. 스튜디오 안에서 이를 전해들은 박명수 씨는 바로 ‘우~쉬!’하는 제스처를 연출했다. 이 순간 동행 취재한 기자와 카메라맨도 웃음을 터뜨렸다.
보도국 뉴스센터에서 자신들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치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한 학생들을 선생님들이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이어 개그 프로그램 녹화를 방청을 했고 프로듀서는 아이들에게 무대에 올라가 노래 한 곡 불러보라 권했다. 그리고 녹화 후 아이들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유명 개그맨들의 팔에 매달리며 유행어를 한번 흉내 내줄 것과 사인을 부탁했다. 어떤 개그맨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야! 완도에서는 김이 많이 나는데 김 가져왔냐?”하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어떤 넉넉한 가슴과 웃음으로 맞아준 방송국을 나온 아이들은 고수부지를 거닌 후 여의도 공원에서는 자전거를 탔다. 퇴근 시간이 되어 터져 나오는 샐러리맨들을 보며 “어디서 뭐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이 나와?”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셋째 날 아침 아이들은 방송국 견학 현장을 저녁뉴스로 접한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에게 걸어온 핸드폰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신문사 견학 중인 자신들의 얼굴과 보도 내용을 신문에서 발견하고는 마냥 신기하고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청와대 가는 시간.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국내외 행사를 치르던 녹지원, 대통령이 집무실이 있는 본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동행한 경호원들 허리춤을 가리키며 “이것 진짜 총 맞아요?”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대학 강의실에서 수업해보고 총장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이어 서울여대로 향했다. 교수식당에서 학생 교수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어 체육학과 학생들과 유도 연습과 호신술을 맛보기로 익혔다. 강의실로 이동해서는 교수법 전담 교수님으로부터 공부를 재밌게 하는 법에 대해 대학 강의 맛도 보았다. 공예학과 실습실에서는 도자기 만드는 법과 가마를 구경했다.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언니누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직접 도자기와 화분을 만들었다. 무늬로는 대부분은 고등어와 갈치를 그려놓던 녀석들. 대학생 언니누나들은 “너희들이 만든 것은 가마에 구워서 꼭 소포로 보내 줄께!”라고 했고 아이들은 ‘와~아’ 하며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대학 강의실에서 공부재밌게 하는 법 '짤막 강의'를 맛보는 아이들
공예학과 언니누나들과 도자기를 만드는아이들
바비큐 만찬에 앞서 대학 캠퍼스에서 총장님과 함께
저녁식사는 캠퍼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 삼각숲이라 명명한 이곳은 드라마와 CF로 유명한 캠퍼스 숲이다. 곳곳에 오색풍선이 나부끼고 텔레토비를 닮은 서울여대 캐릭터 슈먼(swuman) 의상을 입은 언니들이 춤을 추며 어린이들을 환영했다. 놀이공원에서 자주 접하는 캐릭터 의상을 보듬고 비틀며 녀석들의 장난 끼는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피곤했을 기색마저 그만 잊어버리는 듯 했다. 잠시 후 이광자 총장이 나와 일일이 아이들을 반갑게 껴안아주며 “내년에도 꼭 또 오렴”이라고 인사했다. 아이들은 “그런데 누구세요?”라고 물었고 곁에 있던 분교 선생님들은 “이 학교 교장선생님이셔?”라고 하자 “와아~~이렇게 큰 학교 교장선생님이요?”라고 대꾸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놀이공원에서 마냥 즐거운 섬 아이들
그렇게 외딴 섬 아이들은 파도처럼 늘 당당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총장이 “노래하나 불러볼래?”하자 외딴 섬 모황도의 유일한 가족의 일원이자 초등학생인 1학년 기흠이가 마이크를 잡고 트로트를 불러 전국노래자랑 판으로 만들었다. 또 한 번의 웃음바다가 출렁였다. 서서히 어스름이 내리고 연주회 멜로디로 깊어가는 캠퍼스에 아이들 소리만이 도서관을 나오던 학생들의 눈빛을 휘 동그랗게 만들었다. 한쪽에는 연주회, 한쪽에서는 언니들과 술래놀이를 하거나 잔디밭을 마음껏 나뒹굴던 아이들.
기차시간이 가까워지자 헤어지기 싫다면서 울던 아이들
역시 아이들에게는 놀이문화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남산과 한옥마을 프로그램을 놀이동산으로 바꿨다. 마지막 날을 놀이공원에서 마음껏 활보하고 환호성 치던 아이들. 때로 나이 제한과 키 제한에 걸려 입장이 어려울 때는 안타까움에 그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자장면으로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열차시간에 맞춰 강변도로를 열심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침묵을 이어갔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용산역 호남선 열차 출발 10분 전. 아이들은 4일간 도우미로 동행했던 서울여대 홍보바롬이 언니누나들을 껴안고 헤어지기 싫다고 했다. 동행한 분교 선생님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떼어내어 플랫폼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연신 뒤돌아서며 팔소매에 눈물을 훔쳤다. 그런 아이들이 늘어나자 홍보바롬이 학생들도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해어지기 싫다며 우는 섬소녀(사진=신효정)
플랫폼에서 뒤돌아서 눈물짓는 아이들을 보며 마침내 눈물을 터뜨리고 만 대학생
언니누나들. 4일간 정든 그들도 이별 앞에서는 어찌할 수는 없었다.(사진=신효정)
작별은 늘 가슴 아픈 것. 눈물은 참으로 슬픈 언어이다. 지금쯤, 그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제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섬이 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의 진실이다. 사랑이란 불이 빛의 모체가 되듯 평화의 모체이다. 그렇게 서로의 가슴 속에 만들어 놓은 섬에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은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 이글은 섬과문화(www.summunwha.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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