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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면 밤새 뜬눈 밝혀야 하리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6. 5. 1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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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33] 그 섬에 가면, ‘삶이란 뭔가’ 밤새 뜬 눈 밝혀야 하리.

안도현 시인의 작품, ‘섬’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


       - (안도현, ‘섬’ 전문)


홀로 섬에 가본 적 있는가. 주의보에 묶여 섬에 갇히기도 하고 기상악화로 파도에 휩쓸려 생사의 갈림길에 서본 적 있는가. 섬에서 태어나 섬을 찾아다닌 세월만큼 섬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섬을 찬찬히 들어다 볼수록 섬은 인생의 텍스트 같은 것이다. 하루 하루 일생이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처럼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기며 달려오는 파도소리. 수없이 넘어지고 때로 울음우는 소리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평온을 되찾은 바다.


그렇게 섬은 바다를 끌어당겼다가 놓았다 반복하며 수평선으로 해를 넘기고 다시 새로운 일출을 맞는다. 섬이 그러하듯이 섬사람들도 그 물길을 따라 섬을 휘돌아 희노애락을 함께 한다. 바다는 섬의 터전이면서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홀로 사색의 섬에 가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혼자서 훌쩍, 하면서” 떠나고 싶은 게 섬이었지만 정녕 “민박집 형광등 불빛아래/혼자 한번/섬이 되어 앉아”있으면 “바다를 꽉 붙잡고는/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밀어내느라 안간힘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섬도 삶도 홀로일 때 가장 절박하고 가장 절박할 때 가장 정직해진다. 혼자일 때 삶도 섬도 소리쳐 불러보기도 하고 삶이 익은 탓에 사람이든 섬이든 속으로 홀로 울고 속으로 수없이 자신에게 의문표를 던진다. “삶이란 게 뭔가/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라고. 인생의 샘, 인생의 섬, 그 섬으로 가고 싶다.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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