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33] 그 섬에 가면, ‘삶이란 뭔가’ 밤새 뜬 눈 밝혀야 하리.
안도현 시인의 작품, ‘섬’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
- (안도현, ‘섬’ 전문)
홀로 섬에 가본 적 있는가. 주의보에 묶여 섬에 갇히기도 하고 기상악화로 파도에 휩쓸려 생사의 갈림길에 서본 적 있는가. 섬에서 태어나 섬을 찾아다닌 세월만큼 섬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 섬을 찬찬히 들어다 볼수록 섬은 인생의 텍스트 같은 것이다. 하루 하루 일생이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처럼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기며 달려오는 파도소리. 수없이 넘어지고 때로 울음우는 소리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평온을 되찾은 바다.
그렇게 섬은 바다를 끌어당겼다가 놓았다 반복하며 수평선으로 해를 넘기고 다시 새로운 일출을 맞는다. 섬이 그러하듯이 섬사람들도 그 물길을 따라 섬을 휘돌아 희노애락을 함께 한다. 바다는 섬의 터전이면서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홀로 사색의 섬에 가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혼자서 훌쩍, 하면서” 떠나고 싶은 게 섬이었지만 정녕 “민박집 형광등 불빛아래/혼자 한번/섬이 되어 앉아”있으면 “바다를 꽉 붙잡고는/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밀어내느라 안간힘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섬도 삶도 홀로일 때 가장 절박하고 가장 절박할 때 가장 정직해진다. 혼자일 때 삶도 섬도 소리쳐 불러보기도 하고 삶이 익은 탓에 사람이든 섬이든 속으로 홀로 울고 속으로 수없이 자신에게 의문표를 던진다. “삶이란 게 뭔가/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라고. 인생의 샘, 인생의 섬, 그 섬으로 가고 싶다.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성대 언론대상 수상 (0) | 2006.12.07 |
---|---|
그리운 그 바다로 떠나고 싶습니다 (0) | 2006.06.21 |
대학생 딸들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글 (0) | 2006.05.09 |
사람 손 끼인 채 전동차 출발 (0) | 2006.04.21 |
선홍빛 수채화 (0) | 200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