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등대기행 ⑫ 마라도 등대
- 적막한 초원에서 사색하게 하는 섬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 남제주군 모슬포항에서 약 6마일 떨어져 있는 섬이다. 정확한 주소지는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가파리 산 3번지. 마라도행 배는 모슬포항이나 산이수동에서 탄다. 단체 관광객이 많아 배가 시간 단위로 뜨는 곳은 송악산 아래 산이수동.
송악산은 180m 높이의 작은 산으로 완만한 초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배를 기다리며 여유있게 산책할 수 있는 코스이다. 해안 절벽은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배를 감추기 위해 한국인 노동력으로 파 놓은 군사용 동굴이 여럿 있다. 4·3사건 당시 제주 백성들을 이곳에 몰아 넣고 죽였다는 섬뜩한 얘기가 전해진다. 전망대에서는 대각선으로 서 있는 산방산과 형제섬 풍경도 조망할 수 있다.
마라도 가는 선착장 주변에 서린 역사의 상처
산방산은 안덕면 사계리 동쪽 해안에 솟은 높이 395m의 산이다. 한라산 줄기라고 하는데 다른 산과는 달리 정상에 분화구가 없고 투구 모양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높이 5m의 산방굴이 있다. 천장에서는 해맑은 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불상을 놓고 수도승이 머무는 곳.
굴 앞에 백년산 소나무가 버티고 서있어 예사롭지 않는 굴임을 말해준다. 이 곳에서 용머리 해안과 다정한 섬 형제섬과 멀리 마라도도 볼 수 있다.
마라도로 가는 배가 선창을 벗어나자 역시 거센 파도가 뱃전에 부서지기 시작했다. 마라도 가는 길목에서 마주치는 섬이 가파도이다. 파도에 잠길 듯 야트막하게 깔려 있다. 흡사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제주도 우스갯소리로 "가파도(갚아도)좋고 마라도(말아도)좋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거센 파도와 해풍을 맞으며 사는 가파도(加波島)와 마라도 사람들은 외딴 섬이기에 더욱이 보듬어 살아가는 인정이 많다고 한다.
가파도는 네덜란드 선장 하멜에 의해 널리 알려진 섬이다. 하멜은 제주 앞 바다에서 많은 선원을 잃고 계속 표류 중이었는데 제주목사 이원진이 병력을 인솔해 구제해주었다고 한다. 이에 하멜은 "우리 많은 기독교도들이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을 정도의 융숭한 대접을 이 이교도들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이후 하멜은 1653년 견문기 '한국유수기'를 써 서양에 한국을 널리 알렸다.
한 폭 수채화 같은 가파도와 수심 깊이 발목 내린 등부표
상동 중동 하동 마을로 이루어진 가파도 상동 바닷가에서는 제주도를, 등대가 있는 하동 포구에서는 바로 앞에 펼쳐진 마라도를 볼 수 있다. 가파도와 마라도 사이에는 두 섬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붉은 등부표가 찬 물결에 발목을 깊이 담그고 서 있는 모습은 참 쓸쓸해 보였다.
그렇게 설레는 가슴으로 마라도에 도착했다. 마라도는 고구마 모양으로 생긴 면적 0.3㎢의 작은 섬이다. 무인도였던 섬에 1883년 모슬포에서 김씨 라씨 한씨 이씨 등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울창한 원시림에 파도가 거세고 기후 변화가 심해 너무 신비스러워 '금섬'이라고 불렀던 이 섬에 뱃사람들이 접근을 무척 꺼려했다고 한다.
마라도의 유래는 1702년 '탐라순력도', '대정강사편'에 나오는 마라도(麻羅島)라는 표현에서 찾고 있다. "칡넝쿨이 우거진 섬"이란 뜻이다. 한편으로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뜻하는 마파람에서 '마'자를 따왔다는 설도 있다. 본격적인 현대인의 이주는 1883년에 개척 목사와 함께 가난한 사람 3세대가 살면서부터라고 한다. 이들은 식량이 부족해서 해산물로 연명하다가 농사를 짓기 위해 울창한 숲을 불을 질러 지금껏 바람 많으나 나무는 없는 섬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지역언론과 제주도가 나무 심기에 나섰다.
현재 80여명의 마라도 사람들은 고기잡이로 생계를 잇는다. 배가 닿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센 섬이지만 해안에는 해식 동굴이 발달해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모래가 없는 섬이다. 자리돔 벵에돔 강성동이 많이 잡히고 전복 소라 미역 톳은 마라도의 특산물이다.
푸른 초원에서 잔디와 이름 모를 꽃과의 속삭임
적막한 마라도는 사색의 섬인 셈이다. 이국의 어느 외딴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느낌을 받는다. 10만평의 푸른 초원에 누워 보라. 온통 잔디밭인데 잔디 사이마다 샛노랗게 핀 이름 모를 꽃들이 누운 채로서 자기를 바라보는 나그네에게 기꺼이 눈 높이를 맞춰준다. 그러면서 바람 소리마다 힐끗힐끗 웃는다. 누워서 보는 하늘 빛깔도 그대로 바다를 닮았다.
하늘과 바다가 한 세상을 이루는 초원에서 일어나 구릉에 시금치 상추를 키우던 한 아낙네에게 이곳에 살면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는다. 하긴 교통 발달로 얼마든지 제주로 나갈 수 있는 일이건만. 답답하면 나가고, 다시 답답하면 되돌아오면 될 일. 그렇게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가 되돌아올 수 있는 둥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이리라.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는 여느 마을 회관처럼 작은 학교다. 운동장이 그대로 초원이다. 공을 세게 차면 바다로 빠진다. 몇 채 안 되는 집들과 예배당, 짜장면집, 카페 등과 울긋불긋 잘 어울려 초원지대와 동화 책 속의 삽화로 다가섰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해안 가를 한시간 정도 달리자 유람이 끝났다.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망망대해 비추는 마라도 등대
마라도 가장 높은 언덕에 마라도 등대가 있다. 등대에 오르니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망망대해가 인간의 작은 가슴을 비웃는 듯 했다. 뒤로는 제주도, 동으로 대한해협 건너 대마도와 일본열도 구나카이현, 서쪽으로는 중국 남쪽 상하이와 마주하는 북태평양이다.
등대 사무실에는 물이 귀한 탓에 생수가 가득 쌓여 있었다. 해풍으로 나무가 잘 자라지 않고 용천수가 없는 탓에 마라도 사람들은 빗물을 여과시켜 마신다. 비가 오면 지하 물탱크에 저장해 주었다가 가정용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마라도 등대는 1915년 봄에 첫 불을 밝혔다. 일본군이 주위 작은 섬들과 교신하기 위한 군사통신기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한반도 해양 요충지마다 등대를 만들었고 호시탐탐 육지로 진격하는 해양왕국을 꿈꾸어 왔다. 각국 해도에 마라도 등대가 표시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등대이다.
팔각형 콘크리트 16m 높이로 쌓아올린 하얀 등대는 망망대해를 오고가는 배들의 이정표이다. 제주도에서 이곳을 향할 때 바라다보는 등대는 정말 잘 그려놓은 풍경화 혹은 정물화 같았다. 마라도 상징인 등대 아래는 제주 해안에서 캐낸 석재로 마감처리 해두었다.
마라도 등대는 태양과 풍력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따라서 전기가 끊겨도 중단 없이 저 바다를 향해 불빛을 발사할 수 있다. 최근에 위성항법 장치도 설치해 마라도 주위를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게 기상 상태 등을 즉시 위성으로 쏘아줄 수 있다.
마라도 등대는 10초마다 한번씩 불빛을 반짝인다. 불빛이 가 닿는 거리는 38km. 비바람이 치고 안개가 끼면 불빛 없는 바다에 공기압축기로 사이렌 소리를 낸다. 30초마다 한번씩 울려주면서 항해자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이 소리가 울리는 거리는 9km. 현재 등대에는 등대장을 비롯 등대원 2명이 근무하고 있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과 아들 넋이 서린 이어도
등대로부터 서남쪽 149㎞ 지점에 신비의 섬 이어도가 있다. "이어도여 이어도여, 이어 이어 이어도여. 이어 소리만 들어도 나 눈물난다...". 암초로 된 이어도는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은 아들이나 남편이 살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이상향이다. 바다 아래 잠겨 있는 이어도는 파도가 심하게 흔들릴 때만 희끗희끗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마라도는 무심하게 드넓은 바다 한복판에 선 채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풍진 세상의 온갖 먼지를 다 털어 버리고 파도소리를 생각의 고삐로 당겨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살 것인지, 맛깔스런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절벽에 수없이 철썩이는 파도에게 물어 보게 한다. 그렇게 산사보다 더 고요한 마라도에서 이녁의 삶을 반문하고 꿈꾸는 세상을 가늠해보는 것이리라.
산다는 일이 싱거워질 때 제주 해안가를 사진으로 담으며 삶을 바쳐온 사진작가 김영갑 씨 말이 떠오른다.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제주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 거기서 며칠이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마라도에선 수평선이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다.……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라고. 그렇다. 그렇게 마라도는 번잡한 세상 꾸역꾸역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마음의 수련장이다. 그런 마라도가 오늘도 우리에게 손짓해대고 있다.
● 미니상식/ '이어도'에 대하여
마라도 서남쪽 149㎞ 지점 바다 속에 있다. 1900년 6천톤급 영국상선 소코트라호가 일본에서 상해로 가던 중에 암초(이어도)에 좌초되면서 첫 발견됐다. 1984년 제주대학팀의 조사로 그 실체가 확인됐다. 바다 표면에서 4.6m 아래에 있는데 10m의 파도가 칠 때마다 어렴풋이 보인다.
해양학계 공식 명칭은 파랑도(破浪島). 해도상에 암초라는 뜻의 스코트라록(Scotra Rock)으로 표시되어 있다. 해양수산부는 해양연구 기상관측과 어업활동을 위해 이곳을 과학기지로 만들어 해저지형과 조류관측 등을 실시해왔다. 마침내 2003년 6월 과학기지로 완성됐다.
7명 정도 연구원이 보름정도 생활할 수 있는 시설 등 4백평 규모 첨단 해양과학기지로 만들었다. 해상기상 연구는 물론 대륙붕 개발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제 더 이상 전설의 섬임을 거부하는 이어도는 어업전진기지이면서 우리 해역을 더 넓혀나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일본도 1988년 태평양상 무인도 오키노 도리시마에 기지를 구축, 해역을 확장해 나갔으니 말이다.
● 마라도 등대 가는 길
① 김포공항=>제주공항=>산이수동 선착장=>마라도(매 시간 단위 운행. 운행유양해상관광 064 - 794-6661)
② 김포공항=>제주공항=>서귀포=>모슬포항 선착장=>마라도(동절기 하루1회, 하절기 2회 운행. 삼영해운 064 - 794-3500)
③ 시외버스
- 제주, 서귀포=>모슬포(1시간 소요. 제주종합터미널 064-753-1153)
- 모슬포=>산이수동 순환버스(1시간 2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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