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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죽이기

섬과 문학기행/시인을 찾아서

by 한방울 2004. 2. 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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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죽이는 사회

 

한 스포츠 신문은 19일자 사회면에 카지노에서 도박하다가 2000만원을 빌린 뒤 이를 갚지 않아 사기혐의로 구속된 이모 시인의 기사를 실었다. 2억도 20억 아닌 2천 만원을 빌려 못준 사람의 죄악이 그리도 큰 것인지 의문이다.

 

정치판에 차떼기가 횡횡하고 당적만 바꿔줘도 억 단위가 오고가는 세상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며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진 사람이 단지 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사가 되는 모습은 왠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높은 도덕성과 밝은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지만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언론의 잣대였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출판사 사장, "내가 그 빚 갚아줄 터"

19일 종로의 한 식당에서 문학도서만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 사장과 스포츠 신문 국장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 기사가 도마 위에 올랐는데 출판사 사장은 구속된 시인을 평소 잘 알고 있다면서 당장 오늘 면회를 가서 2천만원을 자신이 갚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일이 기사가 되는지 서글프다고 덧붙였다. 보도된 신문의 경쟁사
의 국장은 "요즈음 사회면 기사가 없는 터라 불가피하게 기사를 키웠을 것이다"추정했다. 

 

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이랬다. "시인도 인간이었구나..", "시인은 이런 세속적인 일과는 관련 없을 것 같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음지에서 카지노라니....", "이로써 시인의 대한 환상이 깨졌다" 등등.

 

알다시피 예술가 집단 가운데 시인이 가장 가난하다. 잡지에 시 한 편 실을 때 받은 원고료는 고작 3∼5만원 수준. 그것도 대부분 원고료 대신 책으로 받는다. 시집 한 권을 묶기 위해3년 정도가 투자한다.

 

그렇게 묶인 시집 한 권 값은 영화표 한 장 값에도 못 미친 5천원 안팎. 5천원짜리 한 권이 팔리면 인세 5백원이 떨어진다. 그나마 시집이 안 팔리는 세상이다 보니 인세 수입을 꿈꾸는 일마저 허망한 일이다.

 

*아직도 쌀통을 걱정하며 사는 시인이 더 많다

그래서 아직도 집안의 쌀통을 걱정하는 시인이 많다. 그들은 오로지 한 편의 시를 위해서 그렇게 살뿐이다. 시인 릴케는 말했다. "시인은 70년 혹은 80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은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를 쓴다"라고.

 

수많은 시인들이 그렇게 영혼을 쥐어짜서 마지막 한 두 편의 시를 독자에게 남긴 채 이슬처럼 사라져 간다. 그런 길을 걷는 한 젊은 시인의 발목을 비틀어버리는 듯 해서 못내 안타깝다.

 

그리고 뭇 시인들의 마음에까지 상처를 입혔기에 가슴이 더욱 아려온다. 굳이 시인이라는 직업을 기사 제목 맨 앞에 붙여 기사를 써야만 했을까. 물론 시인도 인간이고 도박하다 진 빚이기에 비난받을 일에 틀림이 없다.

 

* 그래도 인간의 영혼만은 살아 있어야

그러나 어차피 인생은 가시 돋친 장미나무이며 예술은 그 나무에 피는 꽃이다. 그런 생을 노래하는 시이기에 시 역시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며 사는 일만큼 슬프고 눈물이 배여 있다.

 

그렇게 한 편의 시가 되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다. 돈이 사람과 사람 관계의 매개물이라면 시는 영혼과 영혼 사이의 매개물이다. 그 영혼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인을 죽이는 사회는 곧 이 세상의 오염을 방치하는 일일 게다. 갈수록 각이 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인간의 영혼만은 살아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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