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쓸쓸하고 그리운 풍경들

섬과 문학기행/시인을 찾아서

by 한방울 2004. 2. 20. 13:27

본문

시인탐방 ⑥시인배우 백학기의 끼 있는 삶

시인 교사 기자에서 불혹에 배우로 변신
닥종이, 인형, 전흥진
쓸쓸하고 그리운 풍경들




"한 때 너의 사랑을 꿈꾸었던/불 같은 사랑은/사월이 되매 더욱 그리워진다./집 없이 갈 길 또한 지평선을 향해 막막하고/사람 살아가는 모습 가끔씩 눈물겨운/사월이 오면 꽃봉우리에 가 닿는 바람처럼/머물고 싶다. 머물어 혼의 종소리 울리고 싶다./그러나 가고 오는 세월은 사랑을 덧없다 꿈같아라 이르고/먼 집 가까운 불빛 은은하게 앞길을 비추면/다시 살아가야 할 날들이 오지게 서러웁다./시여 자유여" (시여 자유여)

사월의 뜨거운 가슴만큼이나 시와 자유와 예술에 젊음을 바쳐온 백학기. 어느 날 배우가 된 그이가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지 20년만에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라는 제목의 세 번째 시집을 냈다. 그렇게 시에 대해 자유에 대해 그리운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팔뚝이 절이도록 임화 백석 이용학의 시를 필사하며 시인을 꿈꿨고 신동엽 김수영 시를 달달 외우고 다녔던 그이.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피는 가슴 아픈 조국에 대한 열병을 앓으며 갈 수 없는 휴전선과 임진강에 대해 목이 메는 시절들이 지나갔다. 70∼80년대 민중·민족문학의 한 복판에서
리얼리즘적 시를 쓰는 대표적 시인으로 기억되고 자리매김했던 그이. 첫 시집 제목이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였다. 한 젊은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영상미가 장점인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던 그런 그이가 전주의 한 여고 영어교사로 7년 생활을 털고 지방일간지 정치부 사회부 기자 생활을 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었다.
그러나 7년의 지방 일간지 기자생활을 털고 상경했다. 사람들은 그이가 KBS 홍보실로 옮기자 "이제 방송기자가 되는가보다"라고 했다.

주위 시선을 그렇게 끌어당기더니만 안정된 방송사 생활마저 7년만에 훌훌 털어 내고 배우가 되겠다고 선포한다. 불현듯 불혹의 문턱을 넘으며 사월혁명만큼 뜨거운 그 가슴에서 스스로 삶의 쿠테타를 일으킨 것. 거개 일반인들의 직장생활 3년 주기로 전직의 유혹을 느끼곤 하는 데 비해 전직기간 7이라는 숫자가 어쩜 그이에겐 행운의 숫자로 다가섰는지도 모를 일. 가는 곳마다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그였기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삶의 징검다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래서 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건, 그이의 삶 자체는 한편의 시이고 드라마틱하다. 어차피 뒤틀리고 펴지면서 흐르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가는 인생이라면 자신만의 열정의 열매를 맺고 따먹으면서 성장하는 도발적 변화에는 주목해 볼 필요도 있겠다.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찬이슬처럼 다스리며 가는 긴 여정이 우리네 삶이라면, 막히면 뚫고 다시 소쿠라져 흘러가는 긴 강물이 되어 가는 것.

속으로 울고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 같은 삶은, 그래서 그런 대로 흥미롭고 그이만의 독창적인 사는 재미인지도 모른다.

나도 노을이 되고 싶다.
서쪽으로 달려가서
빛무리로 퍼져 내린 저 노을처럼
이 세상이 추악하고 더럽게 생각될 때면
한바탕 욕지거리라도 해 주고
서쪽으로 달려가서 노을이 되고 싶다

노을이 되기 위해 달려가는 동안
강이 흐른다면
강변에 앉아 흔들리는 마음속을
다스려도 좋으련.
누구는 누구는 살면서 그만한 사랑과 환희가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강물은
말없이 흐를 것이지만

때로 가슴팍이 미어지는 슬픔과 분노가 없다면
사람 사는 맛이 있을까
사랑과 환희로 가슴팍이 빠개지는
저 깨끗한 노을의 나라로 날아가서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날들을 내려다보며
흐를 것은 흐르게 하고
멈출 것은 멈추게 하는
노을 속의 바다가 되고 싶다.
(노을 전문)


불혹을 넘겨 노을 속으로 달려간 강물 같은 삶. "누구는 누구는 살면서 그만한 사랑과 환희가/찾아오지 않겠느냐고 강물은/ 말없이 흐를 것"이라고 한다. 이녁의 쓸쓸한 내면을 강물은 알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이녁 같은 외로운 강물에게 묻는 것일 게다. 그러면서 "때로 가슴팍이 미어지는 슬픔과 분노가 없다면/사람 사는 맛이 있을까"반문하며 "흐를 것은 흐르게 하고/멈출 것은 멈추게 하는" 그런 강물처럼 흘러가잔다. 하여, 노을 속의 바다가 되잔다.

한 편의 시는 그이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며 서정적 정서를, 삶의 철학이 무엇인가를 한 눈에 가늠해보게 한다. 그렇다. 임권택 감독처럼 삼류 광대를 따라다니며 배고픈 시절을 보내고 노을 같은 삶의 강변에 이르러서는 취화선처럼 연민과 번민의 나날을 보내며 허허로운 웃음을 웃는 것. 그렇게 삶과 자연을 관조할 줄 아는 예술가를 꿈꾸는 것. 어디 처음부터 급류를 만드는 큰 강물이 있었던가. 그렇게 그렇게 지류를 뚫고 샛강이 기어 들어가 큰 강물 큰 바다에 이르던 것을.

킬리만자로의 삼류건달로 인정사정 없이 시대의 한 복판을 두들기고 넘나들다가 마침내 대부에 이르던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래서 주저 없이 떠나는 길이다. 서 있음이 살아있음이요, 살아있기에 가 볼만한 삶의 한복판이다. 그렇게 홀로 당차게 내 걷는 그런 길 위의 삶이 시인 배우 백학기의 길이리라.

삼류라는 단어에 그이의 서민적이고 정겨운 정서가 함축되어 있다. 이번에 나온 시집에는 유달리 만리동 고개 왕십리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뒷골목에 보내는 그이만의 따뜻한 시선. 자본주의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흔적을 애써 찾아내 끈덕지게 노래하고 있다. 그이에게 왕십리는 비가 내려야 제격이요 잔잔한 슬픔이 철길 위에 흘러가 줘야 한다. 그것이 정이 묻고 깊어져 간 삶의 오솔길 같은 것이다. 이런 시의 경향은 그이가 성장해오며 쌓은 숙성된 삶의 원액이 한 방울씩 흘러내리는 것이다. 서울과 남루한 시골의 대조적 이미지가 단절되지 않고 따뜻하게 전달되어 오는 것은 서울 변두리에서 애써 찾고싶은 어릴 적 국도변의 풍경들, 논산 벌판 강경 포구를 휘달리던 기차에 대한 추억들, 그 추억들이 플래폼으로 다가서는 삶과 애정에 대한 반추이리라.

그이는 1981년 <현대문학>에 삼류극장에서 닥터 지바고라는 시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같은 해 <한국문학> 신인상에도 당선됐다. 등단작품부터 영화관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고 그이의 먼 훗날은 이미 예감한 듯한 구절이 나온다. "문득, 맨가에 쪽 객석에 앉으며/나의 스물 넷을 기다리는 동안"으로 시작되는 이 시는 "지바고의 얼음처럼 유리처럼 차고/말간 눈 속으로/내 스물 넷이 기웃거렸고/좀처럼 요약되지 않는 사랑이며/유끼아노로 미끄러지는 눈썰매/나는 자꾸 발목이 시려웠다//툭 툭 끊어지는 필름을/모스크바행 열차 통로엔 성긴 빗발이 뿌리고"라고 노래했다.

삼류극장 안의 풍경이 참으로 따뜻하고 설원(雪原)을 달리는
이국적 풍경까지 떠올려준다. 이 시에서 영화에 대한 동경을 독백하는 데 "나의 스물 넷을 기다리는 동안...내 스물 넷이 기웃거렸고"라는 구절이 연달아 나온다. 그리고 2000년에 박철수 필름이 제작한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이라는 영화에 출연했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운명의 예감인가.

그이의 시는 전반적으로 영상화의 특징을 보인다. 시 자체가 한 편의 영화처럼 리드미컬한 배경음악을 떠올린다. 그렇게 노을 속의 섹스폰 소리 같은 여운을 갖게 한다. 원광대 시절부터 소설를 쓰는 박범신 양귀자, 그리고 안도현 시인과 선후배를 이루며 글발을 날렸던 그이를 눈여겨본 평론가 김현씨는 <문학과 지성사> 김병익 사장에게 그이를 소개했고 시인선 45번째인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라는 이름의 시집을 냈던 것. 시집은 출간 즉시 대 호평을 받았다. 85년 출간 시집 치고 최근 3쇄에 들어간 것으로 보면 꾸준히 찾는 독자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그이기에 영화배우로 변신은 문단에서는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졌다.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으로 변신도 아닌 전업배우였기에 더욱 당황스럽고 이러 저래 화제거리였다.

뜬금없이 불혹의 가장이 배우가 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을 때 주위의 만류는 당연한 것. 아버지는 "미친 놈"이라고 했다. 딸아이는 "영화배우 아빠는 싫다"고 했다. 지금은 유일한 후원자가 된 아내 역시 처음엔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그이는 억누를 수 없는 끼를 더 어쩌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철철 넘쳐나는 그 어떤 충동.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년시절부터 영화광이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할리우드 키드였다는 사실에서 이상할 일도 아니었던 것을. 그것이 인생 사십 고개를 넘으면서 무르익었을 뿐이던 것을. 아니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시인의 영감이 데뷔작부터 예감되고 있었지 않던가. 급기야 현실로 다가섰을 뿐.

어린 날 그이가 살던 고향마을에는 이모부가 운영하는 꽤 큰 규모의 서림 사진관이 있었다. 긴 화랑과 함께 있었던 촬영실의 플래시 불빛 터지는 소리들. 그 옆 건물에는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평화여관, 그 옆에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 이 시골 초록빛 공간이 어쩜 한 개의 영화 세트장이었고 그이를 헐리우드 길로 미리 안내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단란한 가족만큼이나 어른들은 유년시절을 친구들 보다 유행에 앞서 나가며 끼 있는 소년으로 연출하고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아버지는 도청 공보실에서 영사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영화를 통해 농어민들의 계몽하는 일을 했었다. 아버지는 늘 흰색 양복에 유행을 앞서가던 구두를 신고 있었고 그이 역시 이런 민감한 유행에 쉽게 젖어들어 남다른 패션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네 살 때부터 극장을 드나들었던 그이.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속에 파묻혀 살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영화 이야기꾼으로 통했다. 아버지는 보통 영화 상영 전날에 기계와 필름에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시사회를 가졌다. 그런 날에 마을 사람들은 집 마당으로 모여 작은 마을축제를 연상시켰다. 이런 영화상영을 직접 해보고 싶었던 소년 백학기는 친구들과 회색 벽에 손전등을 비치며 영화 상영을 시도해보는 등 영화사랑에 대한 관심과 매력은 날로 커졌다.

영화와의 인연은 결국 시를 영상화하는 기질을 키웠고 교내 백일장 등 수 많은 백일장 대회를 휩쓴 글 솜씨와 함께 영화광에 대한 명성은 학창시절 내내 함께 했다. 중 2 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10번도 넘게 본 영화이다. 중학생이 영화관을 드나드는 일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집 근처 영화관에서 어느 날 마주했던 대부는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비장한 음악 속에 펼쳐지던 스크린 속의 알 파치노....

고교 때는 신성일 흉내내기로 교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이 때부터 교지에 알 파치노, 율 브리너, 이소룡 등 당대 유
명 배우들에 대한 영화평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시절부터 그이에게 한 개의 철칙이 있었는데, 개봉 첫날 첫 시간 프로를 보는 것. 이 원칙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친구들은 그이를 만나려면 영화관에 가보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카시아 코스모스 향내로 가슴이 출렁이던 꿈과 그리움 그리고 방황과 모험의 학창시절. 문득 발견한 폴 발레리의 시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라는 구절.

그것은 젊음에 대한 그리고 젊은 날에 삭일 수 없는 문학 열병의 편린 같은 것이었다. 시인이면서 영화평을 쓰고 한편으로는 대학 학보에 울릉도 앞 바다에서 오징어 배를 타고 삶의 외경을 몸으로 체험했던 일들을 소설로 연재하기도 했다. 긴 호흡의 글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이는 97년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고 98년에는 <샘이깊은물>에 태백에 서 동해까지라는 소설을 발표할 정도였다. 시 같고 소설 같은 삶의 나날들.

그 사금파리가 여태 남아 영화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99년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연기학원에서는 영화실기를 익혔다. 발성법, 표정, 무대동작 등을 배우며 어느새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탐정 반기평 작품을 비롯 여러 단편에도 출연했다. 급기야 회사에 불쑥 사직서를 내민다.

그것은 지금껏 다닌 회사에 낸 사직서라는 의미보다 긴 인생 여행에서 편도차표를 반환하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기차여행 길에 오르는 행위에 대한 상징 같은 것, 그런 확인표였다. 안정된 직장에 대한 안주보다는 안주할 수 없는 끼와의 타협이었다. 불혹의 간이역에서 헐리우드 역의 이정표를 따라 가는 출사표였다. 그 표 속에 아른거리는 가족들의 표정이 차창으로 스치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만 어차피 투덜대며 달리는 기차처럼 인생도 한바탕 뒤흔들며 가는 것이라. 무심히 흐르는 강물도 한번쯤은 요동치며 급류를 일으켜 세워 가는 것을. 그래서 그 강을 건너고 새로운 기적소리 불어제끼며 뜨겁게 증기를 토해내는 것을.

그렇게 열정을 불사르는 것, 그 자체가 영화였던 것. 내 나이가 몇이냐고? 불혹에 노틀담의 꼽추로 유명한 앤서니 퀸을 아느냐 반문하고 싶다. 주연보다 더 잘 나가는 연기자로 알려진 명계남이 30대 후반에 이 바닥에 뛰어들어 정통 배우로 인정받았던 일들을 애써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바꿔 탄 인생여행 길이지만 푸른 이내를 퍼 올리며 치달리는 새벽 열차처럼 영화계의 새벽 철길을 향해 부지런히 달리고 싶을 뿐이다. 도전과 모험 그리고 용기 있는 역사, 그것이 젊음이라면 이 시대 한복판을 영화바람으로 갈라도 좋으련. 이미 한발 더 나아가 박철수 감독이 총지휘하는 대전 영상원에서 매일 연출 수업을 받고 있는 그이. 타인의 우려 섞인 생각보다 할 발 아니 몇 미터를 더 앞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다.

해보고 싶은 일들이 참 많은 편이다. 일하는 행복을 어찌하랴, 만끽할 수밖에. 그래서 <전주방송> 이야기 건강 쇼 MC도 보고 백제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 실기를, 예원대학에서는 연기 실기를 가르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부전자전의 운명을 만난 그이에게 분명 영화는 첫사랑이었다. 잠시 그 첫사랑에 얽힌 운명을 잊고 살았을 뿐. 어차피 돌고 도는 인생이라지 않던가. 방송사에서 일했던 그이가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이라는 장편 상업영화에서 여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는 방송사 PD역을 맡은 것도 그렇고, 20년이 지난 지금 "옛날은 가도 시인은 남는 것...바람이 분다. 나는 살아야겠다"며 시집을 묶어 냈지 않았나. 삶의 통찰의 한 과정을 엿보게 하는 시집이다.

여전히 시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쓸쓸히 때로는 햇살 같은 환희로 다가서는 감흥을 준다. 이 시집에 대해 문단에서는 "여전히 영상과 서정성이 돋보이며 작품성이 살아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이 기회에 시인으로 되돌아와 그런 작품성 있는 시집들을 선보여 줄 것을 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 시집이 그런 돌아온 징표라고 성급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영화계에 서는 그이의 입문이 일단 합격점을 넘었다며 시인 출신 배우 겸 연출가로 낙점 하는 눈치이다. 어쨌든, 그이는 이미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살아야겠다고 폴 발레리의 시를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시인 배우로 가는 출사표를 다시금 들어보자.
"시가 인간의 고급스런 영혼성의 말을 거는 것이고 그래서 일부 무겁고 진지한 서사적인 면이 있다면 영화는 일상적이며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흥행과는 거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삶의 철학적이고 리얼리틱한 인간의 아름다운 꿈을 실현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렇다. 영국 비평가 버나드쇼의 묘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우물쭈물이 아닌 과감하고 도도한 강물처럼 가는 길. 그것으로 족하고 싶다는 그이. 이제서가 아닌 벌써 제 길을 찾아 떠난 그이.

시인 배우 백학기의 동행자는 뭐니뭐니해도 고교 교사인 아내 하양숙씨일 것이다. 외롭고 쓸쓸한 날들의 유일한 동행자이자 영원한 후원자가 된 아내는 오늘도 패션감각과 관객의 입장에서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조언 위에서 가다듬어진 도회지풍 마스크에 정겹고 시골스런 그
늘이 그이 캐릭터의 강점이다. 선악을 연출하는 영화세상에서 전천후 배우로서 새 길 위에 선하고 소담한 한 송이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길 많은 지인들은 바란다. 그리고 다시금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며 한 권의 씨네포엠을 선보이길 기다린다. 하여, 첫 영화를 찍고 나서 운주사로 떠난 가족 여행길처럼 "아내여! 내 영화 어때?"라고 질문할 수 있길 바란다. 더 깊어지고 큰 강물 가에서 말이다

"그대 흘러가는 강물을 숨죽이고 보는가/세상의 온갖 상처들을 가슴으로 보듬고/스스로 강물이 되어 보고 있는가/거기 물고기 같은 때로 구름 같은 세월이 깃들어 있는가//그대 흘러가는 강물을 보다가/문득 회한의 깊은 그림자들로 인생이 다시 깊어져/성숙해진 이마를 바로 세우고/강물이 될 때까지 바라보고 있는가/물고기 같은, 구름 같은 세월도 흘러가는 것을 보는가/살아온 날들보다/살아갈 날들을 위해 정갈한 마음이 되고 있는가//강물이 될 때까지/강물이 될 때까지" (강물이 될 때까지전문)


■ 백학기 시인은.....

1959년 전북 고창 출생. 전주고·원광대 영문과·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졸업. 1981년 <현대문학>에 삼류극장에서 닥터 지바고로 문단데뷔. 같은 해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1997년 <신동아> 1천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당선. 시집 나는 조국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무들은 국경의 말뚝을 꿈꾼다,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전라일보> 등 정치·사회부 기자, KBS 홍보실 기자. 현재 <전주방송> 이야기쇼 건강 MC, 백제예술대학 ·예원대학 출강중이며 최근 하재봉의 해피 투나잇, 박철수 필름 임종재 감독의 스물 넷 등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다.

■ 전주권 볼거리 먹거리


●볼거리
·국립전주박물관(063-223-5651)
총 소장품 약 2410점. 청동기시대 유물, 불교관계 공예품과 자기류(瓷器類) 및 회화 전시.
·팬 아시아종이박물관(063-210-8114)
국내최초 체험형 테마 박물관으로 인류의 종이발달사와 관련 유물 등을 소개하고 관람객들이 직접 전통한지를 만들어 보는 코너와 관련 정보검색 컴퓨터 시설이 갖춰져 있다.
·전주권 문화유적 답사기행(전주시청 063-281-2222)
매주 일요일 전문가와 함께 전주시청에서 오후2시 출발해 3∼4시간 정도 견훤고성, 후백제왕궁지, 덕진연못, 천주교성지 순례, 전주 소릿길, 일제 식민통치 및 항일 유적지 답사.
·인근 가 볼만 한 곳으로 무주구천동, 마이산, 운일암 반일암 계곡, 변산 해수욕장과 내소사, 부안 다목적댐, 익산 미륵사, 모악산 금산사 등.

● 먹거리
·평양 냉면, 개성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 가운데 하나인 전주 전통 비빔밥 집
고궁(063-251-3211~3) 성미당(063-287-8800~1) 한국관(063-272-8611)한국집(063-284-2224) 반야돌솥밥(063-288-3174) 백련돌솥밥(063-242-0997)
·전주 전통 한정식과 분위기 있는 음식점과 카페
조용하고 깔끔한 전라도 음식 이야기(063-246-2020) 예술인들 단골집 소연

'섬과 문학기행 > 시인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탐방-황동규  (0) 2004.02.21
시인 죽이기  (0) 2004.02.20
세상의 남자는 다 오빠...  (0) 2004.02.19
산골시인 나태주  (0) 2004.02.18
탐방-이성부 시인을 찾아  (0) 2004.02.1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