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등대기행-신지도 45년 마도로스
모래가 운다는 십리 길 해변을 껴안은 섬
우리 나라 육지의 최남단 완도항에서 바로 마주 보이는 섬이 '신지도'다. 신지도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섬인데, 고운 모래알들이 파도에 부딪히면서 내는 울음소리 때문에 '모래가 운다'는 뜻의 '명사'와 백사장 길이가 4km에 달하여 '십리'라는 단어를 합해서 '명사십리'로 불리고 있다.
이곳 섬사람들은 완도 본섬을 1일 생활권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데 오일장과 수협 농협 공판장 등으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철부선이다. 물론 신지도 해수욕장과 낚시터를 찾는 외지인들의 발이 되어주는 것 역시 이 철부선이다. 이 철부선의 선장 이정남 씨는 하루 열 세 차례 섬과 섬 사이를 항해하고 있다. 이곳 완도에서 태어나 57년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첫 선원 생활을 시작해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45년째 뱃길을 항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처음 운행했던 뱃길은 완도와 목포 구간이었다. 당시에는 기상특보나 기상예보도 없었고 낡은 목선을 타고 새벽 6시 완도항을 출발해 오로지 선장의 감으로 파도를 헤쳐 청산도,소안도, 노화도, 보길도 넙도, 모도, 어룡포, 벽파진 등 3개 군의 포구를 거쳐 오후 5시에야 목포항에 도착하는 11시간의 멀고 험한 뱃길이었다. 특히 해상 날씨라는 것이 방금 해가 떴다가도 안개가 끼고 비바람이 몰아치기가 일쑤여서 악천후와 싸우는 일은 항해자의 운명이기도 했다.
섬사람들 운명과 함께 한 철부선
더욱이 하루 한 척밖에 없는 목선이 육지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섬사람들을 꼭 태워야 했고 이러다 보니 76톤짜리 여객선 정원이 80명인데 모든 섬을 돌고 나면 200명 정도가 승선하곤 했다. 저마다 보따리 하나씩은 들고 탄 까닭에 배 하중에 무리가 따른 채 목숨을 건 항해를 해야 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진도 앞 먼바다에서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고 물살이 소용돌이치면서 배가 기우뚱거려 한동안 바다 한가운데서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생사의 기로에 섰던 아찔한 기억도 있단다.
바로 그 길은 가난한 시절 모두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생업 현장으로 가던 길이었고 이정남 씨 또한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고자 늘 위험이 도사리는 바다에서 파도와 싸워야 하는 뱃사람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선착장이 없는 조그만 섬의 주민들은 파도 위에 나뭇잎처럼 출렁이는 나룻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와서 여객선에 올라타야 했는데 이정남 씨는 그런 모습들이 남의 일 같지만 않아서 늘 짐을 받아 실어주고 수월하게 배에 오를 수 있게 손길을 잡아끌었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하지만 저마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한쪽에서는 시골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털거나 짐 꾸러미를 소매치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 승객들의 도난사고를 예보하는 일 때문에 더없이 냉정하게 사람을 대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간혹 분실사고를 막기 위해 바지 상단에 돈을 비닐로 싸서 바느질로 꿰맨 채 뜬눈으로 밤을 지세며 기항지를 향하던 진풍경은 아직도 향수처럼 가슴에 애잔하게 물결쳐 온다고 회고했다.
이정남 씨는 목포 구간 운행에 이어 부산 뱃길이 열리던 75년부터 4년 동안 부산행 여객선 선장으로 영호남 항로를 오가게 되었는데 아침 8시 완도항을 출발해 고금도, 약산도, 신지도, 생일도, 고흥, 녹동, 나로도, 여수를 거쳐 밤 항해를 시작해 남해, 삼천포를 거쳐 부산항에 도착하면 꼬박 하루 반나절이 걸렸는데 다시 완도로 되돌아오는 3일 1왕복의 장거리 운행을 마치고 나면 몸은 그대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당시 이 선박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완도 고흥 일대의 상인들로서 부산에서 물건을 도매해 장사를 하거나 자기 고장 특산품을 부산에 도매하면 부산 상인들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물물교환 형태였다고 한다.
철부선 시대 끝나고...문명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되돌려주는 것
이러한 풍경들이 80년대에 접어들어 급속한 기술발달에 힘입어 100톤 이상의 철선이 등장했고 속력도 한층 나아져 운행 시간을 절반을 줄였지만 얼마 후 더 빠른 남해고속도로 개통되면서 이 항로는 폐항이 되고 그에게는 추억 속의 뱃길로 남게 되었다. 현재 완도와 신지도 간에 운행하는 철부선은 왕복 20분이 걸릴 정도로 그 성능이 꽤 좋은 편이다. 또 자가운전 시대에 걸맞게 자동차와 트랙터 등을 타고 포구로 가면 그대로 선적한 채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철부선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는 것인데, 다도해를 잇는 해상국립공원 계획에 따라 완도와 신지도 간에 연륙교가 2년 후면 완공
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문명은 모두에게 행복을 되돌려주는 것은 아니다. 향수를 빼앗아 가고 어떤 이에게는 기쁨을, 어떤 이에게는 슬픔과 좌절을 동시에 던져주는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피조물인 것이다. 어쨌든 육지의 도로가 생길 때마다 뱃길은 끊어졌고 그의 인생 유전도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인생의 아이러닉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지금 저 섬과 섬 끝자락으로 문명의 성과물인 철이 바다를 달리는 철부선의 운명을 달리하며 이어지고 있다.
그이와 선장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철부선 바로 앞으로 스치는 작은 섬 주도(천연기념물 28호)가 보였다. 그이는 늘 저 섬을 돌아 출항하고 귀항한다. 주도는 가뭄 때도 늘 푸르고 태풍에도 의연하게 뻗어가던 상록수의 자태로 우거진 섬이다. 그이에게 저 섬은 늘 푸른 꿈과 한결같은 긴 항해의 상징으로 다가오곤 했단다. 그렇게 사는 것은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미니상식/ 배(선박) 이야기
사람과 물자를 싣고 강이나 바다를 이동하는 교통수단이나 구조물을 일러 배라고 부른다. 길이가 짧은 것은 주(舟)·정(艇) 등으로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큰 것을 일러 배라고 부른다.
배는 용도에 따라 군함·상선·어선·특수선 등으로 구분한다. 군함에는 전함·순양함·항공모함·잠수함·구축함·포함·수뢰정 등의 함정과, 이것들을 지원하는 잠수도함·공작함·소해정 등이 있다. 상선에는 객선·화객선·화물선 등이 있다.
어선에는 포경선·트롤선·낚시어선·운반어선, 특수선에는 예인선·준설선·해난구조선·쇄빙선·기상관측선·해양조사선·차량운반선·경비선·진료선, 탐험선 등이 있다.
최초의 배는 BC 5000년경 이집트 나일강 하구에서 파피루스(papyrus)라는 풀을 엮어 만든 '갈대배'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던 '산타마리아호'는 목선이었고
19세기 초 목철선·철선이 등장해 약 20년간 사용되었지만 철로 만든 최초의 철선(iron ship)은 1818년 영국 클라이드강을 운행하던 여객선 발칸호이다. 철선은 목선에 비해 강도가 크고 내구성이 좋으며, 대형화가 가능하고 성능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이것 때문에 대양항로용의 대형 철선이 건조되어 긴 역사를 가진 목선과 교체되어 바야흐로 철선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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