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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새 슬피우는 위도

섬과 등대여행/남해안

by 한방울 2004. 2. 1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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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등대기행 ⑤ 위도

위도등대, 박상건, 박상건으악새 슬피 우는 섬에 풋풋한 사람 내음 더해

부안 격포항에서 위도로 가는 배를 탔다. 그 해 여름이었다. 처음 위도로 향할 때 1994년 위도 페리호 전복사고가 떠올랐다. 그 때 배 위에서 해삼과 소주잔을 나누며 그 이야기를 하던 중 어느 시인은 "격포 수성당 당할미인 개양할미와 위도 원당할미가 요새 것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놔야 한다며 배를 뒤집은 것"이라고 국토의 산수정신을 문학적으로 설파한 바 있었다. 어쨌든 격포항을 떠난 지 40분만에 위도에 당도했다. 위도의 풍경은 처음부터 나그네를 압도했다.

조용하면서도 살 고운 해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섬이었다. 위도는 고려말에는 수군의 요지였다. 지금도 관아가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다. 나름대로 굴곡의 역사를 지닌 섬이다. 변산반도 서쪽 해상에 떠 있는 위도는 식도, 정금도, 상왕등도, 하왕등도 등 6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 숨이 멎을 것 같은 섬

위도는 섬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고슴도치섬으로 불린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꿈꾸던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 알려질 만큼 풍요롭고 아름다운 섬이다. 위도 앞 바다는 서해 고기떼들이 총집결하는 황금어장이다. 해마다 파시가 열려 장관을 이룬다. 고종 때 부안군에 소속 섬이었다가 63년 영광군 소속이었다. 국내 3대 어장 중의 하나인 칠산어장 중심지로 영광굴비 산지가 바로 이곳 위도이다. 감성돔, 농어, 우럭, 도다리, 노래미 등 낚시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섬이면서 고운 모래밭을 건너면 으악새 소리가 갯바람에 절창을 이룬다. 울창한 숲까지 품고 있는 섬, 위도는 위도해수욕장, 논금과 미영금의 평화로운 해변과 포구에 선 등대 모습 등은 너무 아름답고 적막해서 그만 숨이 멎을 지경이다.

승용차로 시종 푸른 바다를 낀 12km에 이르는 해안 일주도로를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 맛이 환상적이다. 빼어난 절경에 빠져 있노라면 곧 분지를 이루는 산이 나오고 그곳에서 으악새(억새)가 슬피 운다. 흰 으악새의 나부낌에 빠져 있노라면 다시 해송이 이룬 숲이 나오고 그 아래는 세상 풍파 다 이겨낸 파도의 물보라가 섬사람들의 끈끈한 삶을 웅변해주고 있다. 절벽 아래 펼쳐지는 바다는 서해안 최대 김 양식장이다. 멀리 법성포 인근 무인도도 희끗희끗 파도에 스치며 얼굴을 내밀곤 한다. 바다는 그렇게 많은 풍경들을 파노라마로 펼쳐준다.

바다는 그런 것이다. 물결 이는 풍랑과 움직이지 않는 듯 다시 출렁이는 섬까지 모두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그렇게 썰물이면 아낙네들은 저마다 삼태기를 허리춤에 차고 바지락을 캐러 나간다. 바닷가 원두막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린 손녀들과 굴을 까거나 자투리땅에서 재배한 수박이며 과일을 먹는 평화로운 풍경도 마주할 수 있다. 이곳 섬사람들은 정월 초사흘에 한해의 액을 모두 담은 띠배를 만들어 서해 바다 멀리 띄어보내곤 한다. 이것이 띠뱃놀이다. 1978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널리 알려진 띠뱃놀이는 중요 무형문화제 제82호로 위도의 상징 문화처럼 돼있다.

위도 동북방 2km 지점에 떠 있는 작은 섬이 식도이다. 아담하고 포근한 자태를 지닌 위도의 부속 섬인데 위도가 고슴도치처럼 아가미를 벌리고 있는데 그 앞에 있는 밥이라 해서 식도라 부른단다. 67가구가 사는 이 작은 섬은 물이 귀한 곳이다. 물이 많으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인지, 관정사업을 해도 여태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 식도는 대신 물 좋은 어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계절 낚시터와 해수욕장, 수석 등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생산되는 새우, 멸치는 우리 나라 최상품으로 쳐준다.

식도에서 만난 아름다운 나이팅게일

이 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그날 밤 구판장에서 주민들과 막걸리 잔을 돌리면서 섬사람들의 잔잔하고 애틋한 이야기들을 밤새 주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올해로 간호생활 12년째를 맞는다는 정영자 씨와의 조우는 큰 행운이었다. 그이의 공식 직함은 위도보건진료원 식도진료소장. 위도 사람들은 그이를 '정소장'으로 불렀다. 정 소장은 마을 사람들은 물론 외지에서 온 선원이나 낚시꾼들까지 310여명을 대상으로 응급처치와 중환자 긴급이송 등 혼자서 많은 업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나이팅게일이었다.

외로운 노인들의 고질적 병 치료와 함께 그들의 말동무가 돼주고 친자식처럼 수발까지 도맡고 있었다. 외딴섬이라 육지와 왕래가 거의 없고 나이가 많은 주민일수록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가 많은 편이라 고충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거동불능 환자로 분류된 8명의 노인이었는데, 그이는 매일 가정방문을 통해 환경위생 점검과 투약을 하고 대소변까지 직접 받아내며 따뜻한 손발이 되어주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진료소장을 맡으면 2년 근무 후 육지로 떠나는 게 관행이지만 그이는 8년째 이 외딴 섬에 머물고 있었다. 독감주의보가 내리면 서둘러 주민들에게 투약하고 해마다 낚시꾼들이 늘면서 외지 환자들을 긴급 치료하는 일도 다반사인데, 정소장은 응급환자들이 완쾌되거나 주민들의 질병을 일찍 발견해 치료했을 때 그 보람은 누구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면서 오히려 그것이 자신만이 누리는 행복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정작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 때문에 정소장이 못 떠나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아름다운 섬 아름다운 섬사람들

정소장은 96년 친정아버지가 이승을 떴을 때 폭풍주의보가 내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몇 해 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이 역시 섬사람들 진료 때문에 불효를 짓고 말았다. 정소장에게는 송 초승달(15)과 송 보름달(12·여), 송 온누리달(7·여)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여쁜 3남매가 있다. 남편은 시인 성의철 씨. 남편은 초승달과 보름달의 양육을 맡고, 정소장은 막내딸 온누리달과 생활중이다. 어느 날 진료에 몰두하면서 정 소장의 막내둥이
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섬 주민들이 구해낸 적이 있었다.

정소장은 첫 부임 때는 1년만 있어야지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정붙이며 살다보니 오랜 세월이 흘렀단다. 80년대에 지은 20평 공간의 낡은 진료소에서 온몸을 던지며 생활하는 따뜻한 사랑의 전도사 정 소장. 그이에게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묻자, “마을사람들이 건강하게 사시는 거죠 뭐? 가능하면 마을사람들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정보화 시대라는 데 섬은 아직 그런 공간이 없어 안타깝네요....”

다음날 아침 식도 앞 바다에 떠 있는 등부표 쪽으로 배를 빌려 타고 떠났다. 1시간 동안 70여 마리의 고기를 잡았을 정도로 이 지역 바다는 분명 황금 어장이었다. 높은 파도 탓에 일찍 포구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수확이 꽤 괜찮은 것이었다. 특히 얕은 바닷물에는 손을 넣으면 잡힐 만큼 온통 꽁치 떼들이었다. 외지인들이 바가지로 꽁치를 건져 올릴 정도였다. 그만큼 어족이 풍부한 섬이었다.

격포항으로 가는 막배를 탔다. 우리 일행은 정 소장과 그이 가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정소장과 막래둥이는 계속 손을 흔들며 서로의 모습이 점점이 사라질 때까지 꼿꼿이 서 있었다. 그 모습에 그만 눈시울 붉혔다. 그랬을 터이다. 말은 없었어도, 가족과 떨어져 섬에서 생활하는 외로움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오죽하랴, 낯선 섬에서 익숙한 섬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일이....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멀리 무인군도들의 위엄이 달리 보였다.

아름다운 섬,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동행하며 이 섬, 이 바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울 것인가?. 통통대는 여객선의 선미에서는 포말이 끓어올랐다가 다시 멀리 뱃길 위로 사라졌다. 그리고 엔진이 뿜어내는 여객선의 연기들은 먼바다 먼 하늘로 무심히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미니상식/파시에 관하여……위도·식도 가는 길

풍어기에는 고기를 잡는 바다에서 어선과 상선끼리 고기를 거래하는데 이 매매 현장의 바다를 일러 파시라 부른다. 수확기 농촌에서 이루어지는 밭떼기 같은 개념이다. 파시가 이루어지는 섬과 포구는 그 규모만큼 선원과 상인을 상대로 하는 식당과 숙박, 위락, 풍물시장이 동시에 형성돼 자연스럽게 바다의 파시에 이어 육지의 또 다른 어장이 생겨 어촌 경제가 활기를 불어넣는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에서 수백에서 수천의 배들이 몰려드는 파시는 뱃사람의 애환과 섬사람의 역동성과 어업 전진기지인 우리 바다의 상징으로 인식된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러한 파시는 현대 산업의 급속한 발달과 대규모 어획, 낚시의 대중화로 어장이 갈수록 소멸을 거듭해 극히 일부 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추억처럼 자리잡은 안타까운 문제이기도 하다. 그 맥을 이어가는 파시의 현장으로는 서해의 경우 해류를 따라 고기들이 북상하는 3∼4월 위도 앞 바다, 4∼5월 연평도 근해를 들 수 있다. 동해는 오징어가 난류를 따라 북상하는 2∼6월 울릉도, 영덕군 축산 앞 바다에서 각종 깃발과 색색의 배들이 장관을 이루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흑산도 조기, 거문도·청산도 고등어, 추자도 멸치 파시도 유명하다.

위도와 식도 가는 길
1)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30번 국도)→부안→변산해수욕장→격포항→위도행 여객선
2)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영전(30번 국도)→곰소→격포항→위도행 여객선
3) 호남고속도로 태인IC(30번 국도)→부안→격포항→위도행 여객선
여객선은 위도행을 타면 식도까지 연장 승선이 가능하다.
격포항 여객선터미널(063-584-1486), 위도시내버스(063-583-2676), 택시(063-583-2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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