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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가 벗 삼는 '기암괴석의 천국' 홍도

섬과 등대여행/남해안

by 한방울 2004. 2. 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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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① 홍도

 

바다 위에 뜬 매화꽃 같다하여 매가도,
바다를 기다리는 바위섬이라 하여
대풍금으로 불리는 섬.
홍도는 기암괴석의 천국이다.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천혜의 섬이다. 그래서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뭍으로 가져올 수 없는 섬이다.

그 해 여름 서울역에서 투덜대는 밤 기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 목포역에 도착했다. 식당 다
락방에서 짐꾼들과 개구리 잠을 청한 후 해장국으로 속을 풀며 아침을 맞았다. 쾌속선으로
얼마를 달렸을까. 드넓은 바다에서 만난 갯바람과 푸른 파도가 도심에 저린 마음을 탈곡기
처럼 탈탈탈 털어 내고 헹구어주었다. 그렇게 청정한 바다를 가로질러 흑산도 옆 홍도에 당
도했다.

등대섬으로 향하다 만난 폭풍주의보

바지선을 타고 홍도에 내렸으나 최종 목적지는 다시 등대섬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폭풍 주의보가 내려 그곳으로 가는 정기 유람선은 발이 묶여 있었다. 본격적인 모험이 필요
했다. 마을에서 통통배를 빌려 타고 등대로 향했다. 등대는 해수면으로부터 89미터에 이르는
고지대에 있었다.

등대로 가는 길은 비탈길. 등대원들에게 줄 얼마간의 과일과 쌀자루, 고기 등을 짊어진 채
거친 호흡을 하는 발자국마다 토끼풀, 쑥부쟁이, 강아지풀이 찰랑이며 동행해주었다. 자꾸
쉬었다가 가라는 뜻인지, 풀잎들은 푸르게 푸르게 싱글벙글 웃는가 하면 바람에 널뛰고 손
뼉을 치면서 우리들을 자연 속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홍도 등대에는 보급선이 한 달에 한번 꼴로 온다 했다. 그래서 기상 악화로 식량이 동나는
것을 대비해서 등대원들은 평소 바닷가에서 고기나 조개, 파래와 톳을 뜯어서 말리곤 한단
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등대장은 빠삐용처럼 등대 아래 바다에서 300여 미터 정도의 갯
바위와 갯바위 처 놓은 그물 사이를 오가며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타
고 있는 것은 배가 아닌 몇 개의 스치로풀을 동여맨 뗏목 같은 것이었다. 배가 없어 고안해
낸 일명 그만의 스치로풀 보트였던 셈.

등대원들은 이렇게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등대 주변에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를 재배하고 스
스로 밑반찬을 마련하며 생활한다. 지금은 전기가 들어와 보일러 혜택을 받지만 땔감이 없
던 시절에는 산등성이에서 풀을 깎아 말려서 아궁이 군불을 지피곤 했다.

30년을 외딴 섬 등대지기로 살아온 등대장

이윽고 등대에 도착하자 등대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외부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원룸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만 옛날에는 높은 양반들의 휴양시설이었다.
지금은 이곳을 떠났지만 당시 그곳 강용정 등대장은 스물 다섯에 등대지기가 되어 30여 년
을 등대지기 생활을 해왔다고 했다. 평생 어두운 밤바다 항해자의 눈이 되고 기항지를 향하
는 희망의 불빛 되어 살아온 것이다.

그는 풀뿐인 무인도에서 잘 단련된 사람이었다. 그가 거쳐간 곳은 칠발도를 비롯 등대와 등
대원 뿐인 외딴 섬들이다. 풀과 나무, 바위뿐인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외로움이나 그리움
을 견뎌내는 일이며, 온몸에 풀독이 오르는 피부병까지도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물도 빗
물을 받아 정화 과정을 거쳐 사용한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마산 홍도, 부산 오륙도, 격
렬비열도 등이 그런 섬에 속한단다.

그는 섬에서 태어나 보통고시를 준비하러 숙소를 빌려쓰게 된 것이 평생 등대와 함께 생활
하게 됐다. 칠발도 등대원으로 있을 때 등대 에너지원인 축전기가 폭발하여 실명하기도 했
던 남의 눈이 되면서 자신은 정작 한쪽 눈을 잃고 살아가는 등대지기였다.

당시 축전지 액체가 눈으로 스며들어 큰 사고를 당했던 것인데 구급약이 없고 배편이 없던
그 시절에 등대에서 사흘을 보내고서야 구조신호를 보고 달려온 공작선에 태워져 목포 병원
을 옮겨졌으나 이미 눈 부위가 다 터지고 실명한 뒤였다. 생활고 탓에 수술을 포기했던 그
는 스물 여덟 살에 그런 슬픔을 당했고 당시 간호사였던 아내와 이 외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등대에서 살림을 꾸리며 살았지만 등대지기들이 두 해에 한번씩 다른 섬으로 옮겨
다녀야 하고 자녀 교육 문제도 있어 결국 6년만에 아내는 육지로 나가고 가족과 떨어져 외
딴 섬으로 살아왔다.

외로움에 길들여진 등대지기와 분교 선생님

홍도는 바람 잘 날 없는 섬이다. 그러나 그런 바다의 모습이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영혼을
씻어줄 터이다. 우리는 등대 앞에서 갯바위 낚시를 한 후 등대원들과 호형호제하며 사는 분
교의 선생님을 찾아갔다. 묵혀 놓은 산삼 동동주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셨다. 그들은 늘 외딴 섬 그리움에 젖어 살았다. 그래서 찾아오는 나그네들이
마냥 반가운 눈치이다.

외로운 사람이 성자가 된다고 했던가. 홍도 깃대봉이 그들의 삶을 굽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풍란, 후박, 동백, 둥굴레 자생지가 있었다. 저 파도가 풍진세상을 흔들며 깨어날
때 식물들은 어쩜 이 산등성이의 영혼으로 피어나 홍도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산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는데 긴 호스가 보였다. 빗물을 정화해 민가로 이어주는
일종의 수도관 역할을 하는 것. 홍도는 최근에야 수도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홍도 사람들은 물을 정화해서 사용했다. 물이 귀하다보니 홍도에서 배추는 금치였다. 그래서
목포에서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담글 정도였다.

주민들의 가장 큰 벌이는 아무래도 홍어 잡이. 홍어 한 마리에 80 만원 이상을 호가했다. 그
물을 다듬고 있는 어부들에 따르면, 이곳 섬사람들은 15일간은 중국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
다는 먼바다에서 홍어를 잡고 15일간은 그물 다듬기로 보낸다고 했다. 결국 보름 벌이다보
니 15일 어획량이 한 달 가정경제의 희비를 가르는 셈이었다.

해변의 바위섬, 일몰 풍경 그리고 밤 새워 시를 낭송하던...

다음날 유람선을 타고 홍도 일주를 했다. 이름도 괴이한 코함바위, 독립문바위, 부부탑, 만물
상, 거북바위, 빠돌해수욕장, 주전자바위, 원숭이바위, 삼돛대바위, 제비바위, 무지개바위, 탕
건바위, 도승바위, 공작새바위, 슬픈 여바위 등.... 섬 일대를 돌며 시종 그 신비한 자태에 감
탄사를 연발했다. 일몰 포인트라는 홍도초등학교 앞 단옷섬에서는 강태공들이 손맛 즐기기
에 여념이 없었다. 놀래미, 우럭, 농어, 강성돔이 많이 잡힌단다. 해변에는 돌김, 톳, 미역 등
도 풍성했다.

해질녘, 섬 전체가 붉어지면서 드디어 '홍도'라는 섬의 유래를 다시금 되새김질 해보았다.
그 이름에 걸맞게 노을이 바다에 바짝 엎드리는 장면은 가히 감동이었다. 붉은 절벽에 붉은
소나무, 그 사이로 뚝뚝 지는 노을... 통통배와 일렁이는 풍랑을 온통 세상을 벌겋게 채색해
버린 저 한 폭의 바다 수채화.

다시 어둠이 왔다. 저마다 유년시절과 고향 이야기로 추억 속에 젖어갔다. 돌아가며 시 한편
씩을 낭송했는데, 함석헌 선생의 "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파도야 어쩌
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의 '그리움',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이르기까지
시를 낭송하며 술잔을 부딪칠 때마다 밤은 더욱 깊어갔다.

외로움에 젖은 사람들. 각진 세상에 젖은 사람들이 저마다 출렁이는 바다를 앞에 두고 값비
싼 순수의 갈증을 마음껏 풀어 보았다. 톨스토이는 진리란 고독 속에서 익어간다고 했다. 섬
기행은 그런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작별의 순간이 다가오자 더 머물라며 옷깃을 끌어
잡던 등대원들. 너무나 마음 여리고 따뜻한 사람들.

우리는 포구에서 서로의 모습이 점점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고독한 등대지
기와 함께 외로운 항해 길을 지탱해주는 저 등대... 등대섬을 먼발치에서 바라다보면서 문득,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의 말이 기억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굳센 사람은 고독과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때묻지 않은 섬과 섬사람의 기억으로 늘 찌든 삶에 파도소리를 울려주던 섬 홍도. 작별의
순간을 아쉬워하던 마지막 날밤, 밤하늘에 팔랑개비처럼 뜨거운 불빛 돌리던 등대 아래서
우리들의 합창소리 아련하게 파도쳐 온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 미니상식/ 등대 이야기…홍도 등대 가는 길
세계 최초 등대는 기원전 2백80년경 파로스섬의 높이 120미터 등대이다. 한국 최초 등대는
1903년 7.9미터 높이의 인천 팔미도 등대다. 요즈음은 위성항법이라 하여 인공위성을 이용할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 등대원은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고 이들이 머무르는 곳을 표지관
리소라 한다. 3명이 24시간 교대 근무한다.

홍도 등대는 1931년 2월에 석유백열등으로 점등했고 일제하에 마을 주민들이 노무자로 동원
돼 지어진 곳이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군 병력이 상주한 군사기지 역할을 했고 주민들
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전쟁 패배 후 일본인은 야간 도주했고 남은 식량들은 주민들에게 배
급되었으며 한동안 주민들에 의해 등대가 운영되는 등 주민과 남다른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등대이다.

홍도로 가는 길은 목포항 제1 여객터미널에서 홍도 여객선을 승선, 다시 홍도항로표지관리
소로 유람선이나 사선을 이용하면 된다. 목포에서 거리는 116Km, 소요시간은 3시간 10분,
편도 요금 27,100원이다. 기상악화 때 운항 변동이 있음으로 터미널에 문의하는 게 꼭 잊지
말아야 한다. (문의:061-243-0116)

 홍도, 등대지기, 박상건

  강용정 등대장이 스티로폼 뗏목을 타고 고기잡이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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