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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④땅끝에서 보길도까지

섬과 등대여행/남해안

by 한방울 2003. 12. 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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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④땅끝에서 보길도까지
200여종 상록수림과 윤선도 노래가 어우러진 천혜의 섬


연서(戀書)로 가득한 갈두항 방파제 등대

땅끝마을에서 보길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갈두항 방파제 등대에 섰다. 등대에는 온통
연서(戀書)로 가득 차 있었다. "인순, 나의 하나뿐인 사랑이여...순금씨! I LOVE YOU. 윤희!
기다리거라. 군대 잽싸게 갔다와서 보자. 나두 널 좋아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해 지현
아. 순준이가. 홍추야 사랑해-S.M. 언제까지나 사랑해! 항상 곁에 있을 께.-정훈. 넌 나의
영원한 사랑이어라. 힘들지만 잘 참을께. 아직 너의 글을 찾지 못했어. 너를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가 없구나...소영아 행복해야 해.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잘 살아라. 선희야! 너랑 꼭
여기 다시 올 거야. 순준이가 씀"

몇 장의 연애편지를 읽듯 등대를 돌면서 등대를 어루만지면서 젊은 날의 편린들을 생각해보
았다. 그리고 등대가 이토록 따스하게 다가선 경우도 드물었다. 나도 수첩을 꺼내 한 편의
졸시를 써보았다. '갈두항 방파제 등대'라는.

"땅끝마을 갈두항에 가면/오늘도 방파제 등대는 생각한다//뱃길에 피고 묻은 그리움이/이 바
다에 진통하며 파도를 처 올리고/뱃전에 부서지고 남은 아픔이/해안가 해초더미를 흔들어
쌓는다//진종일 이웃들의 생각 보듬어 묵상하고/가슴앓이 죄다 방파제에 풀어놓고 헹구면/
뚜벅뚜벅 저녁 노을이 걸어오고/여태 돌아오지 못한 뱃길/여태 출항하지 못한 항해의 눈빛
되어/모가지 쭉 내밀어 먼바다를 동행하던/갈두항 등대//땅끝마을 갈두항에 서면/방파제 등
대는 한결 생각한다//꾸깃꾸깃한 사연들을 꺼내/꾹꾹 눌러 쓴 하얀 편지지가 되고/못 다 쓴
마음까지 헤아려 물살에 띄우면/물결은 바다의 우체부가 되어/두근두근 꿈꾸는 섬으로 떠난
다//길 뜬 삶에 저린 파도의 속내/포구에 물보라치면서/그 안쓰러운 마음 더 어쩌지 못하여/
온몸 전율하여 영혼의 등불을 켜들고/자박자박 밤바다를 걸으며/밤새 빛 무리 뜨겁게 휘몰
이하던/갈두항 방파제 등대"

배 떠나라 배 떠나라...아부사시사의 보길도로 가는 길
얼마 후 일행들이 배 떠난다는 손짓을 해왔다. 보길도행 여객선은 뱃고동을 길레 울리며 포
구를 박차고 있었다. "동풍(東風)이 건듣 부니 물결이 고이 닌다/돋다라라 돋다라라/....구즌
비 머저가고 시낻물이 맑아 온다/배떠라 배떠라" 라는 어부사시사.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렸다는 평가받고 있는 이 작품은 윤선도가 보길도 부용동에 은거할 때 지은 시조로 사계
절 어촌의 풍경과 어부의 생활을 읊은 것이다.

시인들과 보길도로 문학기행를 떠나던 중이었다. 보길도는 땅끝마을과 완도 본 섬 사이
12km 떨어진 해상에 바구니처럼 둥그런 모양으로 떠 있는 섬이다. 보길도 북쪽 방향으로는
노화도, 동으로 소안도, 서로는 진도, 남으로는 제주도와 추자도가 인접해 있다. 얼마 후 배
는 청별항에 도착했고 먼저 윤선도 창작의 산실인 세연정으로 갔다. 정자에 올라 들창코로
연못 풍경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뜨락에는 어부사시사를 옮겨놓은 석탑(시비)이 있
었다. 그이가 독서하며 지낸 낙서재가 동색 숲길에 있었고 정면으로 보이는 한 칸 짜리 정
자가 동선석실이었다.

다시 우리는 망끝 전망대로 차를 돌렸다. 보길도 남서쪽에 위치한 섬모릉이에서 바라다보면
왼편에 뾰쪽산이 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그 모양새를 달리하는 신비의 섬이다. 섬 정상
에서는 제주도와 추자도, 진도의 관매도가 아스라한 수평선과 함께 장관을 이루는 곳. 특히
일몰 포인트인데 이 절벽 끝에 풀을 뜯는 염소들이 노닐고 있었다. 참 평화스러웠다. 그날
바다 한복판에 끓어오르는 용오름 현상도 구경할 수 있었다. 시인들의 탄성이 터졌다.

동백 후박나무 갯돌밭 해변의 환상적 일몰 포인트

보길도에는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팽나무 등 상록활엽수 250여종이 자란다. 바다에는
도미·농어 삼치·멸치·전복·소라 등 산해진미가 널려 있다. 특히 뾰쪽산을 낀 보옥리에
서 생산되는 멸치젖갈과 건멸치는 최상품으로 쳐준다. 다시 예송리로 차를 돌렸다. 천연기념
물인 상록수림이 우거진 바닷가에 검은 갯돌밭이 활처럼 굽이치고 있었다. 검고 둥근 조약
돌이 1.5km이상 깔려 파도가 밀려오면 일제히 아우성을 치며 뒷걸음질 쳤다. 다시 파도가
밀려가면 우르르 밀려가는 조약돌들의 하모니가 서편제의 절창 같았다. 해질 무렵 햇살이
황금빛으로 돌들을 물들이며 파닥이는 모습도 가히 환상적이다. 바로 앞에 외딴섬이 하나
떠 있었는데 이름하여 복생도. 절벽은 바다새들의 천국이며 섬에는 풍란이 자생하고 있다.

포구에서 잠시 낚싯대를 드리우며 한가함에 빠져 있을 즈음 이 마을에서 8대째 토박이 섬사
람으로 살아왔다는 강천식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이는 보길도 사람들이 허리를 펴고 생활
한지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바다에서 톳을 뜯어
끼니로 때우며 생활했다는 것. 젊은 날 돛단배 타고 하루 걸려 당도하는 해남 땅을 오가며
볏단을 사와 초가지붕을 얹고 겨울나기 하던 주민들은 늘 해풍과 싸우며 목숨을 담보로 바
닷길을 오갔단다. 어느 날 이웃 주민이 짚단을 싣고 마을 앞 바다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거센 파도를 만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 험한 세월을 살아온 그이의 젊은 날 기억이라고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생활 방편을
찾는 것이었단다. 매일 격자봉 산줄기 오르며 땔감을 찾고, 해지기 전에 바다로 나가 톳을
뜯어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 갔단다. 산과 바다로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나면 겨울이 왔고
산자락 아래 기둥을 세워 박고 짚으로 길게 엮어 만든 건장에 한겨울 바다에서 건져 올린
김을 널어 말리는 일을 반복했단다. 바다에서 김이 나지 않는 봄·여름에는 황무지를 개간
해 밥 대용으로 고구마 심었단다. 그렇게 20년 전에 연탄이 들어오고 다시 전기가 들어오고
얼마 전 상수도 하수도가 설치돼 이제는 그런 날 걱정하지 않게 된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이
라고 웃는다. 그러면서 1년 평균 소득이 2천 만원을 넘어섰다고 자랑도 했다.

보길도 어부와 함께 간 안개바다의 전복 양식장

그이는 전복과 다시마 그리고 미역 양식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그날은 25일째 장맛
비가 내리다가 멈춘 날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바다에 나갈 수 있다며 들 뜬 마음에 밤새 아
내와 함께 미역 줄을 다듬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웬걸 다음 날 새벽이 오자 안개바
다로 돌변한 것이다. 안개는 이윽고 마을 쪽으로 포복하더니 온 동네를 안개로 가득 물들여
버렸다. 이틀째 민박했던 여대생들도 육지로 나가는 배가 끊겼다는 전갈에 발만 동동 구르
고 있었다. 보길도는 먼바다와 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수심이 깊고 우기와 안개가 반복한다.


한동안 포구를 서성이며 담배 몇 개비를 꼬나 물던 그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했다. 전복은
수시로 먹이를 보충해줘야 한다면서 결국 출항을 결심한 것. 포구의 닻줄을 캐고 선외기 로
프를 감아 당기자 스크루가 바다를 힘차게 퍼 올렸다. 안개 자욱한 뱃길을 너무나 자연스럽
게 항해했다. 천상 타고난 섬사람이었다. 다시마 양식장에서 자신의 키보다 큰 다시마를 칼
로 베어낸 그이는 옆 구역에 위치한 전복 양식장으로 이동해 사람 무게만큼 무거운 전복통
을 힘껏 끌어 올렸다. 전복통을 들여다보니 위 부분에 다시마를 넣으면 아랫부분에 사는 전
복이 위로 기어올라와 다시마를 갉아먹으며 성장한 것이었다.

노을 속에 젖어가던 섬에 대한 추억과 아련한 고향 생각

전복은 이렇게 4년 동안 성장하여 손바닥만한 모습으로 자라야 출하가 시작된다. 그러나 현
재 시중 가격은 1kg당 8만원선, 현지 주민들이 도매상에게 넘기는 가격은 4∼5만원 선에 불
과하단다. 결국 긴 세월 품 판 것에 비하면 적자 농사를 짓고 있는 셈. 그런데 아이러닉하게
도 이 전복 농사의 적자를 면하게 해준 것이 가난한 그 시절 입에 풀칠해주던 톳이라는 것.
요즈음 톳 가격은 1kg당 4,150원으로 품값에 비해 월등한 가격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두 가지 양식을 하면서 한쪽의 적자를 다른 양식업으로 보전하는 적자생존의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식장을 오가는 배 한 척 외에도 연중 찾아드는 낚시꾼을 위해 낚
싯배도 별도로 구입해 양식과 낚시, 민박을 동시에 운영하며 어느 한쪽의 벌이가 시원치 않
을 때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이는 이제 우리 농어민들도 스스로 체질개선을 통해
질 좋은 상품으로 경쟁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윽고 폭풍 주의보 해제 소식이 들려왔다. 여객선이 뱃머리를 돌려 땅끝마을로 향해 엔진
소리를 드높일 즈음에 머얼리 진도반도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보길도에 대한 아름다운 추
억을 가슴 깊이 물들여주면서. 파도소리도 그친 적막한 바다에서 섬도 마을도 노을 속으로
젖어갔다. 산다는 것은 때로 저렇게 아련히 깊어 가는 것일까. 아무리 요동치고 방황하는 삶
일지라도 피곤한 영혼은 곧 평온한 집으로 떠나온 그 고향으로 그렇게 되돌아가는 것이리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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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상식/전복과 다시마 이야기……보길도 가는 길
전복은 연체동물로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수심 5∼50m 암초나 해조류가 많은 청정바다에
서 산다. 살을 덮고 있는 타원형 껍데기는 1년에 2.5cm 정도 자라고 껍데기에는 구멍이 줄
지어 솟아 있는데 열려 있는 구멍으로 배설물을 내보낸다. 섬사람들은 이 껍데기를 누룽지
등을 긁는 주걱으로 사용했다. 전복이 먹는 주 먹이는 다시마·미역 등이다. 전복은 시신경
피로에 좋고 여름과 가을에 잡은 것은 살을 빼고 껍질을 말려서 약으로 사용한다.
다시마는 갈조식물로 주로 한국·일본·사할린 등 태평양 연안에 서식하고 길이가 1.5∼
3.5m에 이른데 10m 이상의 큰 것도 있다. 줄기·잎·뿌리 구분이 뚜렷하고 잎은 띠 모양으
로 길고 가운데 부분보다 약간 아래쪽이 넓다. 다시마는 수분 16%, 단백질 7%, 지방 1.5%,
탄수화물 49%, 무기염류 26.5%, 탄수화물 20% 나머지는 알긴산과 라미나린 등 다당류이다.
혈압을 낮추는 데 효과가 크다.
보길도 가는 길은 서울->목포->해남(완도)->보길도행 여객선/대구->광주->해남(완도)->
보길도행 여객선/부산(순천)->해남(완도)->보길도행 여객선/완도 화흥포항(061-555-1010),
땅끝마을(061-533-4269). 성수기와 비수기 운항 시간표가 달라 반드시 문의 후 출발 필요.



박상건(시인. 농림부 공보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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