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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풍경 ④ (도종환-여백)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04. 2. 1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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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나무(사진=섬문화연구소DB)

[詩가 있는 풍경] ④ 여백- 누군가를 위해 여백이 되어 주는 삶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 도종환, '여백' 전문

눈 내리던 숲에서 잠 못 이루고 날을 지샌 적이 있었다. 그 새벽 하늘에 잎이 다 진 가지들. 먹고 남은 전어 가시 같던 가지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하늘에 판박이 된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런 숲 혹은 먼 산을 바라본 적 있는 사람에게 이 시는 아주 실감나게 다가설 것이다.

어두운 풍경이 어둠 속에 그만 묻힐 것 같지만 실상은 하늘을 배경 삼았을 때 너무나 생생하게 흔들리고 있던 것을. 하물며 대낮 그런 여백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에 등 기대어 선 나무들이라면 그 출렁임, 얼마나 아름다우랴. 그렇게 하늘은 엎드린 채로 겨울 나무들에게 무성한 활력과 꿈을 끌어 올려 봄의 생명력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밀물 진 백사장이 한 마리 해오라기 자태를 뽐내주고 지나간 사람들 발자국을 선명하게 찍어주듯이, 여백은 그렇게 아름답고 강렬한 힘의 흔적이다. 세상이 갈수록 각지고 춥다지만 이럴수록 좀더 여유를 갖는다면 얼마나 좋으랴. 좀 더 넉넉한 가슴으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여백이 되어주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있는 풍경 ④] 도종환 作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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