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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풍경 ③ (안도현-우리가 눈발이라면)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04. 2. 1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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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사진=섬문화연구소DB)

[詩가 있는 풍경] ③ 우리가 눈발이라면

- 좋아서 읽으면 되지 왜 쥐어짜기까지 하나?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전문-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이다. 시인은 그저 설경에 빠져 썼던 시인데 요즈음 중학생 독자로부터 홍역을 치른다고 한다. 참고서에서 이 시에 대해 공간적 배경이 어떻고 시간적 함축적 배경이 어떻고 분석하면서 불필요한 사설을 덧붙여 시를 어렵게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

그저 읽어서 좋으면 좋은 시가 아니겠는가. 그러잖아도 풍진 세상에 한 편의 시마저 자꾸 쥐어짜서 어쩌자는 것인가. 눈발처럼 시원하게 살면 그만이련만. 제발 쭈빗쭈빗 눈치보며 살지 말자 한다. 땅뙈기 질퍽거리는 진눈개비가 되지 말고 누군가 가슴에 포근한 함박눈이 되자 한다. 외롭고 그리움에 젖어 가는 이의 창가에 편지로 나부끼는 눈발이 되자 한다. 아픈 상처에 돋는 새살처럼 살포시 젖자 한다.

잠시라도 소외된 이웃에게 따스한 사랑의 눈발로 다가가는 위안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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