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① 벼는 서로 어우러져 산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벼' 전문
태풍 매미 여파에도 용케 버티고 선 벼. 풍년, 흉년타령에 세상을 뒤흔들기도 하는 한해살이 풀인 벼. 그 다사다난함만큼이나 이 시가 등장하던 70년도 격변기였다.
33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느낌 여전히 강렬하다. 세상이 하 어수선한 탓일 게다. 그러나 세상이 각질수록 벼는 '공동체' 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시의 키워드인 '벼'는 어려울수록 서로 의지하며 사는 민초의 모습이다.
사리를 남기듯이 최후에 한 알의 씨알로 남는 벼를 보노라면, 여전히 큰 것과 높은 곳만 향하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주의 군상과 비교된다. 알을 깐 껍질은 밍크보다 따스한 체온으로 이엉을 이어 농민들 삶의 바람막이가 될 것이다.
저 벼처럼 우리도 마음 비우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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