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뒤 공터에서 학교 직원들과 함께 모닥불을 지폈다
옛날 양계장이었던 이 터를 주차장으로 만드는 중인데
건물을 부스고 보니 닭장이었던 나무들이 바닥에 많이 깔려있었다
그래서 학교 이사장은 아이디어를 내서 군데군데 나무를 끌어 모아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며 이 나무들을 불태워 없애기로 했다
그래서 붉은 눈길로 타오르는 모닥불 위에 석쇄를 올리고
조개구이를 해먹었다
화덕 아래에는 고구마와 돼지고기를 파일로 싸서 넣어두고
위에서는 생굴, 청어, 피조개, 소라, 바지락 등을 구워먹는 것이다
눈은 내리는데, 하염없이 내리는데
모닥불 가에서 조개구이 구워먹는 맛이 여간 아니었다
그런데 문득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 어릴 적 아랫목을 데피던 저 모닥불
장작이 귀해서 내 돌 사진 찍으러 가는 길에
어머니는 통나무 가게로 갔다는 어머니
여섯 식구 아랫목 데피고 뜨거운 실가리국을 끓이기 위해
장작더미를 샀다는 어머니
그래서 어머니는 잔치 때마다 아궁이를 지피면
장작불 앞에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렇다, 장작불이 탔다
어머니 눈물이 타닥 탁탁 탔다
하염없이 눈은 내리는데....
생굴을 구워 먹으면서
겨울 바다에서 굴 따던 어머니며 동네 아낙들 생각났다
굴 씨를 말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속굴만 따냈던 갯마을 사람들
지금은 너나 없이 굽고 칼국수며 김장김치에 감초처럼 넣곤 하지만
그 때는 참 귀한 굴이었다
굴을 구워 먹으며 그 시절 떠오르는데 매운 연기에 자꾸 눈물 글썽였다
나원참....하면서 눈 내리는 겨울 숲으로 가서
눈발에 붉어진 얼굴을 식히는데 진종일 고향생각 나 어쩌지 못했다
눈발 속 모닥불, 모닥불 속에 박힌 못이 붉게 타올라 스러지고
장작더미 속에서 옹이 하나 툭, 튀어 나왔다
내 삶의 깊은 옹이들도 튀어 나오는 듯 했다
눈발은 참 무심하게도 내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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