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바다
박균우(청구초등학교 1학년1반)
섬은 파도처럼 멀리 가지 못해 외롭다
나는 그 섬과 바다의 친구이고 싶다
바다는 횡단보도가 없어 좋다
나는 바다와 섬이 좋다
이 시는 해마다 필자와 몇몇 시인이 주축이 되어 섬에서 열고 있는 섬사랑시인학교 해변백일장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초등학생 작품이다. 이번 행사는 대마도를 마주 보고 있는 경남 통영 먼 바다 국도에서 2박3일 동안 70여명의 시인과 일반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백일장 심사에서 이 작품을 마주한 시인 세 사람(이진영 문학과 경계 발행인/염창권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배한봉 시와생명 편집위원)은 금상이나 은상을 주어야 한다며 갑론을박 중이었다. 행사 진행을 맡고 있던 나는 내가 주최측으로 일원임으로 내 아들에게 그런 상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렇게 의견 수렴을 거쳐 동상 아래 장려상으로 낙찰됐던 작품.
이 시를 두고 행사를 파한 뒤 시인들은 포구에서 유람선상에서 초등생 아이의 예민한 감수성을 화제거리로 삼았다. 국도에서 백일장에 참가하지 않고 또래 조무래기들과 놀기에 바빴던 녀석을 "여기서는 시를 써서 내야 해. 네 생각을 그대로 옮기면 돼" 했던 것을 녀석은 마구 글을 깔겨 몇줄 옮기면서 제 이름까지 빠뜨려 심사위원들이 "이름이 없다"며 작자를 찾게 하는 등 요동을 쳤던 녀석이다.
다시금 어린이 눈이 얼마나 순진하고 무서운 것인가를 느끼게 한 사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아들을 진즉 발견하지 못해 첨삭이나 아이디어를 평소 더주지 못했던 아버지의 무관심을 채찍하게 하는 계기였다. 여객선을 타기 전에 멀미약을 나누어 주는 나에게 어느 어머님 하시는 말, "선생님 아들이나 잘 챙겨요!"
균우는 올 때 갈 때 멀미로 심한 곤욕을 치루었다. 이를 염려하는 말씀인 것이다. 녀석에게 국도 여행은 해파리 방어 흙돔 등 책에서만 보던 바다 생물 구경도 구경이지만 극기훈련이었던 셈이다.
오늘은 우리 가족신문 창간하는 날. 균우의 이날 대소동(?)을 머리기사로 올릴 예정이다. 23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이와 관련한 글 내용이 보도돼 첨부한다.
[일사일언] “바다엔 횡단보도 없어 좋다”.....(조선 2002.08.23)
몇 년 전부터 나는 여름이면 섬사랑시인학교를 찾아간다. 그곳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바다도 실컷 보고 시 쓰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휴식도 취하고, 그야말로 임도 보고 뽕도 따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경남 통영 앞바다에 있는 국도(國島)라는 섬으로 섬사랑시인학교를 다녀왔다.
섬사랑시인학교는 섬문화연구소 소장인 송수권 시인과 상임고문인 이성부 시인 및 정일근·필자·박상건 시인 등이 주축이 되어 지난 2000년부터 전국의 섬을 찾아다니며 열고 있는 행사로서 올해로 네 번째를 맞고 있다. 또 올 섬사랑시인학교가 열린 국도는 통영 앞바다에서 1시간20분 거리의 먼바다에 있는 섬으로, 민족종교인 청우일신회(靑羽一新會, 증산교의 한 교파)의 총본산이 있는 섬이다.
섬의 평화롭고 넉넉한 분위기에 취해서 그랬을까. 이성부·송수권 시인의 문학강연과 촛불시낭송회, 분반토론, 낚시대회, 해수욕, 백일장 등이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다들 오랜만의 휴식과 놀이에 생기가 넘쳐 보이는 눈치였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1학년 균우가 바다를 주제로 한 백일장에서 ‘바다에는 횡단보도가 없어 좋다’고 쓴 시는 참석자 모두에게 상상력의 위대한 힘을 맛보게 해준 이번 행사의 백미였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균우는 왜 ‘바다에는 횡단보도가 없어 좋다’고 했을까. 얼마나 횡단보도 없는 세상이 그리웠으면 횡단보도가 없는 바다를 보고 즐거워한 것일까. 2박3일간의 시인학교 일정을 마치고 먼바다를 되돌아오는 동안 참석자들은 다들 바다를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횡단보도마저 없는 또 다른 균우의 바다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 이진영·시인·계간 ‘문학과 경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