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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양수리에서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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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없다는 소식에
기차여행 길을 접고 청량리에서 양수리 가는 버스를 탔다
2001년 12월 31일 밤 여행은 그렇게 눈발 휘날리는
양수리행으로부터 시작됐다

눈은 계속 내리고 춘천가도엔 차들이 빙판길을 나뒹굴고
내가 탄 버스도 공회전을 몇번씩 되풀이했다
어느 외진 마을에서 무작정 내렸다
밤새 눈을 헤치며 걸었다
그리고 양수교를 건너 저편 양평쪽으로 향했다
양평 터미널 부근에서 추위와 갈증을 red 카페에서 달랬다

추위도 녹이고 갈증도 풀었는데
빈 가슴에 맥주가 2천씨시 정도 들어가자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친구와 좋아하는 선배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시 배한봉 시인에게 핸펀을 두들겼다
아니? 그이도 화왕산 아래 술집에서 홀로 술을 들이키고 있는게 아닌가
쓸쓸하다고 했다
나는 그것은 패배주의적 생각임으로 허전하다 표현하자고 했다
아무튼 한해를 접는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런 일인줄은 몰랐다
서로가 동의했다

불혹을 넘어서는 삶의 유동같은 것일까
급속한 유속감에 대한 흔들림 정도로 생각됐다
어째튼 삶은 그렇게 흔들리며 가는 것일게다

다시 자정이 다 되어 송수권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언가 허전하고 답답해 강가로 나와 있다고 하자
허허, 너도 그럴 때가 있느냐며 좋은 시나 한편 써오라고 다독여주었다

다시 은현시사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정일근 형님의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시집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집에 신문 쪼가리가 끼여 있었다
뇌진탕을 딛고 이번 시집을 낸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는
문학평이었다
다음에 만나면 꼭 이 쪼가리를 꼭 전하리라 생각했다
다시는 아픔을 기억하며 형님의 얼굴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형님은 주무시다 내 전화를 받았는데도 내 취담을 애써 들어주었다
그리고 끊었다가 다시 걸었다
송 선생님이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모종의 전갈을 급히 타전해온 탓이었다
형님은 그리 하자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취해 강변의 한 여관방으로 갔다
강가로 방을 잡았다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세차다

그렇게 방안을 뒹굴다
새벽 3시께 강변으로 나갔다
살을 에는 바람소리
싸래기 눈발까지 휘날렸다

양수리 강 언저리는 다 얼어 있었다
그 얼음 위로 눈발이 쌓여갔다
솔나무 느티 갈대숲에도 한무더기의 눈들이 내려 앉았다
그것도 모자라 하염없이 눈발을 뒤흔들어 대는 것이란...

아침 해가 솟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해이지만
한해 끝자락에서 저 강줄기에 내 마음을 풀어 보내고 맞는 새해 새햇살
양수리의 아침은 그렇게 뜨겁게 달구어졌다

그렇게 이 시간까지 지새운 상념의 시간들이
강물 깊이깊이 속깊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을 주섬주섬 먹고
택시를 잡아타고 카페촌으로 향했다
비탈길은 빙판길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어느 산자락 아래 얼마 전에 세운 듯한
이 지역 어느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시인들의 송년의 밤을 한 흔적이 있었다
외로운 지역 시인들의 흔적 그러나 뜨거운 우정 같은 흔적들...

시비에는 [꽃바람] 이라는 시가 적혀있었다
온실에서 큰 꽃이 밖으로 나오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가 되었다가
어느날 낙화 하는 그 자리, 꽃바람이라는
관조적 시조 한수였다

버들피리라는 카페로 들어갔다
다시 강 언저리를 바라보며
따스한 커피를 마셨다
방갈로 장작타는 소리가 경쾌했다

그곳 카페에서
이틀의 일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 내마음은 저 강물이 되어 흘러갔다

문득문득
문자 메시지들이 날라왔다
선배님!
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지금 집으로 돌아와
지난 해 보내다 만 연하장에 육필의 흔적을 남긴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새 정신이기에
기꺼이 펜을 눌러 휘갈긴다

그렇게 모든 분들께 안부를 전한다
저 강물처럼 철썩철썩이면서
힘찬 새 아침처럼 흘러가는 그런 한 해가 되라고....

북한강 남한강이 함께 만나 흘러가는 양수리처럼
함께가는 행복한 삶
아름다운 날들이 되라고 말이다
.................................................

겨울 양수리

박상건

나는 두근거리는 눈발로 흔들리며 십 이월의
강을 건넌다
제 몸 낮춰 등 내밀어 주며 층층이 눈길을 내는
눈발,
눈발 분무질하는 춘천행 마지막 기적소리에
메밀꽃 같은 그리움 피었다 사라지고
뗏꾼들 녹슨 주전자에 한사발의 눈발 노적봉처럼 쌓여 간다만
차창에 박제된 양수리의 겨울은 떠날 줄 몰랐다

마음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할 때, 눈발도
양수교 불빛줄기에 걸려 넘어지고
자갈들 악다물고 뒤척여 상처 난 언 강에
눈발 내려앉을 때마다 살얼음장 움찔대는 것이지만
빈 나루터에 하얀 빵모자를 쓴 갈대 밑뿌리
구들장 실핏줄로 뻗어 출혈의 강 당겨 생잎 한 장씩을 키워 냈다

밤새 휘몰이 한 눈발들, 용문사 범종소리에 영혼의 햇살로 깨어나
일제히 강비늘 헤치며 연등 꼬리표처럼 나부꼈다
노을과 비바람 눈보라이거나 햇무리를 위하여
늘 강벌 비워두고 흐르는 강에
눈발,
지상의 모든 이름들 지워 가는 것이 아니라
남한강 북한강이 서로 이마를 맞대듯이,
제 가슴 내려놓고, 뜨거운 혈맥으로 깊어 가는 것이다

계간 <다층> 2002.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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