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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북한산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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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베낭을 둘러메고 북한산을 향했다
1차 집결지는 평창동 북악파크 호텔 앞이었다.
먼저 온 만고산악회 일행 옆에서는 등산장비를 파는 아저씨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었다
주택가를 가로질러 오르는 길은 빙판길이었다
음지 쪽인 동쪽 방향 북한산에는 온통 흰 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형제봉에서 내려다 본 북한 산 줄기에 이내가 자욱했다
그 아래 밥풀때기마냥 덕자덕지 나붙은 서울의 집들은 스모그에 갇혀 있었다
사진기를 내어 사진 한 장씩을 찍었다
저마다 그럴 듯한 포즈를 취했다
하긴 눈 덮힌 산을 두고 흥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시 보국문을 거쳐 대성문으로 향했다
북한산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산성 담벼락을 따라갔다
우리 일행들은 태조왕건 드라마를 이야기했다
능환이는 되지 말자, 견훤의 욕망이 지나쳤다, 견훤이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렸다 등
저마다 반도에서 계속되는 민족전쟁과 지역갈등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누군가 누군가에게 "능환이 같은 사람"이라고 농담을 했다가
말싸움으로 변질될 뻔 하기도 했다
분명 능환이는 인기가 없는 사람임에 분명해 보였다
대성문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하얀 눈이 둘러 퍼져 있었다
이성부 시인과 한 컷 찍었다
아, 이 눈부신 겨울산....

다시 하산 길이다
식사할 시간이지만 우리는 더 내려가 한적한 계곡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등반 3시간 째가 되는 정오에, 너럭바위 위에 쌓인 눈들을 치우고 도시락을 풀었다
그리고 저마다 베낭에서 소주 한병씩을 꺼냈다
나는 보온병 버튼을 눌러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었다
겨울 산에서 얼어붙은 밥에 라면 국물이라...얼마나 가슴을 후끈하게 데워주는지 아는가
거기에 소주 안주국물까지 되어주느 말이지
누군가 족발을 내놓았고 또 누군가는 닭도리탕을 끓여 와 술 안주감으로 돌렸다
캬∼아, 적당히 취한 일행들이다
그러나 아직 하산은 멀었다
누군가 산에서는 마지막 하산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느 여성 회원이 쿵∼했다
나는 그 돌촉은 분명 수컷일 거라고 우스개소리를했다
그런 나는야 거의 다 내려올 즈음에 돌틈 얼음장에 쿵∼ 했다
누군가 그 돌촉은 분명 암몸일거라고 말할 까 봐 혼이 났다

아무튼 그렇게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 쪽으로 하산했다
언젠가 어느 여성 문학평론가와 운치있는 저 숲 속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잔 마시던 기억이 눈발처럼 새롭게 휘날렸다
우리 일행은 4·19기념탑을 참배하고 해산하기로 했다
그 곳에는 정한모, 이성부 시인 등 12명의 시인들이 쓴 4·19 추모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시비를 새로 세웠다고 했다
일행들은 인근 호프집에서 하산주를 마시면서 시인들 시비에 대해 나름대로 토론을 했다
거개 누구는 자격이 없는 듯 하다, 누구 시는 너무 행사시에 집착한 작의적 냄새가 난다 등...
그러면서 산을 잘 타서 람보라고 불리우는 김상기 피디(KBS 째즈 음악담당)가 술 한잔 걸치며 정한모 시인 詩 마지막 구절을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성부 시인의 마지막 구절과 비교하며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길 가다가 눈짓한 그 시비에서 두 구절씩을 외워 온 그이를 보고 존경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詩를 볼 줄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양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양심이라...
그러면서 이성부 시인의 시가 남성적이고 명징하며 양심적이라고 했다
이 시인과 산에서 가장 잘 부딪치는 그이가 이 말을 했다는 사실을
이성부 시인과 2차 뒷풀이한 선술집에서 넌지시 전해주었다
이 시인은 헤어지면서 그이가 있는 노래방으로 가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산이 좋아 산으로 간 사람들
시가 좋아 시 이야기로 갈무리한 북한산 겨울 산행
오늘 북한산이 나에게 푸짐함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고맙다 북한산아!
반갑다 4·19야! 위대하다 민주주의여!
산에 대한 울림, 詩에 대한 울림으로 이 한주간은 엔돌핀이 내 뇌리에 팍팍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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