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교정에 핀 목련꽃 아래서 문예반 선생님과 함께 만들던 교지에 대한 추억이 이따금 그리움의 물결로 여울져오곤 한다. 친구들이 정성껏 쓴 글에 삽화를 집어넣고 서투른 시를 축시랍시고 책머리에 올렸던 교지. 선생님과 학생들이 웃음과 사랑으로 가슴 맞닿아 만들던 그 교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주며 서울의 한 초등학교 1학년생들과 담임 선생이 글과 그림을 모아 복사본 한정 학급문고를 내놓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월 15일 서울청구초등학교 1학년 1반 아이들은 마지막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두툼한 학급문고를 한 권씩 받았다. 한 권의 학급문고에는 선생님이 그 동안 제자에 대해 느낀 점을 글로 쓴 그림 엽서 한 장씩도 끼여 있었다. 1학년 아이들이 맨 처음 학교라는 데를 들어와 맺은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에 대한 추억이 진하게 묻어난 학급문고를 받아 쥔 아이
들은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만든 책 앞에서 일제히 와∼와∼ 함성을 터뜨렸다.
[천사의 미소를 닮은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이 학급문고 첫 장에는 담임 김장희 선생이 직접 찍고 일일이 딱풀로 붙인 아이들 사진 한 장이 붙어 있다. 그리고 친구들 소개난을 펼치면 각자 자기 얼굴을 그리고 쓴 글이 참 천진스럽게 실려 있다.
"나의 이름은 박균우 입니다. 나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습니다. 나의 꿈은 외교관입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키즈헤럴드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는 영어를 잘해서 독일에 있는 클로제 축구왕을 만날래요. 그 다음에 브라질에 가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나우두를 만나서 어떻게 축구를 잘하는지 영어로 말할래요.....",
"저는 홍성보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컴퓨터에서 크레이지아케이드를 좋아합니다.그리고 제가 싫어하는 것은 학습지입니다",
"성현아! 토요일마다 줄넘기를 안 가지고 올 때 빌려주어서 고마워 너도 안 가지고 오면 내가 빌려줄게. 넌 짜증도 안내서 참 고마운 친구야. 2학년이 돼서 같은 반이 되자",
"안녕 재희야! 내가 너한테 학교생활을 몰라서 많이 물어봐서 미안해. 앞으로 잘하고 다른 애한테도
물어볼게 참 고맙고 미안해...." 등등.
아쉽고 미안했던 그리고 고마웠던 친구들에게 마지막 헤어지기 전에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은 편지는 서투른 글이 너무나 맑고 정겨워 보인다. 저마다 색종이 안 가지고 올 때 빌려주고, 좋아하는 데 말로 표현 못한 마음, 또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는 글귀들은 아름다운 1학년생들의 우정을 되새김질하게 해준다.
이밖에 동시 모음집, 삼행시, 학부모들의 격려의 글들도 실려 있다. 1년간 학생들이 쓴 일기와 그림들을 일일이 오려 붙이고 복사해 문고를 펴낸 담임 선생은 "아이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고 다소 미흡하더라도 아이들의 필체를 그대로 살려 먼 훗날 성장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담임 선생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낀 점을 적고 학부모들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의 그림엽서와 핸드크림 하나씩을 작별의 선물로 건넸다.
이번 문집을 만든 과정을 들여다보면, 참된 스승은 지혜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하지 아니하고 제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마음의 문으로 들어가라고 인도한다는 말을 생각케 한다. 그리고 참된 스승이란 아이들에게 독창적인 표현과 지식의 희열을 불러일으켜 그 자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 스승과 제자들의 아름다운 이별의 선물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