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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시인의 60년 문학인생, 시선집 '시사백 사무사(詩四百 思無邪)’

섬과 문학기행/시인을 찾아서

by 한방울 2025. 4. 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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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시인님으로부터 한 권의 시선집을 받았다. ‘시사백 사무사(詩四百 思無邪)’라는 제목의 시집이다. ‘사무사(思無邪)’는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음을 말한다. 공자가 시경에 305편을 뽑은 후 한 말이다. 60년 문학의 길을 걸어온 시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가 있었다.

신지도 바닷가에서 오세영 시인(사진=섬문화연구소DB)

꽃씨를 묻듯

그렇게 묻었다,

가슴에 눈동자 하나.

독경을 하고, 주문을 외고,

마른 장작개비에

불을 붙이고,

언 땅에 불씨를 묻었다.

꽃씨를 떨구듯

그렇게 떨궜다,

흙 위에 눈물 한 방울.

돌아보면 이승은 메마른 갯벌,

목선 하나 삭고 있는데

꽃씨를 날리듯

그렇게 날렸다,

강변에 잿가루 한 줌.

 

- ‘꽃씨를 묻듯’ 전문

 

꽃씨를 묻듯, 그렇게 걸어온 시인의 길다. 꽃씨는 시인의 눈동자가 되고 눈물이 되었다. 때로 마른 장작개비에/불을 붙이고,/언 땅에 불씨를 묻었다.” 사계절의 순환하는 동안 시인도 자연과 더불어 꽃씨를 떨구듯/그렇게 떨궜다”. “돌아보면 이승은 메마른 갯벌임을 알았다. 꽃씨는 척박한 땅을 견디고 헤치면서 나무를 키우고 숲을 이루고 하늘 아래 바다를 이뤘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면 그 뒤안길에 목선 하나 삭고 있었고 강변에 잿가루 한 줌.”으로 남았다.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 ‘바닷가에서’ 전문

오세영 시선집 '시사백 사무사' 표지(사진=푸른사상사 제공)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바닷가/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거기 있다.” 살며 답답하고 힘들 때, 이 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큰 용기와 슬기를 준다.

 

나는 해마다 섬에서 등대에서 시인들과 섬사랑시인학교 캠프를 연다. 노을이 지던 그 바닷가에서 오세영 시인은 이 시를 낭송하며 시적 분위기를 한층 돋우곤 했다. 그 섬, 그 바다로 떠나고 싶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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