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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불고 안개에 묻힐지라도, 다시 새 길을 가자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18. 9. 1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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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비바람 불고 안개에 묻힐지라도, 다시 새 길을 가자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을 안고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 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이성부,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전문)

 

<일간스포츠> 문화부장과 산악인으로 활동했던 이성부 시인. 그의 대부분 작품 소재는 산이다. 산사람 이성부 시인은 필자와 오래도록 섬 사랑에도 빠져 살았는데 섬은 바다에 있는 산이라는 게 지론이었다. 애주가 시인은 마지막 세상과 작별 전 병상에서 필자에게 말했다. “상건아, 술 아껴 먹어라천상 시인이었다. 시인은 나이가 들어서도 늘 따뜻하고 순박한 의리파 전라도사내였다. 광주항쟁 때 서울 뒷전에 물러있었다는 이유로 절필하기도 했다.


그는 산을 타는 과정에서 지혜를 찾아내고 가락을 넣어 시로 만들었다. 산 시인은 바위에 패인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암벽을 타는 이녁을 일러 남의 상처에 내 생명을 의탁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네 삶은 암벽등반 같은 것. 늘 긍정적이었던 시인은 가쁜 숨 몰아 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은 서럽도록 푸른 자유라고 보았다.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 비로소 새로운 길의 시작이니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찢겨지고 피 흘리며 가잔다. 어느 날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그렇게 우리 새 길을 가잔다.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데일리스포츠한국 2018.9.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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