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비바람 불고 안개에 묻힐지라도, 다시 새 길을 가자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을 안고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 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이성부,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전문)
<일간스포츠> 문화부장과 산악인으로 활동했던 이성부 시인. 그의 대부분 작품 소재는 산이다. 산사람 이성부 시인은 필자와 오래도록 섬 사랑에도 빠져 살았는데 “섬은 바다에 있는 산”이라는 게 지론이었다. 애주가 시인은 마지막 세상과 작별 전 병상에서 필자에게 말했다. “상건아, 술 아껴 먹어라” 천상 시인이었다. 시인은 나이가 들어서도 늘 따뜻하고 순박한 의리파 전라도사내였다. 광주항쟁 때 서울 뒷전에 물러있었다는 이유로 절필하기도 했다.
그는 산을 타는 과정에서 지혜를 찾아내고 가락을 넣어 시로 만들었다. 산 시인은 바위에 패인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암벽을 타는 이녁을 일러 남의 상처에 내 생명을 의탁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네 삶은 암벽등반 같은 것. 늘 긍정적이었던 시인은 “가쁜 숨 몰아 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은 서럽도록 푸른 자유”라고 보았다.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 비로소 새로운 길의 시작”이니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찢겨지고 피 흘”리며 가잔다. 어느 날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그렇게 우리 새 길을 가잔다.
글․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데일리스포츠한국 2018.9.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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