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사진=섬문화연구소)
[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그 섬에 가면 삶이란 뭔가, 밤새 뜬 눈 밝히리라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
- 안도현, ‘섬’ 중에서
섬으로 홀로 훌쩍, 떠난 적 있는가. 풍랑주의보에 발 묶여 사나흘 갇혀본 적 있는가. 거센 파도와 비바람에 휩쓸리거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본 적 있는가. 필자는 30년 동안 섬을 여행한 세월만큼 숱한 갈림길을 맞닥뜨리고 파도처럼 헤쳤다.
섬에 갇히면 무엇을 할 것인가? 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운명일 바에 섬을 찬찬히 들어다 봤다. 들어다 볼수록 곳곳에 소소한 행복의 모티브와 인생의 텍스트가 널려 있다. 하루라는 일생을 사는 인간이나 자연이나 저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간다. 저마다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기며 파도를 쳐올리고 수없이 울면서 수평선을 향한다. 넘어지고 부서지고 울음 울다, 지쳐서 속울음 울다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해지는 바다. 그렇게 바다는 해가 뜨고 지고 썰물과 밀물이 오고가며 수평을 이룬다.
홀로 고독과 사색을 즐길 줄 모른다면 섬에 갈 수 없다. “혼자서 훌쩍, 하면서” 떠나고 싶은 게 섬이었지만 정녕 “민박집 형광등 불빛아래/혼자 한번/섬이 되어 앉아” “바다를 꽉 붙잡고는/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밀어내느라 안간힘쓰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냥 무섭고 두려울 뿐이다.
그 섬에서 홀로일 때 가장 정직하고 경건해진다. 묵언과 적멸의 깊이를 실감한다. “삶이란 게 뭔가/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지만 삶이란, 존재할 때 사유하고 수평일 때 평온하고 깊어간다. 저 노을빛처럼.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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