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③ 오세영, ‘바닷가에서’
사는 길 막막하거든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 (오세영, ‘바닷가에서’ 전문)
부서지는 파도...낮춤의 미학....(사진=박상건)
해마다 섬문화연구소는 섬사랑시인학교 캠프를 연다. 그해 여름 덕적도에서 시낭송을 했다. 섬마을 아이들과 주민, 해군 장병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시인으로 대학교수로 살아온 노시인은 촛불을 켜들고 나와 한 편의 시를 낭송했다. 창밖에 파도소리는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바닷가/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거기 있다.”
세상은 지금 인공지능(AI), 가상현실(VI), 증강현실(AR) 등 4차 산업을 말하며 수직의 삶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인은 아래로 부서지며 살라고 한다. 바다는 한번은 비우고 비운 만큼 채워 수평을 이루는 것이니, 공전하는 우주의 섭리를 깨달으라고 일러준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사는 일이 때로 버겁거든 무거운 짐 내려놓고, 아득히 지는 노을을 바라보라. 지금 지는 것은 영원히 지는 것도 아니다. 수평선에 지는 해는 다시 떠오른다.
그렇게 “마침내 밝히는 여명./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거기있다.” 그러니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바닷가./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글, 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 이 글은 <데일리스포츠한국>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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