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②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더러는 그리워하고,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
서해 관매도의 저물무렵(사진=섬문화연구소)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더러는 그리워하며 살 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저 뻘밭이 밀물을 쳐 보내듯이
갈밭머리 해 어스름녘
마른 물꼬를 치려는지 돌아갈 줄 모르는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먼 산 바래서서
아, 우리들의 적막한 마음도
그리움으로 빛날 때까지는
또는 바삐바삐 서녁 하늘을 깨워가는
갈바람소리에
우리 으스러지도록 온몸을 태우며
마지막 이 바닷가에서
캄캄하게 저물 일이다.
- 송수권, '적막한 바닷가' 전문
상록수 교사였던 시인 송수권. 섬과 산골 학교에서 천생 선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광주광역시로 발령 받으면서 이제는 눌러 앉는가 싶더니 명예퇴직을 신청한 후 서귀포로 훌쩍, 떠났다. 범섬 앞으로 툭 트인 작은 방에 책상 하나 두고 시 쓸 수 있음에 감사했던 시인이다.
다시, 서해 변산반도로 길 떠나 뻘밭 짓이기는 삶을 살다가, 등단작품의 무대였던 지리산 맞은 편 섬진강변에 둥지를 틀었다. 아내가 그간 모아둔 피 같은 돈으로 마련해준 집필실이었다. 그렇게 "바삐바삐 서녁 하늘을 깨워가는/갈바람소리에" "온몸을 태우며" 시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의 버팀목이자 동행자인 아내가 백혈병으로 쓰러져 생사를 오갔다. 시인은 돈도 피도 되지 못한 이녁의 삶을 한탄하며 절필을 선언하겠다고 했다. 시인의 아내를 향한 바다보다 깊고 깊은 사랑에 하늘도 감동하여 그는 이승을 떠났지만 아내는 시인의 삶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이승의 우리들은 아웅다웅 살지 말 일이다. "더러는 비워 놓고 살 일이다./하루에 한 번씩/저 뻘밭이 갯물을 비우듯이".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겸임교수)
* 이 글은 <데일리스포츠한국>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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