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박상건 환경칼럼] 그 섬으로 돌아가자

여행과 미디어/미디어 바로보기

by 한방울 2015. 1. 9. 10:34

본문

[환경칼럼] 자연 속 희망 찾아 그 섬으로

 

박상건 시인·섬문화연구소장

 

에너지경제 ekn@ekn.kr 2015.01.08 20:16:30

 

박상건 시인·섬문화연구소장

 

산 정상 솔가지에 맺힌 한 방울이 차곡차곡 넘치지 않게 계곡을 채우다가 아래로 흘러내려간다. 머물지 않아서 여백이 있고 그 여백 덕분에 새소리 낙엽 지는 소리까지 하모니를 이룬다. 물줄기는 다시 아래로 흘러가 메마른 평야의 젖줄로 적시고 마침내 바다로 이르노니 이를 도()라고 이른다.

 

노자 동양철학에 근거한 물은 그렇게 배려와 비움으로 흘러간다. 흐르니 다툼이 없고 허물이 없다. 한번 비운 후 밀물로 채우는 바다의 삶과 일맥상통한다.

 

루소는 말한다. 자연은 절대로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고. 우리를 속이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고. 자연에는 결코 오류가 없다. 인간은 인위적으로 선과 악, 어둠과 밝음, 위와 아래 그렇게 수직의 삶을 산다. 그러나 자연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꽃은 피면 지고 지는 꽃은 다음 생애의 꽃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된다. 수평적 삶을 사는 자연의 극치는 사랑이다.

 

나는 20년째 섬을 떠돈다. 2천여 개 이상의 섬을 찾는 일은 원초적 본능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민족의 후예로서 운명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섬은 3,358. 이 중 무인도가 2,876, 유인도 482, 70%가 남해안에 분포한다.

 

남쪽 섬사람들은 지극히 자연친화적이다. 거센 바람과 외침을 받으며 스스로 생존하는 방식을 섬과 바다에서 익혔다. 자연에서 시와 그림 등 예술적 상상력과 은유의 기교와 매력을 터득해왔다. 섬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의 상징어가 나부낀다.

 

그 섬에 가면 섬사람의 문화와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출렁인다. 갯바위 아래 수많은 해양식물과 한 뼘 섬 기슭에 뿌리를 내리는 꽃과 식물들의 생명력이 있다. 반도의 한국인들은 그곳에서 살아 있는 자연을 체험하며 삶의 여유와 희망을 깨닫는다.

 

여수시에서 통영시 한산도에 이르는 한려수도와 남해도, 거제도 해안 일부를 포함하는 국립공원을 한려해상은 드넓은 쪽빛바다로 눈부시게 출렁인다. 어족자원이 풍부해 양식업은 물론 수많은 강태공들이 이 바다를 찾는다. 기후가 온화하여 사계절 여행이 가능하고 발길 닿는 섬 기슭마다 난대성 식물인 동백나무, 비자나무, 치자나무, 유자나무, 춘란, 풍란 등이 자생한다.

 

자연의 이치를 잘 활용한 것이 창선도 죽방렴 멸치어장이다. 물살이 빠르면서 얕은 지족해협에 대나무 말뚝을 V자로 박아놓아 고기가 빠른 물살 때문에 방향을 잃고 이 대나무 길 사이로 빨려 들어가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아주 원시적인 고기잡이 방식은 세월이 지나도 우리네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목포항에서 중국 방향으로 97Km 거리에 있는 흑산도는 산세와 물빛이 너무 푸르다 못해 짙푸르게 검은 색을 띤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섬 전체가 다도해국립공원이다. 상라봉 정상으로 구불구불 고갯길은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양새이다. 이 고개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올망졸한 섬들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흑산도에서 26Km를 더 가면 남서해안 마지막 섬 홍도다.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는 섬은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그래서 홍도에서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뭍으로 가져올 수가 없다. 붉게 물든 해안절벽이 억겁의 세월을 말해준다. 붉은 절벽에 타오르는 노을이 부서지면 더욱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홍도2구 사람들은 남자는 홍어 잡이, 아낙들은 해녀물질을 하며 산다. 남도 섬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아주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 마을 오른편 오솔길을 타고가면 홍도등대가 있다. 일몰 포인트이기도 하다.

 

남쪽 쪽빛바다의 섬들. 그 섬에 가면 남해안의 삶과 문화, 역사의 물결이 그렇게 푸르게 푸르게 출렁인다. 바삐 살면서 잊고 산 나 자신을 찾아 훌쩍, 떠나보자. 나를 빛나게 할, 진지하게 반추해줄 그 원초적 고향, 그 섬으로 돌아가자.

 

박상건 시인·섬문화연구소장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