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에 시(詩)를 읽고 길을 묻다
서양화가 김충호‘피고 날다’개인전
홍대 앞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 훌쩍, 정약용 유배지 강진으로 떠났던 서양화가 김충호.
그는 3년째 고향 강진에서 마량포구 앞바다 섬들에 귀 기울이고 섬의 기표를 화폭에 담아
지난해 개인전은 연데 이어 이번에는 시인 김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는
독백에 응답하듯 남쪽 들녘 꽃들과 나눈 대화를 화폭에 담아냈다.
그의 작품은 아주 찬연한 자연의 모습을 투명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했다. 지나친 기교를 거부한다.
자연의 풍경과 이치에 비운 마음을 입히려고 애쓴다.
한 송이 꽃에 나비가 가볍게 내려앉듯이 타자가 그 작품 속 자아와 합일을 이루게 한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그는 그 떨어져 생긴 여백에 지고 다시 필 꽃의 의미를 피어낸다.
그래도 작품전 타이틀도‘피고 날다’인지 모른다.
그것은 또 하나의 생명력을 위한 부활이거나 윤회의 연기망(緣起網)이다.
꽃은 피고 지는 것이고 져야만 반드시 다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의 화폭에 담긴 꽃들은 가녀리다. 선이 굵지 않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 속 절제를 이 서양화가의 붓놀림에서 오보랩 되는 것은 우연일까.
문득 남도 출신 오세영시인의‘9월’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한 송이 꽃에서 삶의 길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는/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아스팔트가/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코스모스 들길에서는 문득/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9월은 그렇게/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하늘 냄새가 난다.”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꽃은 길이면서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김춘수의‘꽃’처럼“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존재 의미를 싣고 허공에 발 딛은 꽃. 화백은 그 꽃에게 길을 묻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자연의 침묵, 속울음 같은 것에 귀를 내밀면서 그 소리를 기표로 옮겨 우리에게 무한한 자연의 울림을 읽게 한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을 깨닫게 한다.
인간과 자연의 심미안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이런 서정적 스토리를 구현해내는 것이 김충호 화백의 장점이다.
그래서 그의 화폭은 수많은 향기와 꽃바람으로 우리네 가슴에 일렁이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려주는 김충호 화백의 개인전은 오는 9일부터 13일까지 휘목미술관,
16일부터 22일까지는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문의: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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