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祝詩]
청해진의 아침을 노래하다
- 완도농협 40주년에 부쳐
박상건(시인)
어푸어푸, 칠흑의 밤바다를 헤쳐 와
수평선 흔들어 깨우는, 눈부신
햇살을 보라
찬란하게 부서지는 저 아침의 햇살을
청해진 앞 바다 둥둥, 북채를 처 올리는,
구리 빛 얼굴에 이두박근 불끈불끈
불혹의 우리 장형(長兄)이 뜨겁게,
뜨겁게, 흔들어 깨우는 저 아침바다를
저 바다는 신열의 땀방울로 깊어간 우리네 삶터였다
가장이 따로 없던 보릿고개 시절,
조부니는 진종일 그물에 처박힌 전어를 솎아내고
어머니는 저 바다에 온몸 던져 물질을 하고
썰물이면 낙지구멍 헤치고, 쏙쏙 쏙을 빼내고
굴 껍데기에 그은 생채기는 조새 찍어쌓던 날만큼 아물어 갔다
아부지 작은 아부지 지게에 짊어지고 온 진질은
숱한 비바람불고 울음 울어, 울어 썩어서야 거름이 되었다
삶도 사랑도 갯물 같은 세상을 털며 가는 길
개펄 질척질척 짓이기며 가는 길
만선이거나 빈 배이거나, 해 저물녘이면
다 비우고 갯강에 목선 밀며 돌아오는 길
조가비 하품하는 삼태기 허리춤에 끼고
그물코에 파닥이던 물고기 깔망태에 울러메고 귀가하면,
고단한 하루는 모락모락 굴뚝 연기로 흩어져 가곤 했다
매생이국에 하루일생을 훌훌 털어낸 겨울밤,
다시 밝아올 내일을 위하여
온 가족 호롱불 아래 옹기종기 둘러 앉아
새벽 찬 바다에서 뜯어온 김을 발라내고
타닥 탁탁, 공돌 치는 소리에 그 해 겨울은 깊어갔다
남몰래 참아온 속울음까지 타닥 탁탁,
건장 김 마르는 소리에 다 태워버리고 나면
우리네 일용할 양식인 한 장의, 발장 같은
그 황토밭에서 도리깨질에 참깨 터지는 소리
수확이 끝난 논에서는 어깨 들썩이며 볏단을 돌리고
지난날 까시래기 삶들도 페달소리마다 황금낱알로 탈곡되었다
그렇게 청해진사람들은 논두렁밭두렁 바닷가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품앗이 되어 살어리랏다
저 바다가 수평으로 살아온 것처럼
저 파도가 어깨 걸고 함께 출렁이는 것처럼
울어도 함께 울고 넘어져도 함께 걸려 넘어지면서
마침내 일어나서는 함께 메아리치면서
이 바다 뜨겁게, 뜨겁게, 달구고
흠뻑 적시면서 출렁였다
섬도 삶도 저 바다가 포말을 감아 돌리는 것처럼
섬 기슭 한 뼘 땅뙈기에도 뿌리 틀고 흔들리며 피는
복수초처럼, 한 가닥 희망의 돛대를 달고서
실오라기 길에서도 푸른 물살 철썩이며 사는 일이다
젊은 날 원양어선 타고 낯선 바다에서 투망질하면서
품삯 꼬박꼬박 우편통신환으로 보내오던 그 청년은
어느 이름 모를 바다 밖으로 생을 던지곤 했다
전보 한 장에 마도로스의 인생이 오버랩 되던 그날 밤
온 동네는 소리죽여 울어야만 했다
보라, 저 푸른 바다를
스스로 채찍질하여 푸르러 간 지난한 역사(役事)를
짜디짠 속울음, 속으로 울어, 울어서
갯바람 처 올리며 커온 푸른 바다를
지난날 대일무역 역군들이 온 몸 받쳐서
푸른 혈맥으로 출렁이는 청사(靑史)의 바다를
삶도 사랑도 기쁨과 슬픔으로
반반씩 버무려 살아온 40년의 세월
오일장 좌판에서 어판장 공판장에서
살아 파닥이는 삶을 위하여, 허리 굽어 살아온
그 세월만큼 상황봉 긴 능선이 뻗어 내려간 완도항에
4H 역군처럼 다부지게 꿰차고 앉은 섬,
희망의 푸른 상록수림 주도(珠島)가 웃는다
빙그레 웃는다, 빙그레 웃는 섬, 완도(莞島)의 지킴이가 되어
산다는 것은 너와 나, 두 가슴이
행복의 집을 짓는 일이다
뿌리 없이 사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산간농지 간척농지 곡괭이질하면서
예까지 일궈온 우리는 위대한 농어민들
우리는 영원한 청해진의 후예들이다
이제 다시 가자 우리 다함께
영차, 영차, 푸른 바람 푸른 물결 쟁기질하면서
신세기의 푸른 역사를 파종하고 수확하러 가자
우리 다시, 청해진의 아침을 노래하자
우리 다시, 청해진의 희망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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