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여름이면 왜 섬여행을 떠나는가

여행과 미디어/여행길 만난 인연

by 한방울 2011. 6. 27. 14:57

본문

여름 꽃이 핀 그 섬에 가고 싶다

   

박상건 (시인. 섬문화연구소 소장)

 

 

 

 

파도소리가 유난히 귓전에 쟁쟁한 여름이다. 섬이 꼬드기는 계절이다. 그 섬의 유혹에 흠뻑 빠져도 좋으리라. 며칠 전 한 해양연구원 사보 기자가 인터뷰를 왔다. 기자는 “선생님은 왜 섬에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정말 지겨운 질문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 대부분 질문은 왜 섬에 가는가? 어떤 섬이 제일 좋습니까? 그런 것이다. 1박2일 피디가 맨 처음 전화를 걸어와 촬영할 섬을 선정해달라고 했을 때도 그랬다. “박 선생님, 정말 좋은 섬 하나 선정해주실래요?”. 대답은 늘 한 가지. “나는 대한민국 섬이 다 좋아요...”

 

영국 등반가 조지 맬로리는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거기 산이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섬놈에게 섬은 삶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사람들 이름이 고유명사이듯 모든 섬들은 저마다 태생적 비밀과 다름의 문화를 타고났다. 그래서 독창적이고 아기자기하고 정겹다. 그 다른 섬에 가서 어릴 적 수많은 추억을 떠올리고, 그동안 부대끼며 살면서 터득한 여러 삶의 기표를 보고 어렴풋이나마 새로운 길이 찾는다. 책 속에 길이 있듯이 섬에도 길이 있다. 그렇게 상상력이 확장된다. 섬 여행 횟수만큼 생각이 넓어지고 창의적 발상이 샘솟는다.

 

섬으로 가는 길은 나즈막히 나를 반추하는 길이다. 갯바위 아래 수많은 해양식물이 새 생명을 꿈꾼다. 섬 기슭에는 한 뼘 땅뙈기에 뿌리를 내리는 꽃의 생명력이 있다. 이런 발견의 기쁨은 섬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지혜와 에너지이며 특전이다. 그렇게 섬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의 상징어가 나부낀다.

 

 

그러니 여태 섬에 푹, 빠져 보지 못했다면, 올 여름엔 필시 푸른 물결 넘실대는 섬으로 떠나보시라. 섬의 속살을 제대로 만져보시라. 숱한 민족의 역사만큼 깎이고 휘어진 해안선을 보듬고 출렁이는 섬은 어민들과 뱃사람들의 역동적인 뒤안길이 포말처럼 일어섰다가 드러눕곤 한다. 그 그림자를 쟁기질하듯 캐보자. 반도국가 후예들에게 섬은 역사와 천혜의 자연 경관을 배우고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철썩철썩 부서지는 섬에서 일상의 짐, 잠시 내려놓고서 우리 스스로 낭만주의자가 되어 보자.

고향 떠나 30여년을 섬 여행에 빠져 살다보니 여행길에서 참으로 많은 인연을 맺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따금 잊고 살만할 즈음에 새로운 만남과 정겨운 추억 그리고 그리움에 대한 물살을 일으켜 세워 되새김질시켜주곤 한다. 그 순수함이 아름답기에, 그 인정을 너무 신실하기에, 기꺼이 하던 일 팽개치고 훌쩍, 그 섬으로 떠나곤 한다. 세상에 인연은 만들기 어려워도 그것을 잃기는 쉬운 법이다.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늘 그 자리에서 있는 섬의 철칙이기도 하다. 어쩜 그들은 그들처럼 완도 섬놈이라는 사실이 친근감이 갖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덕적도로 향했다. 여객선에서 내리자 마주친 포구는 늘

평화롭다. 언제 와도 늘 그 자리에서 푸르게 머리를 올린 섬의 자태. 날마다 새로운 것이 바다요 섬이다. 비운 만큼 채우고 채운 만큼 비워두는 저 바다의 넉넉함. 바다 저 편 갈매기가 포물선을 긋는다. 갈매기를 응시하는 섬 기슭의 이름 모를 들꽃이 참, 아름답다. 풀섶에 살며시 고개 내민 분홍장미까지.

 

봄에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한여름 푸른 파도소리에 귀를 씻으며 흔들리는 여름 꽃은 참으로 위대하다. 뙤얕볕에서 여름나기 하는 나리꽃, 해당화를 보고 있노라면 수평선에 뜨고 지는 붉은 해를 닮았다. 물고기는 물속을, 갈매기는 하늘을 날고 그 사이에서 꽃들은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모아 다시 힘껏 기지개를 편다. 그들은 섬에서 모두가 하나다. 그 조화가 섬의 생명력과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출한다.

 

여름날 사람도 지쳐 힘들어하는 무더위에 한 뼘 대지를 뚫고 나와 목마른 목젖을 축이듯이 꽃술을 갯바람에 흔들어 깨우며 흔들리는 꽃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밤꽃 개망초꽃도 그렇게 피어 허공을 흔든다. 마치 축 늘어진 사람들에게 이 여름날 더욱 분발하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 같다.

 

갯벌에는 수많은 함초 사이를 비집고 게들이 분주한 몸놀림을 한다. 집게발을 한 푼씩 벌리며 거품 문 게들을 보면, 비록 사팔뜨기로 눈 뜨며 옆으로 걷는다고 비웃지 말라고 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 되고 되었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온몸으로 일러주는 것만 같다.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단지 넓어서 만이 아니라 늘 수평으로 살기 때문이다. 여름 꽃들을 보면서 생각의 갈피가 파도처럼 푸르고 맑고 싱싱하게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한다. 그런 섬에 가고 싶다. 그런 섬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섬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다.

 

 

어떻게 섬 여행을 즐길 것인가? 그 섬에서 생각하고 자연과 함께 소통하며 하나가 되라. 섬이라는 해양공간은 숱한 삶의 잔주름을 펴주고 지친 영혼에게 철썩철썩 물보라 친다. 이 바다에서 공존하지 못한 사랑과 영혼은 외로운 이방인일 뿐이다. 여름날, 더욱 강렬하게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그만큼 영혼이 메마르고 심신이 지쳤다는 방증이다. 그러니 여름날, 필시 저 푸른 해원을 향해 떠나보시라. 그 섬에 온몸을 던져 보시라.

 

우리나라 꽃 소비량 60%가 화환이다.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우리 사회로부터 한걸음 물러서서, 탈출해 보자. 익숙함으로부터 일탈하여 푸른 바다 푸른 섬이라는 해방구로 떠나보자. 그 섬에서 늘 푸른 천혜의 향기를 뿜어내는 여름 꽃들과 대화를 해보자. 이제는 더 이상 관광객이라는 이름으로 꽃들의 관찰 대상자가 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삶과 자연으로 소통하고 삶과 자연을 관찰하면서 삶으로 체득하고 생각할 줄 아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 보자. 하여, 뒤돌아서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길거리의 철학자가 되어 보자. 그렇게 저 섬 기슭에 강철보다 강한 꽃과 나의 존재를 확인해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