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에 눈먼 일부 언론
박상건(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9월의 키워드는 아무래도 가을과 추석이 아닐까. 하늘, 산내들, 바다 할 것 없이 모든 게 무르익고 가슴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한 편으로 취업난, 경제난, 상처 난 들판, 농부의 아픔도 서려있다. 그렇게 9월은 수많은 스토리가 숨 쉬는 공간이다.
미디어 창에 비친 추석과 가을풍경은 어떤 것일까. ‘풍성한 추석 든든한 친구, 은행과 함께 하세요’, ‘돈 쓸 곳 많은 명절, 카드가 현금역할까지 톡톡히 해요’, ‘추석 후 가을 분양시장에 블루칩 아파트가 몰려 온다’ ‘열매 열리는 가을 우리 집도 열릴까…전문가들 추석 이후 집 장만 이렇게 하세요’, ‘추석, 남들 살찔 때 난 예뻐질래!’ 등 추석이 영 생뚱맞은 보도 속에서 제 빛깔을 잃고 말았다.
호주머니 두툼한 그들만의 추석이야기에 돈 있는데 어디 물건 살 줄 모르는 사람 있을까만, ‘우리 아이 추석선물, 유아 복 전문 쇼핑몰 더젤리에서 예쁜 가을 옷 선물하기’, ‘추석선물, 가격대별 아웃도어 뭐가 있을까?’, ‘추석 귀성길의 지루함을 달래줄 맛있는 간식! 즐거움 두 배’ 등 기사내용의 주어는 업체명이고 목적어는 브랜드, 마지막 서술어는 가격대 설명이다. 세세한 먹거리 보도는 마치 맛집 홍보프로로 전락한 KBS VJ특공대 대본을 읽는 느낌이다.
반면, 온 가족이 세대 간 소통과 전통문화 체험으로 즐기면 좋을 것 같은 부채춤, 제기차기, 딱지 만들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 민속놀이와 전통체험마당 프로그램은 1단 기사에 그쳤다. 전통문화에 대한 스토리개발은 미디어 5대 기능 중 문화적 기능과 오락기능에 해당한다. 미디어의 사명이다. 추석대목을 지나치게 마케팅 수단으로 악용한 것은 스스로 언론의 사명을 방기한 것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을 비판하던 장본인이 스스로 영혼 없는 언론을 자처한 셈이다.
한국언론재단이 지난해 언론인의식조사를 조사한 결과, 이윤추구와 같은 경제적 가치보다 기사의 질이나 사회적 의미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항목에 99.6%가 당연히 기사의 질이나 사회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특히 응답자 중 20~30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응답한 반면 데스크 연령대는 낮았다. 우리 언론보도의 ‘다양성’에 대해 다양하다고 응답한 37.4%가 40대 이상인 반면, 다양하지 않다고 답변한 연령대는 30대 이하였다. 기자와 데스크 세대 간의 정서적 간극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다.
사실 추석과 가을 소재의 기사를 쓴다면 추석치례 당사자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여기자들이 훨씬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기사를 쓸 것이다. 그러나 문화부, 생활부에 여기자들이 배정되는 것도 힘들지만 배정돼도 팀장이 남성인 이상 지면반영에 한계가 있을 터.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명지대 홍은희 교수는 2005년 한겨레가 여성인 권태선 부국장을 편집국장으로 임명하자 언론사에 새 역사를 기록했다고 의미부여할 정도였다. 한국일보 장명수 고문은 창간기념특집호에서 30여 년 전 창경원 출입기자는 대부분 여기자들이었는데 ‘곰이 새끼를 낳았다’, ‘올 봄엔 벚꽃이 일찍 피었다’ 정도를 보도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여전히 그 관행은 지속돼 추석이면 서울요금소에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는 사건기사 보도나 헬기가 추석 이벤트 보도의 상징이 된지 오래이다.
이런 가운데 MBC 뉴스데스크 ‘추석상 햇과일 품귀‥수확 늦어 농민 울상’보도는 휴먼스토리가 내재됐지만 대안제시가 없었고, SBS뉴스 ‘추석 앞두고 벌초 행렬…가을맞이 손길 분주’ 제목의 기사는 가을과 고향풍경, 농민들 손놀림, 떨어져버린 사과에 가슴 저림 등 9월의 공간을 잘 재현한 사례이다. 경향신문 칼럼 ‘여적’에 실린 “가을비는 농심에 못질을 하는데 눈물은 모두가 흘린다.”라는 메타포 문장도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시켜주기에 좋았다.
19세기 후반 급속히 번진 스토리텔링은 신문이 익히지 않는 상황에서 진실보도 문제 이상으로 절실한 문제이다. 첨단시대이지만 인간은 기계적 사고를 싫어한다. 우주를 넘나드는 세상이지만 인간의 감성은 원시적 공간을 동경한다. 매체 주이용자 세대인 중년들이 인터넷에 초중고 동창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저마다 고민을 배설하고 지친 심신을 위로받는 것은 디지털시대 이야기꾼이면서 재부족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정서가 억압받던 군사정권에서도 한국일보 김훈, 박래부 기자는 ‘문학기행’을 연재하며 독자들 감성을 사로잡았다. 지금처럼 두툼한 신문도 아닌 8개 지면이 전부인 신문에서 1개 지면을 할애했던 기획물은 자연과 작가와 삶을 공간적 시간적 모자이크로 엮어내 한 편의 영화를 연출하듯 그려낸 독창적 글쓰기 사례로 꼽힌다.
언론은 변해야 한다. 훈수보다 국민정서에 추임새를 넣을 줄 알아야 한다. 자연에 숱한 기호가 나부낀다. 수평선 일출을 기다려본 적 있는가. 빛은 어둠에 기대어 산다. 어둠이 빛을 빚는 찰나 서로가 현기증처럼 전율하며 관통한다. 그 눈부심이 여행자를 감동시킨다. 신음하는 서민들에게 획일적 이성보다 감성을 통한 잔잔한 메시지가 더 큰 위안이 될 때가 많다. 자연의 리얼리티는 지혜이고 지혜는 사람이 만든 진실보다 그 생명력을 압도한다.
(한국기자협회보 '언론 다시보기'. 2010.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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