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서민 찾는데 곳곳이 ‘제도적 전봇대’
박상건(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한 미소금융지점을 찾아 캐피털의 고금리가 사채수준이라고 질타했다. 캐피털사는 일주일 후 신용대출 금리를 내렸다. 캐피털사가 금리를 내린 시기에 은행들은 가게 신용대출과 중소기업 대출 금리를 잇따라 올렸다.
이를 곁눈질하던 대부업체들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캐피탈사는 그동안 저신용 고객층을 수용했는데 대출이자를 낮추면 연체율 리스크관리를 위해 대출을 까다롭게 할 것이고, 막다른 길의 서민은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본의 아니게 대통령의 말은 서민들에게 병 주고 약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서민의 가치와 고민의 흔적이 없다. 되레 보수신문은 일제히 사설에서 시장경제와 금융질서 왜곡이라며 금융권을 대변했다. 캐피탈업계는 조달금리가 높고 고객 신용등급이 낮아 금리가 높은 건 당연한데 내리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우회적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은행은 수요 압력이 커져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금융전문가 주장을 부각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내 집에 발 묶인 채 신기루가 되고 은행이자는 서민을 무겁게 짓눌려 신음소리만 쥐어짠다. 그 뒤안길에 삼각관계의 공범이 있는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빚을 진 첫째 원인은 당연히 당사자이지만, 정부와 은행이 IT 벤처거품 후폭풍을 잠재우고자 경기부양책으로 재테크 무대에 서민을 불렀다. 언론은 부동산 재테크 섹션 등을 발행하며 펀드, 땅 투자 적기라며 호객행위를 거들었다.
더욱이 요즘 기진맥진한 서민에게 생명위기를 조장하는 공포마케팅이 난무하고 있다. 노후안전, 자식눈치 안 보고 늙어 죽을 수 있고 부모 이승 떠나는 길에 빚 없이 보낼 수 있다는 정서적 충격요법으로 생명보험 상조회 광고가 종잣돈을 겨눈다.
그뿐인가. 은행 대출금리 인상 사실은 3단으로 보도한 지면에, 무슨 천지개벽인 양 3개 지면을 할애해 스마트폰 출시 기사를 도배질했다. 첫 문장부터 “스마트폰 경쟁이 달아올라 여름 휴가철 불볕더위가 무색하다”고 호들갑이다. ‘모바일 대전’으로 머리기사를 뽑고 온통 제품 사양만 열거해놓았다.
또 다른 신문은 스마트폰을 신인류라며 각종 신조어를 나열했다. 10년 전 수입개방 때 젊은 소비층을 겨냥해 기업과 언론이 신세대, X세대, Y세대 등 신조어와 상품을 기호로 상징하면 젊은 뇌리에 과시적 소비성향을 부추기던 마케팅과 언론플레이 방식이 빼닮았다. 결국은 명품 경쟁상대는 짝퉁이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사실만 재확인한다. 그렇게 외치던 시장경제는 제 살 깎기로 좀먹고 언론은 스스로 환경감시기능을 방기해 신뢰가 추락한다. 언론보도를 감시하는 시민단체까지 등장했다.
스마트폰은 손 안의 PC로서 응용프로그램이 주목할 만하다. 보안상 문제와 전화, 문자, DMB 애용자에게는 필수 아닌 선택사항일 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소외계층에 초저가 간편 휴대전화기 공급 등 정보격차와 세대격차를 해소할 대안모색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자 특정 기업의 고가상품을 보도할 경우 사회에 미칠 미디어 효과를 가늠하는 언론의 책무이다. 서민이 바라는 세상은 공평한 세상이다. 공평한 세상은 최소한 행복할 권리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시스템이다. 일하는 만큼 대우 받는 기본이 바로 선 시스템이다. 인수위 때 이명박 당선자가 대불공단 전봇대 발언을 하자 언론은 일제히 머리기사로 “그 전봇대 아직 있다”, “그 전봇대가 뽑혔다” “5년 방치된 관료주의가 뽑혔다”고 보도했다. 전봇대 하나가 문제인 게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은 서민금융 체계를 개선하라며 미소금융을 찾았다. 그런데 그 후 택시기사가 미소금융을 찾자 ‘제도적 전봇대’가 서 있었다. 택시회사에서 5개월 넘게 근무한 그는 햇살론을 받으려고 4대보험 납부실적, 원천징수영수증, 재직증명서 등 모든 서류를 갖춰 갔지만 거부당했다. 월급을 현금으로 받고 원천징수영수증을 제시했지만 규정상 급여통장이 필요했다. 급여를 받는 게 중요한가? 통장이 중요한가? 결국 월급을 현금으로 받는 택시기사나 영세한 사업체 근로자에게 햇살론은 그림의 떡이다.
행복과 희망은 서민의 꿈이고 그 길트기는 언론의 역할이다. 경향신문은 인터넷 유명인사가 된 할머니 스토리를 1개 지면을 할애해 크게 보도했다. 미디어 창을 통해 만난 한 미담기사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폭염을 녹일 얼음뉴스였다.
칠순 할머니는 시장 노점에서 채소를 판다. 할머니는 운전면허시험 9백60번 만에 합격했다. 채소 장사를 위해 운전면허증이 필요했고 하루 호박 5개에 3천원, 많게는 1만원어치를 판다. 그렇게 장사를 마치고 완주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전주 면허시험장을 오가며 5년 동안 15점, 35점, 40점, 50점, 58점대에 다가섰다. 마침내 지난 6일 60점대를 넘어섰다. 할머니 이야기는 괜스레 위축된 어른세대와 쉽게 포기해버리는 젊은 세대의 삶을 반추하게 했다. 서민들은 이런 서민들의 희망을 읽고 싶다.
* 이 글은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협회보> [언론 바라보기] 2010년 8.1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는 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 하는가 (0) | 2010.10.19 |
---|---|
신문에 추석은 없고 추석상품만 있다? (0) | 2010.09.13 |
한겨레와 엠바고 논란 (0) | 2010.07.05 |
백성들 머리에 이고 싸우면 굽히지 않을 권력 없다 (0) | 2010.06.08 |
언론의 여론조사는 뒤집어 읽어라? (0) | 2010.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