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취재보도론, 언론사상사, 문화비평을 가르친다. 사회과학 수업이 딱딱해 가능하면 감성적 요소를 가미하려고 한 편의 시를 감상하며 수업을 시작한다. 수업 방식은 인터넷 카페에 강의안을 올리면 학생들이 다운받아 수업에 임하는 방식이다.
요즈음 질문이 없는 학생들에게 카페 수업은 쌍방향 수단으로 그만이다. 수업 때 텍스트인 강의안 첫 장에는 늘 시 한 편이 실려 있고 중간 정도에 절취선이 있는데 수업이 끝나면 그 빈 공간에 쪽지쓰기를 한다.
그렇게 올 1학기 수업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졸업을 앞둔 4학년 여학생이 적어 놓은 쪽지 내용에 오랫동안 눈이 머물렀다. 그날 나는 함석헌 선생님의 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이 시를 패러디해 요즘 대학생의 심정을 읊조렸던 것이다.
그 지식을 가졌는가
김○○(음악학과 4학년)
대학을 나서는 길/내 꿈을 내맡기며/맘 놓고 갈만한 지식/그 지식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직장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두뇌야’ 하고 믿어지는/그 지식을 그대는 가졌는가.
외웠던 예문 기억 안 나는 시간/복습서도 사양하여/‘너만은 제발 기억나라’ 할 그 지식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시험장에서/‘다 생각 안 나도 나의 세상 빛을 위해/그 개념은 기억해라’ 일러 줄 그 머리를 그대는 가졌는가.
붙지 못할 이 면접을 놓고 떠나려 할 때/‘그 노하우 있으니’ 하여/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지식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직장의 외면보다도/‘이리와’ 하고 가만히 손을 흔들 그 한 직장 생각에/알뜰한 백수생활 끝나게 되는/그 능력을 그대는 가졌는가.
또 한 학생의 글은 이랬다. 국문학도로서 글쓰기를 매우 좋아했고 요즘 글쓰기에 한번 미치고 싶은데 결국 취업을 생각하면 그럴 시간도 생각도 없다는, 그런 세상을 만든 이 사회가 밉다는 내용이다.
염○○(국어국문 3학년)
칼럼...인터뷰....기사작성 텍스트를 오늘처럼 구절구절 뜯어 읽었던 적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도 결국에는 현실안주의 길에 서려는 나의 사고에 미약하게나마 제동이 걸린다.
젊으면서도, 꿈을 꾸면서도,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 쉽사리 꿈을 돌이켜 달래지 못한다.
2010년 대학교 3학년의 현실이 서럽다. 나의 마른 열정과 뿌리 깊은 사회에의 불신이 미울 뿐이다. 홍세화 칼럼니스트 말마따나 이것이 ‘아픔’이다.
매시간 수업 후 많은 학생들의 쪽지내용을 접하지만 요즘처럼 안타깝게 읽은 적도 드물다. 대부분 취업걱정과 학점문제에 올인하고 그런 생각이 젖어 있기 때문이다. 캠퍼스가 낭만과 추억의 장이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 되어 버렸다.
그런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캠퍼스를 즐기라고, 동아리활동 열심히 하라고, 자치활동 하며 리더십을 기르라고 그리고 그런 풍경을 취재하고 사진촬영해오는 과제를 내기도 한다. 어쩜 내 자신이 반시대적인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고 마음에 없는 캠퍼스를 관전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반문할 때가 있다.
물론 대학 4년 동안 스쿨버스장과 강의실만 오가다가 처음으로 잔디밭에 누워보았다는, 풍경을 감상했다는 의미부여를 하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취업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4학년 마지막 학기인 대다수 학생들에게 상대평가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정 인원을 마음에 들지 못한 등급을 매기고, 그것이 한 학기 서로에게 마지막 작별의 흔적이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펐다. 미안한 마음과 그들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시기이다. 아무쪼록 사회에서 꼭 승리하여 오늘을 웃으며 이야기꽃으로 피울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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