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섬이란 무엇인가
관매도 노을풍경
섬으로 가는 길은 고향으로 가는 길
섬과 바다에는 인간의 숱한 기호들이 나부낀다. 기쁨과 슬픔, 절망과 환희...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물결 한 점 없는 바다이면 그 은빛비늘 바다 그대로 인간의 감성과 교감한다. 환경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 사고는 마음과 행동을 지배한다. 답답하고 쓸쓸할 때 훌쩍, 섬으로 떠난다. 부서지는 파도는 그대로 죽비소리 혹은 해방구이다.
섬으로 가는 길은 우리네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첨단 디지털시대에 사람들은 초중고 카페를 만들고 옛 친구 찾아 추억을 더듬어 간다. 배고프던 시절 텃밭의 푸성귀를 주말농장의 이름으로 일구고 인터넷에 경험담을 올리곤 한다. 첨단의 그늘에서 그리움이 절절히 배인 탓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본능 같은 것이다.
예로부터 섬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유치환의 시처럼 노스탈자의 푸른 손수건 같은 것이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했다. 여행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비우고 버리는 일이다. 고단한 짐 내려놓고 여백을 찾아가는 일이다. 여백의 크기만큼 사유의 생명력이 파도친다. 이게 여행의 묘미이고 매력이다. 그래서 여행자는 길거리 철학자이고 모험가이다.
덕적도 포구
질곡의 해안선에 부서지며 늘 수평으로 살아가는 바다
여행은 공간을 가로질러 간다. 계곡이 산울림의 공간이라면, 바다는 굽은 계곡의 물줄기를 이어받아 철썩철썩 수평으로 드러눕힌다. 노자는 이를 도(道)라고 명명했다. 자연과 인간이 수평으로 평등으로 살기위해 파도는 울림의 미학으로 물결친다.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하염없이 부서질 때마다, 섬은 묵묵히 등을 내밀어 준다.
섬과 바다의 아름다운 동행은 인간의 삶과 맞닿아 있다. 통통대는 만선의 깃발을 따라 떼로 동행하는 갈매기 풍경은 정겹다. 저녁 무렵 포구로 돌아오는 빈 배 혹은 정박한 어선의 깃발은 적막하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찢어질 듯 거센 바람 불면 여행자 마음도 쓸쓸하다.
해안선은 인간과 자연이 겪은 질곡의 삶으로 굽어져 있다. 저만치 떨어진 섬은 인간의 자화상이다. 어느 섬의 소소함까지도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다. 갯벌을 온몸으로 기어가는 갯지렁이의 삶까지. 갯지렁이 위로 팔딱팔딱 뛰어 오르는 장둥어, 사팔뜨기 눈으로 옆으로 걸어가는 게 한 마리의 삶을 바라보노라면, 세상만사 오십보백보이고 사는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지 명사십리 파도
절망과 희망,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치열한 각축장
그렇게 섬은 인문학적 감성과 상상력의 무한한 공간이다.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의 배경이고 해양문학과 수많은 예술가를 잉태한 터전이다. 또한 섬은 외침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공간이다. 힘이 약할 때 강대국의 점령의 대상이다. 그 섬의 등대는 강대국 침략의 뱃길을 비추는 신호등일 뿐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을 치르며 대륙진출 교두보로 우리 해안선에 등대를 설치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최초 등대인 팔미도로부터 시작됐다.
그렇게 섬은 자발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 역동적이며 희망의 상징이다. 개항과 글로벌 시대를 구가할 때 등대 불빛은 당당하게 반짝인다. 섬은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인류의 마지막 보고인 섬에 주목한다. 육지는 나날이 한계상황에 직면하고 진화의 대상은 바다뿐이다. 때로 탐사와 안보라는 명분으로 주변국의 영해를 넘본다. 대륙붕 아래 천혜자원을 곁눈질한다. 섬 분쟁은 그러한 속내를 감춘 치열한 각축장의 산물이다.
1958년 제네바에서 첫 유엔해양법회의가 열렸다. 영해와 어업수역 등을 놓고 국가 간에 날카로운 이해가 맞다들면서 첫 만남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국제해양 문제는 줄다리기만 지속중이다. 이런 연장선의 셈법에 따라 엄연히 한국의 독도일진대 심심하면 질러보는 쪽이 일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밭지름 해수욕장 풍경
섬으로 가는 길은 애국하는 길이다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포클랜드 섬을 놓고 분쟁 중이다. 이 섬은 아르헨티나 남쪽에 울릉도 독도처럼 두 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본디 스페인 소유였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 식민지였다. 아르헨티나는 해방 후 당연히 자국영토라고 주장하고 주민을 이주시켰지만, 영국은 아르헨티나 주민을 몰아내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지난 2월부터 석유까지 시추 중이다. 해역에는 6백억 배럴 이상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
아르헨티나는 영국에게 불법점유라며 물러가라고 아우성치지만 영국은 꿈적도 않는다. 이처럼 섬은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이며 힘의 상징이다. 역사와 경제력의 가늠자이다. 민족의 내일을 웅변하는 나침반이다. 반도국가의 후예들인 우리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섬으로 떠나는 일은 애국하는 길이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찾아가는 길이다. 나를 반추하는 일이다. 지난해 여객선을 타고 섬 여행을 떠난 여행자가 1,500만명에 이르렀다. 연륙교가 이어져 승용차로 섬으로 간 여행자까지 헤아리면 상당수의 국민이 섬을 찾은 셈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01년 이후 8년 연속 이러한 상승세가 이어졌다고 한다.
사량도 대항마을 포구풍경
대한민국의 이름 없는 새끼 섬, 무인도를 찾아서
좋은 징조이고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영토인 섬을 모른 채 독도문제 때마다 흥분만 해서 무엇 하랴. 우리 섬 개수를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토해양부는 올 3월에 섬의 총수를 3,358개로 잠정집계했다. 그동안 개수보다 늘었다. 이중 무인도서가 2,876개로 전체 섬의 85.65%를 차지한다. 무인도는 사유지가 더 많다. 사유지가 61.24%(46.83㎢), 국유지 28.98%(22.16㎢), 공유지 9.78%(7.48㎢)이다.
현재 무인도 2,876개 중 지적공부에 등록된 섬은 2,642개. 전체 무인도서 91.86%이다. 미등록 섬은 234개로 8.14%. 시․도별 무인도 수는 전남이 1,744개로 가장 많다. 전체 무인도 60.64%를 차지한다. 그 다음이 경남(484개/16.83%), 충남(236개/8.21%) 순이다.
그동안 무인도서는 국토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우리 관심권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거기다 지적도에 존재하지도 않아 호적등본도 없는 대한민국의 외로운 섬으로 오랜 세월 먼 바다에서 홀로 출렁였다.
앞으로 섬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 관리계획 아래 2년 안에 실태조사가 마무리되면 무인도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해양생태계의 새로운 가치도 되살아날 것이다. 무인도로 향하는 추억의 여행자도 늘어 날 것이다. 그 길은 천혜의 해양문화를 학습하고 세계 해양관광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다. 더불어 반도국가의 역사를 복원하고 세계경쟁의 마당을 넓히는 길이기도 하다.
완도해경 경비정에서
글, 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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