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79] 속 타는 섬, 섬에 물이 없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최근 섬을 여행하면서 물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6월 17일 묵호 독도 울릉도를 거치는 일주일 여정으로 묵호항을 떠나 독도에 도착, 하룻밤을 독도등대에서 묵었다. 다음날은 풍랑주의보로 발이 묶였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 그런데 독도 정상에서 근무하는 등대원은 아주 비좁은 숙소와 사무실에서 독도 해상의 기상상태를 기상청에 보내고 독도해상 어선, 울릉도 선박회사 등에서 문의해오는 해상기상을 알려주는 데 동분서주했다. 업무가 끝나고 부닥친 문제는 다른 아닌 물 문제였다. 거센 비바람에는 견뎌도 물 문제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한 가구의 어민이 사는 서도와 달리 등대와 독도경비대가 있는 동도에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 등대원과 독도경비대원들에게는 해수를 증류한 물이 공급됐다. 문제는 바닷물을 여과한 맥물은 식물에 뿌려도 바로 죽을 정도로 영양분이 제로 상태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교대근무하는 등대원들은 건강을 생각해 생수를 마신다. 부식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생수 한 방울을 아껴 마시는 일상은 며칠 간 더부살이하는 이방인에게 큰 곤욕이고 송구함까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렇게 사는 등대원들은 마라도 홍도 당사도 등 여러 섬에 분포한다. 어디 사람뿐이랴. 독도 괭이갈매기들도 독도경비대 건물 옥상에 고인 물을 쪼아 먹는데 여념이 없었다.
물이 귀한 독도 동도 절벽 모습과 독도등대 앞에서
섬은 45억 년 전 화산폭발로 용암이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면서 일부는 수면 위로 돌출하여 마그마로 굳어져서 생긴 것이다. 물의 일부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 바다가 되었다. 흘러간 물은 뜨거운 수증기로 하늘로 올라가 공기 중 식어서 응결하여 비가 되어 바다로 흘러가 바닷물을 채웠다. 많은 물이 모여 한 개의 바다를 이루었는데 육지가 서서히 바다로 끼어들면서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북극 해, 남극해로 구분해 이름을 붙이기에 이르렀다. 독도는 그 태평양의 돌섬에 해당한다. 그 많은 물 중 마시는 물을 보듬고 태어나지 못한 독도. 이러한 섬들이 외롭다고 섬사람까지 먹고 사는 일에 소외될 수는 없다.
우리는 반도국가의 후예들이다. 3.1절과 광복절, 일본의 해코지가 있을 때마다‘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흥분할 일이 아니다. 독도 정상부터 상징적으로 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독도를 지키는 사람도, 독도를 찾는 사람도 자유롭게 물 걱정 없이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바다는 지구표면 약 71% 차지한다. 세계에는 500만개 섬이 있고 독도도 그 중 하나이다.
우리 몸무게의 70% 정도가 물이 차지한다. 몸에 물이 말라가는 그 자체로 끔직한 일이다. 한 해 1,500만명이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간다. 승용차를 타고 가는 여행자까지 합치면 1년에 전 국민이 섬과 바다로 가는 셈이다. 그 여행자들이 물이 무서워 섬으로 가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섬은 3,358개. 유인도 482개, 무인도 2876개이다. 우리는 영토 문제를 강화하고 레저인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섬 지역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섬 지역 물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특히 해안가 섬 주민들은 먹고 사는 일이 누구보다도 중요한데, 요즘 해수욕장을 개장하지 못해 애태우기 일쑤이다. 물 문제 때문이다. 얼마 전 완도 신지도 해수욕장에서 여름캠프를 개최하는데 몽골텐트 예약하는 위치가 수도꼭지 많은 쪽이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이 달랐을 정도이다.
옹진군은 해수욕장 샤워시설과 민박집의 물이 부족해 개장에 차질을 빚고 있다. 낚시꾼이 급격히 감소했다. 특히 은어 등 밀물낚시의 경우 물 문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중부 해안가 역시 가뭄으로 마늘 양파농사를 망치고, 가로수를 살리기 위해 살수차를 동원하고 있다.
2007년, 2009년 신안일대 해안가에서는 관정을 파 지하수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지하수 수량이 줄면서 소금기가 스며들어 밥도 못하고 빨래도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2007년 , 2011년 완도군 노화도 보길도는‘10일 단수, 4일 급수’체제로 들어갔고 주민들은 밥 짓기, 빨래, 목욕 등에서 큰 고통을 겪은 바 있다. 노화도는 특히 광산개발이 이어져 자업자득이라는 비판도 사고 있다. 2003년, 2009년 남해 미조면 조도 해안에서는 취수원 빗물 138t 물탱크가 고갈돼 제한급수로 고생한 바 있다. 2001년 통영 욕지도 격일제 제한 급수제를 실시하며 주민들이 물 문제의 고통을 겪었다.
독도 경비대 옥상 고인 물을 먹는 괭이갈매기떼와 물이 귀한 마라도 등대
물 문제를 겪는 섬들은 이상기온의 여파도 있지만 환경파괴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다. 덕적도 해수욕장에는 대나무로 만든‘모래 표집기’가 있다. 모래유실을 막기 위한 자구책의 도구이다. 지금 유명 해수욕장은 모래유실의 아픔을 겪고 있다. 백사장은 높은 파도를 막아서는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는데 자치단체들이 모래팔기 수익사업을 하면서 연안 침식을 불러온 것이다. 이는 곧 연안 생태계의 파괴를 의미하고 해수가 뭍으로 침수하여 먹는 물은 물론 농업용수 고갈과 식물들을 고사시킨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서산 천수만 하구 역시 백사장도 마찬가지이다.
물은 산소와 수소의 결합물이다. 생물이 생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액체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물이라고 다 물인 것은 아니다. 마시는 물에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구리, 철, 칼슘 같은 금속이온이 녹아 있다. 공기 중에 있는 기체들도 녹아 있다. 물에는 흔히 포함된 이온은 칼슘과 마그네슘이온. 어떻게 형성된 물이냐에 따라 분명 물맛이 다르다. 건강에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하다. 국가는 국민에게 이로운 물을 공급할 의무가 있다.
없는 물은 당장 개발해야 하고 당장 많은 물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인체에 유익한 물을 어떻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정보와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옛날 선원들은 배에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놋쇠로 만든 항아리에 바닷물을 담아서 이를 불로 끓이고 항아리 주둥이에 걸쳐 놓은 스펀지에 증발된 수증기를 모은 후 이 스펀지를 짜서 물을 마셨다. 조상으로부터 해수담수의 지혜이다. 이것이 바로 해수담수화의 기원이다.
모래 침식이 심한 덕덕도와 승봉도 해변 그리고 울릉도 용굴 약수 받는 모습
지구상의 물은 대부분 바다에서 이루어졌음으로 그 지혜도 바다에서 비롯됐다.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때 군부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담수설비가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담수화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배운 설비기술을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 1950년대 초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OWS(Office of Saline Water)와 그 후신인 OWRT(Office of Water Research and Technology)를 설립해 담수화 작업을 본격화해 바닷물로부터 염분을 포함한 용해물질을 제거하여 마시는 물과, 생활용수, 공업용수 등을 얻어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일러 해수담수화 설비, 해수담수화 플랜트라고 부르고 있다. 이 부분의 기술은 현재 프랑스가 1위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두산중공업이 유일하다. 해수 담수화는 친화경적인 반면 인체에 얼마나 이로운가에 대한 반문에는 속 시원하게 대답할 사람이 드물다는 게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회단체와 기업들이 앞 다퉈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가뭄문제 해결을 위해 기금을 모으고 물을 보내고 있다. 그 캐츠프레이즈가“물 부족, 지금 당신의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빈민국의 경우”로 시작된다. 물론 이 지역은 강수량이 매우 적거나 증발률이 매우 높아 더욱 극심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하기에는 104년 만에 닥친 대한민국 섬 지역 가뭄 문제가 심상찮다. 전문가는 주기적으로 닥친 가뭄지역 중 한반도는 지금부터 10년간 지속될 개연성이 아주 높다고 진단한다. 정부는 지금 당장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특히 섬 지역 주민들이 물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의 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 제시해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2012.6.5)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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