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건의 ‘한강 섬을 걷다’ 1] - 난지도 ①
신혼여행지 한강 꽃섬을 아시나요?
박상건(시인. 섬문화연구소장)
난지도는 한강 그리고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하는 섬이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연출하며 서울 심장부의 생태 섬으로 변신한 섬이다.
자유당 시절, 영국의 한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 피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길 기대하는 것이나 같다.”고 조롱했다. 그런데 난지도는 쓰레기장에서 장미꽃뿐만 아니라 여러 꽃들과 억새가 어우러져 보란 듯이 하늘공원으로 거듭났다.
해발 98m의 하늘공원에 오르면 한강의 강물이 펼쳐지고, 북으로 고개를 돌리면 분단의 현실과 만날 수 있다. 지금 발 딛고 선 이곳이 과거 쓰레기 매립장이었단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하긴, 거름도 울어 썩어야 찰진 황토를 만드는 법이거늘, 가난으로 점철된 숱한 한강의 애환을 속으로 끌어안은 난지도 지하에선 그 울음소리를 웅변하듯 지독한 가스가 가득 차 있기도 하다. 난지도는 그 울음소리를 거대한 바람개비로 돌리면서 복토 공사, 침출수 및 매립가스 처리 등을 통해 자연생태 공원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난꽃과 영지가 자라던 오리를 닮은 섬
난지도는 난꽃과 영지가 자라던 섬이었다. 섬의 이름은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오리섬이라고도 불렀다. 한자로는 ‘오리 압(鴨)’자를 써 압도(鴨島)라고 표기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한때 쓰레기와 악취로 어지러웠던 땅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난지’(亂地)라고 불렀으나, 다시 본래 이름인 난초와 지초를 비유하는 ‘꽃섬’, 즉 ‘난지’(蘭芝)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서울시민들에게는 유명한 신혼여행지이기도 했다.
▲ 난지 하늘공원에서 내려다 본 한강 전경 ⓒ박상건
난지도는 한강 하류 저지대에 흙모래가 쌓여 자연스레 만들어진 섬이다. 그렇게 한강 북쪽 연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지리서인 <택리지>에는 난지도를 “강을 타고 바닷물이 거슬러오는 길목에 단단하게 다져진 좋은 풍수조건을 가진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생의 정취가 그윽했던 섬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들꽃이 만발했고, 겨울에는 물이 맑고 깨끗해 먹이를 찾아 수만 마리 철새들이 날아들었다.
▲ 하늘공원 길 ⓒ박상건
그런 난지도는 1977년 제방이 만들어지고 서울 쓰레기 매립지로 이용되었으나, 1978년 3월 18일 마포구 상암동 482번지에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이를 천지개벽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자연제방이 도로로 개수(改修)되어 하안과 연결되었으며, 주택지역으로 개발되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21세기 첨단시대의 새로운 한강 촌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본래 보리, 채소, 땅콩, 화훼, 버드나무 묘목 등이 재배되었던 것처럼, 1993년 2월 마침내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쓰레기에 파묻혀 놀던 개구쟁이들이
쓰레기더미 위에 누워 하늘을 우러른다.
제복의 여학생이 수색 종점에서 내려
십 리 길 걸어, 쓰레기 산 또 십리를 넘어
쓰레기 움막으로 기어든다.
사람과 쓰레기가 한 몸이 되어
파리 떼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 이성부, ‘난지도 - 1979년’ 중에서
여태 난지도 인근 마포구 중동에서 거주하는 이성부 시인은 1979년 난지도의 풍경을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조무래기들은 쓰레기더미에서 놀고 여학생들은 쓰레기 산을 넘어 쓰레기 움막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서울타임스(www.seoultimes.net)에 [박상건의 ‘한강의 섬 걷다’] 제목으로 동시 연재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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