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강변에서 고향 길 미루나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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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의 ‘한강 섬을 걷다’ 5] - 선유도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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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강둑 걷듯이 봄날 한강변을 걸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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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에는 높고 낮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크게는 언덕 위를 지나며 한강과 서울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 햇볕·바람·하늘·식물 등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동을 만날 수 있는 정원 사이의 길이 있다. 길 사이로 물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식물을 주제로 한 정원들이 물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커다란 저장탱크에서 나온 물은 온실과 수질정화원으로 흐른다. 수질정화원은 수생식물들이 식재된 계단식 수조를 거쳐 물이 정화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수질정화원에서 흘러나와 환경물놀이터에 잠시 머물렀던 물은 다시 갈대가 자라는 수로를 지나 수생식물원과 시간의 정원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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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공원 대나무길 |
수생식물원은 각종 수생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환경의 오염과 파괴에 민감한 수생식물을 보호하는 것은 곧 환경과 물의 오염을 막고 자연생태계를 보전하는 일이다. 시간의 정원은 주제정원 중 정수장의 구조물을 가장 온전하게 보전하여 재활용한 공간으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식물들과 점점 낡아가는 구조물이 대비되어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정원의 수로와 벽천을 타고 흘러내린 물은 다시 물탱크로 돌아가 새로운 순환을 시작한다. 이렇게 물길을 따라 산책하면 저절로 물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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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기둥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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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서울갤러리는 정수장에서 생산된 물을 공급하던 송수펌프실을 개조한 건물인데, 기존 구조물의 외벽을 벽돌과 유리로 감싸 과거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녹슨 철판과 적삼목 등 재료를 사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갤러리 내부는 총 3개층으로써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나뉘어 있다. 지하층은 한강의 관리·생활·역사·환경 및 생태를 전시하고 있으며, 1층은 멀티미디어 갤러리 및 휴게실 공간, 2층은 소프트서울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다.
선유도의 명물, 안개분수와 야경
선유도 남측 옹벽에 설치되어 있는 안개분수는 숲과 물이 어우러져 선유도의 대표적 명물로 자리잡았다. 봄마당의 아지랑이를 연상시키는 안개분수는 벽을 타고 아래로 쏟아져 내리면서 선유도 야경과 함께 한강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안개분수는 동절기를 제외하고 매일 밤 8시~11시 중 정시에 시작하여 약 10분간 가동된다. 북한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안개분수와 양화대교 풍경은 산줄기를 이어받아 하늘로 솟구치는 역동적 생명력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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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공원 식재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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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양화지구에서 선유교로 향하는 다리에는 식재터널이 있다. 정수장 건물이 있던 터에 미루나무들을 줄줄이 심어 옛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미루나무 가로수의 자태는 공원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이 세상 즐펀한 노름판은 어데 있더냐
네가 깜박 취해 깨어나지 못할
그런 웃음판은 어데 있더냐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네가 걸어온 길은 삶도 사랑도 자유도
고독한 쓸개들뿐이 아니었더냐고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믿음도 맹서도 저 길바닥에 잠시 뉘어놓고
이리 와봐 이리 와봐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흰 배때아리를 뒤채는 속잎새들이나 널어놓고
낯간지러운 서정시로 흥타령이나 읊으며
우리들처럼 어깨춤이나 추며 깨끼춤이나 추며
이 강산 좋은 한철을 너는 무심히 지나갈 거냐고
미루나무 끝 바람들이 그런다
- 송수권, ‘미루나무 끝’ 전문
서울 도심 강변을 걸으며 이런 시 한 구절 되뇔 수 있음도 행복이다. 행복은 만드는 것이고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니 선유도 미루나무 아래서 잠시나마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를 반추하고 추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송수권의 ‘미루나무 끝’이라는 시에서 남도의 고향 신작로 가로수 길을 떠 올린다. 선유도에서 마주하는 미루나무 길이 명절 고향집으로 가는 길을 연상시킨다. 서울은 수많은 팔도강산 후예들이 모여 든 객지의 보금자리다. 시의 구절 처럼 고향 떠나 ‘걸어온 길은 삶도 사랑도 자유도 / 고독’도 함께 한 길이었다. 어쩜 서울은 모든 이의 제2의 고향인 셈이다.
그렇게 잊혀져가는 고향의 추억을 더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안길을 재현해 주는 ‘또 하나의 삶의 풍경’이자 ‘이미지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다시 오늘, 내일로 가는 삶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 아니겠는가.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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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서울타임스(http://www.seoultimes.net)에도 함께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