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질척이는 압해도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다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 73] 뻘낙지와 남해안 최대 갯벌낙원, 압해도
겨울 그림자는 그렇게 걷히는가. 봄 햇살은 그 자리에서 서성이는 그림자를, 참새가 모이 쪼듯 대지와 바다를 쪼으며 우리 곁으로 다가섰다. 지금 섬은 가고 오는 계절의 길목 풍경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 압해도는 유배의 섬에서 최근 연륙교 개통으로 승용차를 타고 건너갈 수 있는 섬으로 변모했다. ⓒ 박상건
▲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긴 압해대교 모습. 좌우로 푸른 바다와 섬들이 출렁인다. ⓒ 박상건
만감 교차하는 가는 겨울, 오는 봄날의 길목
여행자는 그런 길목에서 마음에 담아 둔 무겁거나 못 이룬 꿈들로 서걱이는 찌꺼기들을, 그 묵은 것을 버리고 새 소망을 설계한다. 계절의 변화는 자연도 인간도 더 어쩌지 못한다. 자연은 우리더러 물 흐르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살라한다. 때로 포기도 아름다운 것이라면서, 살 에이는 바람에 생긴 생채기도 봄빛에는 더욱 아름답다고, 상처로 꽃피는 것이라고 일러준다.
이즈음 섬여행은 그런 에너지를 새로 발견하게 한다. 인간은 연약한 갈대이면서 생각하는 갈대임을 실감시켜 준다. 철썩이는 바다에서 쉼 없이 물결을 빗질하는 빛나는 햇살 앞에서 인간은 위대한 만물의 영장이라는 역설을 되새김질 한다.
압해도 섬여행은 그런 사색의 공간이었다. 압해도는 신안군에서 3.2㎞ 지점에 있다. 섬 규모는 면소재지 섬인 만큼 꽤 큰 편이다. 최근 간척공사로 염전과 논이 조성되어 2001년 48.95㎢에서 67.4㎢로 늘어났다. 해안선 길이는 217㎞. 인구는 작년말 기준으로 7600명이다.
▲ 어선들 압해도 앞바다의 어선들 ⓒ 박상건
▲ 압해도 양식장과 여러 어선들의 모습 ⓒ 박상건
조선시대 유배지에서 연륙교 개통으로 승용차로 건너는 섬
압해도는 섬 전체가 삼면으로 펼쳐져 바다를 누르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한자로 '누를 압'자를 써서 압해도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유배지였다. 당나라 대승상 정덕성이 이곳으로 귀양와서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유배지이자 외딴 섬이었던 압해도는 그렇게 2008년 압해대교 개통으로 목포 북항 쪽에서 승용차로 건너갈 수 있다. 압해대교는 왕복 4차선 교량인데 바다 위 교량 길이가 1.42km이다. 이 다리도 볼거리 중 하나다. 무안 일대와 신안의 올망졸망한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압해도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연근해에서 참조기, 민어, 숭어를 잡고 특히 포구에서 바다 쪽을 둘러보면 아주 작은 쪽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배들은 낙지를 잡는 배.
▲ 앞해도 섬들과 양식장 ⓒ 박상건
▲ 드 넓은 바다가 좌우로 펼쳐지고 인근 섬들을 오고가는 철부선이 드나드는 송공선착장 ⓒ 박상건
푸른바다를 오고 가는 낙지잡이 쪽배들
또 김 양식장에 큰 배가 드나들기 불편해서 이 배를 사용하기도 한다. 압해도는 염전이 활발하고 양질의 고령토가 채굴되는 섬이기도 하다. 고령토는 도자기 원료로 사용한다.
섬 여행 중 맛기행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럼 압해도의 대표적 먹을거리는 무엇일까? 일명 오돌이라고 부르는 보리새우다. 양식을 못하기 때문에 수량이 적어 귀한 먹거리로 통한다. 소금구이로 먹어도 맛있고 산 채로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술꾼들에게 세발낙지와 오돌이는 숙취 해소는 물론 풍취를 즐길 수 있어 인기다.
여기서 잠깐, 압해도에서 세발낙지가 유명한데, 여행객들이 낙지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무안 세발낙지'라고 아는 채 하다가는 핀잔받기 일쑤다. 압해도 사람들에 따르면 이곳 세발낙지는 꽤 전통이 있었는데 잡는 대로 현지에서 거의 소비되기 때문에 타지로 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길에 꼭 현지에서 맛보기를 권했다.
▲ 압해도 상징인 송공산과 그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 ⓒ 박상건
▲ 송공산으로 가는 숲길에 노을이 스며들고 있다 ⓒ 박상건
운치 있는 송공 선착장에 널린 맛거리 멋거리
그런 먹거리들을 현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포구마다 먹거리 장터와 특산물 전시장이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운치 있는 송공 선착장으로 가면 좋다. 양식장 풍경, 쪽배들의 모습, 선상낚시, 포구를 드나드는 여객선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지 어민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아주 싼값에 맛 볼 수 있는 운치 있는 포장마차촌이 잘 단장돼 있다.
그 다음으로 압해도의 대표적인 특산물은 9~10월에 토질 좋은 황토밭에서 수확하는 압해도 배를 들 수 있다. 바닷바람의 조화로 과육의 질이 좋고 높은 당도 때문에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을 정도.
염전 주위로 이어지는 복룡리 일대에 배 재배단지가 조성돼 있다. 봄이면 마치 선녀들이 춤추듯 하얀 배꽃이 절정을 이뤄 봄꽃놀이 코스로 제격이다. 여름에는 무화과가 지천으로 열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흑비둘기, 왜가리, 쇠백로, 멸종위기종 노랑부리백로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청소년과 가족단위 철새탐조 체험여행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 들판의 갈대와 어우러진 압해도의 광할한 갯벌 ⓒ 박상건
▲ 압해도 바다 갯벌과 들판을 가로지르는 해안도로 ⓒ 박상건
송공산성에서 내려다 본 안해도 앞바다 풍경
그 다음으로 가볼 만한 곳은 어디일까? 먼저 송공산성을 꼽을 수 있다. 높이가 230m로 그리 높지 않은 송공산 정상은 축조된 산성이다. 고려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동국병감>에는 1255년 몽고가 침략했을 때 이 성터에서 싸워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송공산에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압해도 작은 섬들과 양식장을 볼 수 있고 형형색색의 배들이 햇살 부서지는 바다를 오가는 모습도 조망할 수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도 황토길로 잘 닦여 있어 산책하면서 삼림욕도 즐길 수 있다.
앞서 압해도 낙지를 소개했는데 낙지가 사는 곳은 갯벌이다. 다시말해 압해도 갯벌은 꽤 유명하다. 남해안 섬 가운데 가장 광활하고 풍성하게 퍼져 있는 게 압해도 갯벌이다. 그래서 압해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낙지, 짱뚱어, 숭어, 농어 같은 해산물을 갯벌에서 잡으면서 삶의 본거지로 삼아왔다.
▲ 해안에서 노을에 젖어드는 벌판으로 비상하는 기러기떼 ⓒ 박상건
▲ 갯바람이 찬 갯벌에서 낙지를 잡은 아낙의 주름진 손과 그 손금을 닮은 낙지들 ⓒ 박상건
압해도 뻘낙지와 광할한 염전 그리고 기러기 떼들
그래서 압해도 낙지는 '뻘낙지'라고 부른다. 색깔이 갯벌을 닮아 다른 섬의 붉은 색의 낙지 색과 다르고 맛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이런 갯벌에 서식하는 '우럭조개'도 압해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조개 중 하나다.
앞서 염전도 많다고 했는데, 천일염 생산지가 군데 군데 조성돼 있다. 천일염이라함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에 자연 증발시켜 만든 것으로 염화나트륨 외 칼슘과 마그네슘 등이 들어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굵은 소금'이라 불리며 주로 절임용으로 쓰인다.
가정에서 많이 쓰는 정제염은 대부분 바닷물을 전기분해하는 등의 인공 제조과정으로 처리해 만든 것이지만, 압해도에서는 자연적인 제조과정을 거친다. 염전 분포지역은 장감리, 분매리 지역을 꼽을 수 있다. 이 일대를 산책하다가 겨울과 초봄이 만나는 들판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떼들을 보았다. 한세월이 그렇게 저물고 새로운 봄빛이 철새떼들의 날갯짓을 책갈피 삼아 새소망을 가슴 활짝 열게 했다.
섬,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낚시하는 맛을 빼놓을 수 없다. 낚시하기에는 어떨까? 물론 각종 어류가 풍부하다. 그래서 주말과 휴일에 많은 낚시꾼들이 찾아온다. 아무래도 갯벌이 많기 때문에 해안가에서는 망둥어 장어가 많이 잡힌다.
배를 타고 나가면 돔, 우럭, 농어가 잘 잡힌다. 압해대교 주위 간척지 수로에서는 민물 붕어낚시도 아주 잘 된다. 바다낚시는 초여름부터 10월까지 돔, 농어가 잘 잡히고, 추석전후인 10월 초순부터는 우럭이 잘 잡힌다.
▲ 담백한 압해 뻘낙지를 사용한 연포탕 ⓒ 박상건
▲ 조개구이와 조개회로 각광받는 압해도 해산물 ⓒ 박상건
○ 압해도 가는 길
1. 승용차: 서해안고속도로→목포→북항→압해대교→압해도
2. 버스: 강남고속터미널→목포터미널(4시간 30분 소요)→압해도(15분 소요)
3. 기차, 항공: 용산역, 김포공항→목포역, 무안공항
4. 압해도에서 인근 섬여행을 갈 경우에는 송공선착장을 이용하면 된다.
5. 배편 문의(압해농협 061-271-0512)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섬과문화(www.summunwha.com)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 박상건은 시인이고 (사)섬문화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겸임교수입니다. 저서로 <포구의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상위 5%로 가는 사회탐구교실-섬과바다>, <한강의 섬을 찾아서>, <레저저널리즘>,<미디어 글쓰기> 등이 있고, 최근 언제 떠나도 좋은 45개의 섬을 선정해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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