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외버스 운전사의 황당한 모습을 보고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지. 9월 11일 11시 30분경, 전주에 출장 갔다가 천안까지 1시30분에 급히 도착해야 했던 나는 열차와 고속버스 시간이 모두 여의치 않아 마지막으로 시외버스터미널에 전화를 걸었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직원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다시 걸라면서 번호를 일러주었는데, ARS 번호였다. 선택의 여지없이 이미 녹음 된 내용을 다 듣고서야 버스는 12시에 있고, 소요시간은 1시간 20분이라는 멘트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배차 시간을 기다려 전주-천안평택 간 D고속을 탔다. 문제는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는 버스는 정안 휴게소 근방에서 이미 1시간 20분이 소요됐다. 풍세 요금소에 이르자 많은 차들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나는 아산에 있는 대학 강의를 가는 차여서 마음과 시간은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경우의 수를 감안해 중간에서 택시를 탈 수 있도록 배려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일언지하에 “그럴 수는 없다”는 말만 들었다.
요즈음처럼 교통량이 많은 경우 정기노선 시간은 얼마든지 지체될 수 있다. 그러나 버스를 이용하는 대다수 승객들은 도착 시간을 미리 감안해 탑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융통성 있는 기사들은 지름길을 선택해 운전 방향을 바꾸거나 휴게소에서 내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운전기사는 도착시간이 40분 넘도록 연착 가능성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고 승객들은 운전기사와 천안종합터미널 배차 담당자와 서로 통화하는 내용을 엿듣고서야 풍세 분기점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났음을 알았다. 그것도 운전기사로부터 가까운 좌석이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다.
남천안으로 진입할 무렵에 운전석 뒷좌석에 앉은 젊은 여성이 생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얼마나 급했는지 그녀는 “기사님, 여기서 좀 내려주세요. 나중에는 제가 알아서 갈게요”라고 말했다. 운전기사는 역시 일언지하에 “안돼요!”라는 답변이었다. 그녀는 거듭 “제발, 여기서 좀 멈춰주세요, 부탁할 게요”라고 말했다. 운전기사 대답은 다시 짜증스럽다는 듯이 “안 된다니까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천안 시내로 접어들자 웰빙식품엑스포축제가 열리면서 여기저기 교통경찰들이 자동차 흐름을 인도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이를 보라면서 “경찰들이 저렇게 많은데 어떻게 내려요?”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어느 경찰이 응급승객을 못 내리게 한다는 말인가. 더욱 가관인 것은 기사 뒷좌석 버팀대를 잡고 참기 힘든 듯 온몸을 비트는 여성의 모습을 백미러로 바라본 운전기사는 “여기서 내려줘요?”라고 물었다. 운전기사가 말하는 ‘여기’는 이미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도심 한가운데였다.
그렇게 터미널에 도착했고 그녀는 울면서 하차했다. 나름대로 중간에 하차하면 안 되는 버스운행규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승객을 태운 버스가 승객의 응급조치에 인색하다면 누가, 무엇을 믿고 그런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는가. 그 무슨 이유로 승객을 불안하고 힘들게 했는지 몰라도 대중교통을 ‘나 홀로 운전하는 기사’에게 하차하면서, “해도 너무 하시네”라는 말밖에 못하고 내린 내 자신이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든다.
박상건 교수 등 <한국기자협회보> 2010년 새 필진 (0) | 2010.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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