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대학원의 아주 특수한 송년의 밤
행사장 입구. 화환 옆에는 교수들의 수업 장면을 찍어 진시하고 있습니다.
행사장 입구에는 학생들의 수업과 각종 모임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선후배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만든 밴드가 열정의 무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교육의 본질과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문주의 교육론자들은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과 고대 문화를 부흥하고 개성과 인간성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개성과 인간성 존중’이라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반대로 개성과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페스탈로치 같은 교육가도 있습니다. 저는 전자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작용이라는, 그것이 결국 교육의 본질이라는 칸트의 언명을 굳게 믿습니다. 그런 길을 개척하는 일이 교육개혁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오늘 뭐 ‘교육개혁’이라는 거창한 담론을 이야기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송년의 밤을 다녀와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싶은 게지요. ‘개성과 인간성’이 물씬 묻어나는 그 현장의 경험은 오래도록 제 가슴에 잊지 못할 송년의 밤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12일 성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언론정보대학원 원우회와 동문회가 주최한 ‘성대 언정인의 밤’을 다녀왔습니다. 여기서 ‘언정인’은 언론정보대학원 재학생과 동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저는 2002년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습니다. 그러니 성대 언정인인 셈입니다.
성대 언론정보대학원은 바쁜 사회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른바 특수대학원이죠. 교육법상 종합대학인 대학교와 단과대학에 대학원을 둘 수 있고, 기초학문연구와 교육을 주로 하는 일반대학원과 언론정보대학원, 경영대학원, 교육대학원, 행정대학원 등 특수 또는 응용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하는 전문대학원이 있습니다.
재학생 플랑밍고팀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재학생 공연에 대한 답례로 정구일 동문이 기타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즉석에서 노래 요청을 받은 홍서범 동문이 불놀이 등의 신청곡을 받아 공연 중입니다.
저는 그날 밤 후배 원우들이 마치 조무래기들이 학예발표회를 준비하듯이 며칠 씩 밤을 새워 준비해온 공연을 펼치는 것을 보고 저것이 진정한 개성이며 끼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모두 발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헌신이며 사랑이며 행복이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송년의 밤이면 많은 사람들이 시내 호텔이나 프레스센터 등에서 외부 공연팀 한 군데 정도 불러 형식적인 식전행사를 치르고 뷔페 식사를 한 후 헤어집니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특수대학원생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적교류나 네트워크 비중 보다는 ‘우리 함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보이지 않는 테마가 행사 진행 내내 행사장으로 고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그 공감대가 형성돼 파도치듯이 격정적으로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장엄하리만큼 파토스적으로 제 가슴 깊이 물결쳐 왔습니다.
그날 공식 행사가 끝나고 너무 즐겁고 헤어짐이 아쉬워 선후배들과 2, 3차까지 가며 술고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술이 취하지가 않았습니다. 술기운을 물리친 것은 바로 순수빛 사랑이라는 해독제였을 것입니다. 마실수록 되레 사랑에 취하고 그렇게 취하고 흔들릴수록 기쁨과 행복의 그네처럼 내 영혼과 가슴은 쉼 없이 아름답게 흔들렸습니다.
저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6년째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가르치는 것이지만 가르치면서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많이 배우게 되어서 가르치는 것이 더 재밌습니다. 배움의 결론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순수’이며, 그것은 열정이 다 채운 자리를 다시 비워내는 ‘빈 가슴’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열정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만 미친 열정의 도가니는 타인의 소외를 불러옵니다. 그래서 뜨거울 때 적당히 멈춰설 때도 있어야 합니다. 마치 대장간에서 쇠망치질을 하다가 물에 치이익 취지직~ 하며 쇠를 물에 담그는 과정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정열처럼 뜨겁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아이슈타인은 교사의 임무는 독창적인 표현과 지식의 희열을 불러 일으켜 주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 언정인은 모두가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교사이고 교육 현장의 체험자들이었던 셈입니다. 스승과 제자는 종이 한 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먼저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느냐? 교육의 가치를 발현하는 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먼저 깨닫느냐? 그리고 누가 먼저 깨우치게 하느냐? 현실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줄기 빛 같은 그런 귀중한 삶의 가치를 발견한 자가 진정한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텍스트 외우고 담론에 함몰돼 현장과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무관심 것은 참 지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역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워즈워드는 어른도 아이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이 생산품이 되어버린 현실. 작금의 교육현장은 치열한 경쟁과 아귀다툼 같은 자화상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기업 마케팅 현장을 보는 듯합니다. 그만큼 혼탁합니다. 점수, 졸업장, 취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오늘날 우리 교육의 처음과 끝인 것처럼 굴러 갑니다. 일부 특수대학원과 최고위 과정 역시 직업의 귀천이 분명하고 그러한 돈과 권력의 비중이 이해관계에 얽혀 돌아가는 현장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런 관계의 먹이 사슬 속에서 나에게 무엇이,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가? 이 문제가 라인업을 택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오늘밤만 같아라~~~~행사장에서 만난 대학원 원우들의 미소
홍서범 동문의 불놀이야 공연에 열광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대학원생들
2주간 엽습을 해서 공연을 선보이게 되었다는 성대 언정인 밴드의 열정적 공연 장면
그런 점에서 언정인의 자부심을 느끼며 그렇지 않은 언론정보대학원을 다닌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물론 교육의 목적은 장래 생활을 준비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래가 반드시 출세와 처세의 길은 아닐 것입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영국의 풍자시인 버틀러는 무지의 진정한 특징은 허영과 자만과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배움은 허영과 자만과 교만을 버리는 것이고, 그러한 동문과의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사귀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일도 많이 벌였습니다. 사람은 일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그렇게 만나서 친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일을 하다보면 꼭 친해지는 것만도 아닙니다. 싸우고 다투고 다시 화해하면서, 그렇게 왜 인간은 비온 뒤 굳어지는 그 땅 뙈기에 두 발로 서서 살아가는지, 혼자가 아닌 어깨동무 하면서 살아가는 지를 실감합니다. 저 바다의 파도처럼 말입니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벗을 얻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나 스스로 남의 벗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벗이 되고자 한다면 아무에게도 벗이 되지 못하는 법이죠. 우리시대에 진정한 우정과 처세는 분명히 다른 법이니까요. 그래서 배움에서 만난 벗의 관계는 다른 어떤 새로운 만남보다도 순수하고 미치도록 열정을 다해도 지나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서 볼테르는 취미는 바꾸더라도 친구는 바꾸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가장 연장자이면서도 산악회 창립 등 늘 솔선수범을 보인 유희원 사장에게 감사패를 시상하는 장면
그동안 고생한 한정일 원우회장 등 원우회 집행부가 감사패를 받고 기념촬영하는 모습
성대 언론문화대상을 수상한 서울방송 아트텍 감사 홍성욱 동문과 이효성 언론정보대학원장(오른쪽)
성대 언론문화대상 특별상을 받은 문화방송 김영 감독(왼쪽)과 총동문회장
그런 성대 언정인이 그런 아름다운 이상처럼, 전통을 잘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장을 거울삼아 저도 살며 사랑하며 많이 배우고자 합니다. 오래도록 친구, 선후배들과의 만남과 우정을 가슴 깊게 새기고 설레이며 살고 싶습니다. 그 사람을 모르거든 그 친구를 보라고 했지요. 친구는 그 사람의 거울이니까요. 성대 언론정보대학원을 모르거든 그 친구를 보고, 그 친구가 누구인가를 알려거든 성대 언론정보대학원생인가를 보라고 말해도 ‘너무 잘난 척 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언정인이고 싶습니다. 그러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다시금 내가 졸업한 대학원을 짝사랑해봅니다. 한해가 서서히 저물면서 그리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지나간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역시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그날 밤, ‘성대 언정인의 밤’을 기획하고 연출한,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바치려는 열정을 다한 후배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헌신하는 일, 그것은 누군가가 못을 박으면 그 자리에 모자를 거는 것과 같습니다. 언정인의 사랑과 헌신은 그렇게 이 사회의 한복판으로 물결쳐 갈 것입니다. 눈발이 날릴 것만 같습니다. 한 해가 다 기우는가 봅니다. 누군가가 그리운 그런 세밑입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사람, 나의 영원한 둥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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