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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세상, 이제 새길을 가자

섬과 문학기행/시가 있는 풍경

by 한방울 2005. 3. 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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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풍경 21] 이성부作,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갈라진 세상, 이제 새 길을 가자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을 안고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 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이성부,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전문)


봄이 왔다. 봄은 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고 노래했던 시인 이성부. 봄은 왔건만 정녕 민초들의 가슴에 봄은 오지 않고 있다고들 한다. 아우성만 있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지나온 길이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이 길을 걷는 동시대인들이 울러 맨 삶의 단봇짐이 너무나 무겁다고들 한다. 한 길을 아니라 갈등과 분열, 우격다짐으로 갈라서는 길들만이 보일 뿐이다.


이즈음 이성부 시인의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라는 더욱 가슴에 다가서는 것은 왜일까?

시인은 산을 오르며 시를 쓰는 산상 창작시인이다. 8년 동안 백두대간을 오르며 시를 쓰고 이를 갈무리해 최근 두 번째 산(山)시집을 내놓기도 했다. 시인은 산길에서 길과 삶, 존재를 읽어낸다. 그렇게 산을 통해 능선을 넘어가는 사람과 역사의 영혼의 지도를 그려 나가는 것이다.


예순 셋의 시인은 바위를 타며 화강암에 남은 자국의 고마움을 노래하곤 한다. 그 흠에 손가락을 넣어 바위를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상처에 대해, 보이지 않은 아픔에 대해 그것으로 내가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겸허한 삶이 시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혼자 가는 산길에서 마음이 튼실하고 넓어진다고 믿는다. 그 산길에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아픔이 서려 있기도 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나 정상을 먼저 차지하려 하고 이를 빼앗기려하지 않는 측과 격렬한 전투를 거듭한다. 서민들은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 총과 칼을 피하곤 했다. 그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으로 갈라선 사람들이 흘린 피가 황토 빛깔 산길을 드러누워 있다.


이성부 시인이 산에서 역사를 캐고 민중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내일로 가는 길을 찾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가슴에 더욱 와 닿는 구절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이제 비로소 길이다”라는...


그렇게 더러운 것은 어둠 속에 묻어버리며 야간산행을 즐기던 시인. 가야할 길을 역사의 능선을 넘으면서 만난 뒤안길이다. 그 길에서 새로운 깨우침을 얻는다. 그리고 야호를 외친다. 첩첩의 산중처럼 서로 얼싸안고 가야 하는 길이 산길이라고 믿는다. 그 산길은 우리가 가야할 희망봉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가야할, 올라서야 할, 넘어서야할 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그렇다. 이제 우리 새로운 길을 가야한다. 그것이 진정한 시작이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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