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중앙일보가 한국 신문 최초로 초판신문(가판)을 없앤 뒤 3여년 만인 2005년 3~4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한겨레신문.경향신문 등이 가판을 폐지했다. 그리고 1년4개월이 지났다. 한국 신문을 '붕어빵'으로 만든 주범으로 여겨졌던 가판이 사라진
뒤 신문의 1면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에 답하듯
한국언론학보 50권4호에 조영신.박상건.이선미씨의 논문'가판 폐지와 신문의 1면 다양성'이 실렸다.
가판이 사라진 뒤 신문의 1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실질적으로 따져 본 첫 연구다. 연구자인 박상건 신문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은 "중앙일보가 '지면
차별화' 등을 위해 처음 가판을 없앨 때만 해도 신문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이제는 독자의 다양한 관심을 반영하는
'맞춤형 신문'의 모습이 자리를 잡고 있다"며 "중앙일보의 가판 폐지가 신문시장이나 언론계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해진 주제=가판을 폐지하기 전인 2004년 10월 20일자 주요 일간지 1면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한 기사가 톱이나 사이드를 장식했다. 제목도 비슷하다. 반면 가판을 폐지하고
1년여가 흐른 2월 14일자를 보자. '중국
후진타오 주석 참석 한국
새마을운동 학습'(중앙일보),'고건씨 내달 정치연합 결성'(조선일보) '근소세 경감 등 11개 사실상
손놓은 상태'(동아일보) 등 1면에서 머리기사로 다룬 뉴스가 제각각이다.
이처럼 가판이 없어진 뒤 '신문의 얼굴'인 1면의 내용은
다채로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1면에 실린 기사 숫자도 늘어나고 주제는 다양해졌다.'선거관련 자금 기사''북한 핵 관련 기사'등 주제별로 비슷한
기사를 묶어 살펴본 '주제 다양성'은 가판이 사라지고 높아졌다.
연구자들은 "가판이 없어 경쟁지의 편집 전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면 기사를 정하는 데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을 방증한다"고 밝혔다. 또한 낙종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다양한 기사를 1면에
소개한 것도 이유로 분석됐다.
◆겹치는 기사는 줄어=1면 기사의 중복도도 가판이 있을 때(9.38%)에 비해 가판이 사라진 뒤
6.45%로 줄었다. 1면의 특성상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한
헌법재판소 결정처럼 전국을 뒤흔드는 이슈가 있을 경우 기사가 겹치는 것을 감안하면 중복도는 상당히 낮아진
셈이다. 연구자들은 "가판이 있을 때는 신문사가 서로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데 급급했지만 가판이 사라지면서 각 신문사가 자체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뉴스를 선별하면서 차별화된 지면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 기사 비중 작아져=1면에 실리는 분야별 기사 점유율도 가판
폐지 전.후가 달랐다. 가판이 없어진 뒤 1면에서 정치.해설, 경제 및 국제.외신 기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었다. 반면 사회 부문 기사의
비중은 커졌다. 정치.해설 기사의 경우 가판이 나올 때 1면 기사의 26.55%를 차지했지만 가판이 폐지된 뒤에는 9.81%로 뚝 떨어졌다.
경제 기사는 15%에서 8.82%로, 국제.외신 기사는 13.17%에서 4.85%로 그 비중이 작아졌다. 하지만 사회부문 기사의 점유율은 가판이
있을 때(29.82%)에 비해 가판이 없어진 뒤 50.45%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처럼 정치.경제 기사의 점유율이 급락한 것에 대해
연구자들은 "정부의 가판 구독 금지로 인해 정치권력과의 협상통로였던 가판의 효용성이 떨어진 데다 광고주와의 결탁 가능성도 줄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중앙일보가 "가판 신문이 외부에서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악용돼 온 측면이 있는 만큼 이런 관행에 대한 자성으로
없앤다"며 가판을 폐지한 취지가 신문 시장과 지면의 변화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박 위원은 덧붙였다.
◆분석 어떻게 했나=분석 대상이
된 신문은 총 4개다. 2005년 3월 7일부터 4월 4일 사이에 가판을 없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한겨레신문.경향신문이다. 가판 폐지를 주도한
중앙일보는 자료 분석의 통일성을 위해 분석에서 배제됐다. 다른 신문에 비해 3년 먼저 가판을 없앴기 때문이다.
기간은 가판 폐지
전(2004년 3월 1일~2005년 2월 28일)과 후(2005년 4월 5일~2006년 4월 4일)로 나눠 각각 5주(30일)씩 표집해
비교했다. 박 전문위원과 함께 논문을 발표한 조영신씨는 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이선미씨는 미 플로리다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