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노예 할아버지를 방영한 서울방송 '근급출동 SOS24'
2일 밤. 서울방송 '긴급출동 SOS 24'에 방영된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세상을 온통 분노의 바다로 만들었다.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매일 한 젊은 주인집 농사일을 도맡고 상습적 폭언과 폭행에 시달린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들판에서 구부정한 허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귀가하던 할아버지. 지나가던 교회 신자들이 사탕 몇 개를 주자 며칠 굶은 사람처럼 입에 털어 넣던 장면. 그래도 배가 고픈 탓에 캄캄한 밤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에서 음식물을 건져내어 그것을 신문지에 싸들고 귀가하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에게 취재진이 물었다. 매일 이렇게 쓰레기통을 뒤지느냐고? 그런다고 했다. 배가 고프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취재진이 그것을 버리라고 했다. 먹을 것을 사주겠다며 가게로 함께 들어섰을 때 할아버지가 잡은 것은 많지도 크지도 않은 빵 한 봉지였다.
할아버지는 50년 전 주인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단다. 주인집 어른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아들이 2대째 할아버지를 종으로 부려온 것. 진종일 리어카를 끌고 다니고 삽질을 하며 노동을 착취당했다. 주인이라는 사람은 발길질을 하고 욕을 해댔다.
그렇게 치 떨리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던 할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씻을 곳이 없어 마을 길가 옆 하수도에서 몸을 씻었다. 그리고 기거하는 곳으로 향하는 데 뜻밖에도 주인집의 방이 아닌 곧 쓰러질 듯 외양간 같은 공간이었다. 천장에 거미줄이 쳐지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온갖 더러운 이불더미가 쌓인 그 구석에서 자고 있었다.
누가 이 땅에 이런 분노의 씨를 뿌리는가? 요즈음 세상에 누가 이런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가? 분노는 이성에게 패배할 때 생긴다. 비이성적인 이런 행태 앞에서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할아버지를 그렇게 방치한 행정관청은 아무 죄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독거노인을 그 이상 어떻게 대우해줄 수 있느냐는 설명 앞에서는 더욱 분노감을 치밀게 했다. 면사무소에서 매달 지원하는 28만 6천원의 생계주거비는 고스란히 주인집에서 횡령하고 있었다.
이에 주인은 되레 큰 소리였다. 이 돈이 없어도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는 없으면 못 사는 돈이지 않는가? 주인집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람에게 밥 주고 재워주는 데 누가 고자질했느냐며 제보자를 탓했다. 그리고 밥상을 늘 차려 주고 있다면서 3개의 찬과 밥을 고봉으로 내어 상을 차렸다. 그런데 그 밥상마저 부엌 한 쪽에 쪼그려 앉아 먹게 했다. 밥상 옆에는 오물 쓰레기통이 놓여 있었다. 주인집 가족이라면 저렇게 부엌 구석진 쓰레기통 옆에서 밥을 먹게 했을까?
50년 학대 속에서 살아온 할아버지의 유일한 가족은 이웃 친형 댁이었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 그 집은 불타고 없었다. 다시 찾아간 곳이 할아버지를 어릴 적부터 아끼고 예배당에 함께 다니며 찬송가를 부르던 형수였다. 그리고 조카와 조카며느리. 그들은 할아버지 소식에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결국 할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가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는데 그 장면은 충격이었다. 옷을 제대로 사 입지 못해 팬티가 갈갈이 찢긴 채로 삭아 뼈에 걸려 있을 정도였다.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옮겨진 할아버지는 어릴 적 함께 예배당을 다니던 형수가 보고싶다고 했다. 병원에 누워있던 할아버지는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주인집에서 정신병자라고 하던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누이를 위해 맨발로 병상에서 내려와 절을 했다. 요양원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요양원측과 친지들이 준비한 생일상을 받았다. 처음으로 맛본 가족의 사랑, 자유민주주의에 널려 있는 자유 중 손끝만한 자유를 맛본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확신한 듯 주인집을 향해 한마디를 뱉었다. “몹쓸 인간, 맨날 나를 때렸어”라고....
세상천지에 이런 노예 현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격이다. 국가적 수치이다. 매일 이런 장면 앞에서 반상회나 마을 모임을 통해 추호의 해결할 여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웃사촌 시대도 이제 막을 내렸나 싶어 가슴 저밀어 올랐다. 이제 이웃은 배타적이고 이기적 울타리만 남아 있는 것인가? 마냥 씁쓸하게 한다. 복지한국 말로만 떠들면 뭣하나? 한 개인의 최소한 자유마저 되돌려주지 못한 그런 허울 좋은 사회복지랑 어디에 쓴다는 말인가?
네티즌들의 격앙된 분위기는 한동안 계속 될 것 같다. 3일 현재 수 천 건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디 ‘hssaca’는 “방송을 보는 내내 넘 화가 났다. 아직도 몸이 떨린다. 가족을 만나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지난 50년의 세월을 누가 보상을 해줄까요?”라고 안타까워했다.
‘peple318’는 “면사무소 복지과 직원들 다 해고해야 마땅하다. 도대체 복지과는 뭣 때문에 있는건가?”라고 분노했고, ‘swkim0419’는 “눈물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법치국가에서 이런 일이 자행되고 있었는데도 동네사람들과 면사무소 사회복지사 양반들 지금까지 방치하고 동조한 게 사람으로서 할일인지 묻고 싶다.”라고 반문했다.
‘gik78’는 “욕이 나오고 눈물이 나와서 미치는 줄 알았다”면서 “감히 주인이라는 작자에게도 감금시켜놓고 똑같이 음식쓰레기를 먹이고 하루 20시간씩 중노동을 시켜야 한다”는 격앙된 감정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고, ‘peple318’는 “그런 관계를 알면서도 그냥 방관한 동네사람들이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mjhite’는 “할아버지 힘내시구요......앞으로라도 더 건강하게 마지막에 보여준 그 미소 잊지 마시고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오래 오래 사시고 화이팅 하세요!”라는 격려의 글도 많았다.
어쩜 이러한 분노와 안타까움은 그나마 남아 있는 우리사회 희미한 사랑의 끈들이 있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마음 없이는 어떠한 본질도 진리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의 말이 생각난다. “사랑에는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다.” . 할아버지가 이제는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박상건(시인. 계간 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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