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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등대기행-영흥도

섬과 등대여행/서해안

by 한방울 2004. 2. 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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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등대기행 ⑩ 영흥도 
영흥도, 박상건, 박상건

 

- 연인·가족과 식물 군락지 갯벌 체험 추억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야했던 영흥도는 2001년에 1.25㎞에 이르는 영흥대교가 생기면서 승용차로 대부도∼선재도∼영흥도까지 여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객선을 이용해도 운치가 있고 승용차를 이용해 여러 섬을 두루두루 즐길 수도 있다.

영흥도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중국 상선이 표류하던 중 암초에 침몰 직전 바다에서 큰 거북이가 배 밑창을 막아 무사히 영흥도로 피신 배를 고친 후 다시 제물포로 갈 수 있었는데 神堂이 도와준 덕이라 해서 영흥도라 부른다는 것. 옹진군청은 이를 근거로 홍보자료를 만들고 있다. 반면에 해양학자들은 고려말 익령군이 고려왕조가 망할 것을 알고 온식구를 끌고 이곳으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는 데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신령의 도움으로 화를 면해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라 불렀다는 것. 어쨌든 공통점은 신의 섭리가 서린 섬이라는 것.

아픈 역사와 신의 섭리가 출렁이는 섬

구전에 의하면 공민왕 후손 익령군이 이태조 탄압을 피해 최초로 정착하면서 임씨, 채씨가 함께 살았다는데 그래서인지 현재 평택 임씨가 많이 살고 있다. 영흥도는 인천 앞 바다 섬 가운데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영흥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 1973년 옹진군에 편입되었던 영흥도는 삼별초 거점으로 70여일간 몽고에 대항했던 섬이기도 하다.

옹진군에 딸린 섬 가운데 유일하게 승용차로 건너갈 수 있는 이 섬 포구인 진두마을에서 노랑부리 백로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갯벌에서 노니는 모습이 여간 평화로운 것이 아니었다. 갯벌은 다른 곳과 달리 1미터 이상 높이로 그 아래로 뻘강(갯펄 사이로 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약 5km로 이어진 임도에는 국사봉이 솟아 있다. 고려말 정국이 불안할 때 왕권이 약했던 익령군이 이곳에 피신해 나라의 평안을 기원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면 멀리 인천항을 오고가는 외항선, 작은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최규선 스님이 실향민들의 애타는 마음을 달래며 통일을 기원했다는 통일사도 있다.

여름과 겨울 바다 멋 저마다 독특하게 뽐내

임도 아랫도리는 장경리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있다. 드넓은 자갈해변과 백사장이 이채로운 해변이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한 그물 고기잡이 대회를 열던 곳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온 가족들이 맨손으로 고기 잡아 카메라 앞에 들어 보이며 함박 웃음을 짓던 추억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썰물 때 동죽, 바지락, 모시조개 등을 많이 잡을 수 있다.

해변에는 100년 넘은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용담리 해수욕장에는 사계절 여행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적하면서 바지락 캐는 재미가 쏠쏠해 겨울에도 길게 펼쳐진 갯벌에서 한창 호미 찍어 쌓는 모습이다. 이처럼 영흥도는 갯벌 천국이다. 해변마다 바지락이 널려 있고 바지락 음식점이 즐비하다. 메뉴도 바지락 조개탕, 바지락 회, 바지락젓갈, 바지락 빈대떡 등 바지락 명성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다. 굴도 많이 생산되는 해변에는 소나무 군락과 함께 500년 넘은 은행나무도 꿋꿋이 서 있다.

연인과 가족 단위 적격, 식물 군락지와 갯벌 체험

십리포 해수욕장은 조용하면서 깨끗한 해변으로 서어나무 3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룬다. 앞바다에 보무도 당당하게 떠 있는 섬이 우리 나라 최초 등대가 있는 팔미도이다. 여름 바다 못지 않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겨울 바다에 연인과 가족들이 백사장 거니는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해변에 마련된 나무 벤치에 앉아 겨울바다를 구경하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영흥도는 사색의 바다로 안성맞춤임을 알 수 있다.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아 여름 해수욕하기에 좋고 썰물 때는 고동과 낙지 '박하지'라는 게를 잡을 수 있다. 해수욕장을 빠져 나오는데 마을 논바닥 한 귀퉁이 얼음판에서 동네 어른과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는데 어린 시절의 추억이 순간 떠올라 오래도록 그곳에 눈길을 묶여 두었다. 농사생활과 어촌생활을 병행하는 이른바 반농반어촌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속도 가운데 한 장면인 것이다.

영흥도에 소속된 무인도로는 어평도가 있다. 고기가 많이 잡히고 물이 맑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큰배들이 드나드는 시기에 고기가 많이 나는 뻘이라고 해서 '어뻘'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어평도에는 210종 생물이 사는 데 노란 장대, 소사나무, 모감주나무, 만주 고로쇠, 금방망이 등 특이한 식물이 많다. 특히 해변에 소사나무, 산벚나무 군락지와 갯메꽃, 갈대 등이 서식한다. 가마우지, 노랑부리백로, 노랑할미새, 바다직박구리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섬 안으로 다양한 식물과 농촌문화를 키우고 밖으로는 낚지 조개 등 어촌문화를 생동하는 섬, 그렇게 풍요롭게 커 가는 섬이 바로 영흥도가 아닐까 싶다.

● 미니상식/썰매에 대하여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눈발로 날리는 썰매. 두꺼운 판자를 대어 만든 것도 있지만 비닐 포대기에 엉덩이만 붙여 미끄러지던 맛도 괜찮았다. 서르매, 산서르매, 설매 등으로 불리는 썰매는 한자로 설마(雪馬), 성응(雪鷹)에서 알 수 있듯 말이나 매처럼 빠르게 눈 위를 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보았던 미국 알래스카주, 캐나다 앤티코스티섬 설원을 달리던 개썰매 풍경이 아련하다. 세월이 흘러 전동식 눈썰매(스노우카)도 등장했다. 짐을 나르거나 신으로 싣거나 놀이 용도에 타느냐에 따라 썰매를 달리 만들었다. 물건을 나르기 위해서는 바닥을 둥글게 깎아 휘어 앞뒤를 위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선조들은 수원성곽과 창경궁 창덕궁 재건공사 때 썰매를 이용했다고 한다.

발에 신는 썰매는 스키 부리처럼 앞쪽을 위로 들려지도록 굽혔다. 중간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발을 꽉 죄도록 고안했는데 강원도 산간지방에 이 썰매를 주로 이용했다. 어린이 놀이로 쓰이던 것은 엉덩이를 적당히 붙일만한 판자에 각목을 대에 그 밑은 쇠줄을 박아 얼음판에 스르르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썰매를 미는 도구는 송곳이 박힌 나무로 얼음판에 찍어 앞으로 나가고 방향을 틀거나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다.

● 영흥도 가는 길


1. 서울역=>연안부두행 삼화고속=>영흥도행 여객선
2. 수도권=> 경인고속도로=>서창I·C=>서해안고속도로=>월곳 I·C=>좌회전(직진)=>시화방조제=>대부도=>방아머리=>선재, 영흥방면 이정표(영흥화력발전소)=>선재대교=>영흥도.
여객선(대부해운 032-886-7813/원광해운 032-884-3391. 비수기 단축운항, 전화문의 후 출발 필요/옹진군 문화관광과 032-880-2531/영흥면사무소 032-886-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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