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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힘과 여인의 자태 아우른 동백나무 이야기

섬과 문학기행/붓가는대로 쓴 글

by 한방울 2004. 2. 1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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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오동도 울릉도 대청도 완도 등 해안과 지리산 서산 내륙 등에 주로 서식한다. 오동도 동백숲에 갔을 적에 이런 전설을 들었다. 어느 날 남편이 고기 잡으러 간 사이에 도둑이 아내를 겁탈하려 하자 여인은 바다로 몸을 던졌는데, 그 여인을 파묻은 자리에서 그 고운 얼굴을 닮은 동백나무가 자랐다는 것이다.

동백나무와 여성의 인연설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전기 불이 들어오지 않던 시절 사립문을 열고 들어설 적에 창호지 문에 아른거리던 것이 있었으니, 동백기름으로 켠 호롱불 아래 동백으로 만든 얼레빗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던 시골색시 혹은 아낙의 풍경이었다.

고향 뒷산에는 '동뫼' 라는 동백숲이 있었다. 등성이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은 멀리 아스라한 수평선. 동산 뒤로는 논두렁 밭두렁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마을로 내려오는 듯한 모양새의 평화스럽고 정겹던 들판이었다.

자연과 어울려 살던 유년시절
동백 꿀을 먹고사는 동박새는 늘 무리를 지어 동백숲에 파닥이며 마을의 적막을 깨곤 했다. 동박새는 열매와 씨를 먹고산다. 이런 새무리에 의해 꽃가루가 날리고 가루받이를 이루어 성장하는 나무가 동백나무이다. 그래서 조매화로 분류된다. 꽃과 새가 서로 사랑을 나누어 태어나고 서로 마음 주며 성장하니 이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인가.  

동박새처럼 고만고만한 조무래기들이 묘지들이 즐비한 동뫼 산비탈에서 동백나무로 바퀴를 만들고 운전대를 만든 일명 '산태'라는 나무 자동차를 만들어 타곤 했다. 타이어가 귀했던 시절에 나무로 바퀴를 만들어 놀이문화를 즐길 줄 알았다. 새총, 지게, 소달구지, 풍구 등이 모두 선인들이 자연에 얻은 지혜의 열매들이 아니었던가.

동백꽃은 겨울 문턱에서 피고 겨울 끝자락에서 붉은 살붙이를 지상에 내려놓는다. 이런 이미지 탓에 일본과 제주도에서는 '죽음'을 연상하는 운명의 꽃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가난했던 그 시절부터 우리생활 속에 늘 함께 했던 나무였음이 분명하다.

붉은 꽃 속에는 노란 수술이 있는데 이를 쭈쭈바처럼 빨면 단물이 나왔다. 또 '동백떡'이라는 과수를 따서 먹었는데 열매가 열리는 시기에 일부 동백나무에서 생기는 것으로 무화과 속살처럼 비어 있고 뻥튀기처럼 하얗게 부풀어 있다.

그런가 하면, 아낙들은 타원형 모양의 동백 열매 속살을 빼낸 후 기름으로 짜서 사용하기도 했다. 양초가 귀하던 시절인지라 아이들은 학교 대청소 날이면 재로 된 복도를 이 열매로 빡, 빡 문질렀다. 한 대열이 부리나케 동백칠을 하고 나면 다음 대열이 마른걸레질로 윤기를 냈던 것이다. 이따금 담임 선생님이 드나들던 출입문 앞쪽에 햇살이 미끄러질 정도로 열나게 문질러댔고 겨드랑이에 출석부 끼고 들어서던 선생님은 쪼르르 넘어지기 다반사였다. 그런 장난꾸러기들이 동백꽃 같은 환한 웃음꽃이 만발하던 교실 풍경이었다.

동백잎에 물 한 모금 나눠 마시던 시골 사람들
동백잎은 짓 푸른 빗살무늬 모양이다. 산비탈 밭일을 하고 내려오던 어른들이나 고개 넘어가던 나그네들이 이 잎을 따서 옹달샘이나 계곡 물을 떠 마시곤 했다. 이를 '산다화'라고도 불렀는데 이를 소재로 한 시 한편도 떠오른다.

누이야
가을 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송수권, "산문(山門)에 기대어"에서)

그랬다.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던 인심 후한 시골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우리네 고향이었다. 그 고향 바다 한 가운데 작은 섬이 하나 떠 있었는데 천연기념물 28호로 200여종의 상록수가 우거진 '주도'라는 섬이었다.

유난히 동백나무가 많은 섬이었다. 동백나무 사이에 밧줄 매고 타잔 놀이를 하곤 했다. 섬 주변에서 청각이나 다시마 등 해초류를 뜯어 허리춤에 달고 육지로 되돌아오는 모습은 영락없이 타잔의 후예들이었다.

평야지대를 가로질러 솟은 644미터 상황봉 능선 또한 온통 동백나무들이 줄지어 타올랐다.  집집마다 동백나무 분재 몇 개는 기본이었던 시절에 이런 일도 있었다. 부친께서는 수백 그루의 동백나무에 영양주사를 주며 키웠는데 어느 날 옆방 세입자가 화분만 남겨두고 통째로 동백나무를 뽑아 도주한 것이다. 50∼70㎝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순전 주인의 애지중지 탓이었을 터. 그 나무가 없어진 후 3일째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했던 모습도 주마등처럼 스친다.

동백나무는 그렇게 시골 사람들의 애환과 함께 해왔다. 동백나무는 꽃이 피기 전에는 견고한 재질과 철철 넘쳐나는 푸른 정기로 보아 다소 남성적이다. 반면 꽃이 핀 후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 같다. 결국 여성과 남성 이미지를 두루두루 갖춰 사랑 받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동백꽃은 여성들의 하혈과 산후 출혈, 들판에서 일하다 다친 남성들의 발목에 멍든 피를 풀고 멎게 하는 지혈 효과가 컸다. 최근 일본 교토대학 요시카와 마사유키 교수는 동백씨를 먹으면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했다. 이밖에 관상용·약용·식용은 물론 가구재료로써 우리 일상에 편리함을 실감시켜 주는 다정한 나무가 동백나무이다.

'산의 해'에 생각해 보는 나무의 귀중함
나무 이야기를 하다보니 지난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 산의 해'였다. 정부는 산림현장을 공포했다.  오는 10월 18일은 산의 날이었다. 무슨 날이기 보다 날이면 날마다 사랑할 것이 이 땅의 꽃이며, 나무며, 숲이다. 그것은 우리네 삶의 터전임으로.

산업화와 환경보전의 두 마리 토끼몰이 세상을 보면서 숲들은 참 답답할 것이다. 꽃은 강철을 녹인다는 말이 있다. 인간도 자연도 뿌리로 번성한다. 뿌리가 살아야 문화가 작동한다. 처칠은  힘을 동반하지 않는 문화는 내일 당장 사멸한다고 말했다.

한번쯤 산림문화의 중요성을 되새겨볼 때이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그 믿음을 묵묵히 실천한 네덜란드이기에 오늘날  선진국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백나무, 오동도 동백,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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