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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농민을 두 번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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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방울 2004. 2. 1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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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농민을 두 번 죽이고 있다
- 미디어, 미디어오늘, 연합뉴스

 

 

- 농민시위만 있고 대안 없는 농업보도

허상만 농림부장관은 지난 1월30일 KBS, MBC, SBS 등을 방송3사 사장을 비롯 보도국장,
경제부장 전국부장 등을 전격 방문했다. 허 장관은 이 자리에서 최근 광우병 등 가축질병
사태에 대한 방송의 보도가 지나치게 선정적인 점을 지적했다. 광우병 등으로 국민들이 가
뜩이나 불안해하는데 선정적 방송보도가 그러잖아도 육류 소비의 급격한 감소와 국민 불안
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 방송, 연일 소가 휘청거리다가가 죽는 장면 방영

그동안 방송은 광우병, 가금인플루엔자 질병을 보도하면서 방송은 연일 출렁출렁 젖을 단
큰 소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축사에서 쓰러지는 장면을 내보냈다. 뉴스 시간대뿐만 아니라
시사 교양프로그램에서도 이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내보냈다. 외국 축산농가의 소 한 마리가
처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을 지켜 본 시청자들은 죽음에 대한 충격과 축산물에 대한 현기증
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 내심 "무언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하여간 안 먹는 것이
상책이겠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허 장관이 방송사를 찾아간 배경에는 "우리 나라의 경우 광우병에 한해서는 청정국가이며
수입쇠고기도 철저한 검역을 거쳐 수입되고 닭고기는 충분히 익혀먹으면 문제가 없다" 는
확신과 농림부가 자체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74%가 가금인플루엔자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정보를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 선정주의 보도가 먹거리 혐오감 부추겨

불특정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요 기관으로서 언론은 그 자체로 공익성을 띤다.
언론의 글 한편과 말 한마디가 바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보도의 영향력이 강하냐, 약하냐, 제한적이냐에 따라 사회에 크고 작은 파장을
미친다. 그래서 언론은 먼저 '공공의 이익과 정의'에 부합해야 하고, 특정인과 기관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 큰 걸림돌이 특정 사실을 지나치
게 강조해 독자와 시청자의 도덕적·심미적 감성을 자극하여 실제보다 부풀리고 흥미로움을
더하기 위한 기사의 윤색이다. 이른바 선정주의이다.

선정주의 보도는 대중에게 마치 주사 바늘로 메시지를 주입시켜 특정 메시지를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강력하게 침투시킨다. 이른바 언론학에서 말하는 탄환이론(Bullet Theory)이다.
대중은 이 주사바늘에 중독 되거나 마취되어 군중심리를 자극한다. 이른바 '∼카더라'식으로
여론화되면서 본질과는 다르게 집단 체면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기자들은 늘 단정저널
리즘과 검증저널리즘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언론의 농업과 농촌관련 보도의 가장 잘못된 버릇 하나가 농민시위 중심으로 접근하고
대안마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멀리가지 않더라도 2002년 10월 이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
정 관련 방송 뉴스 및 시사·토론프로그램의 경우 쟁점에 대한 사실보도나 심층보도보다는
선정·추측보도가 주류라는 점이다. 특히 칸쿤회의에 대한 방송 3사 저녁뉴스 보도건수는
회의개막일인 10일∼15일까지(10일 이전 보도 全無), 전체 방송 43건 가운데 MBC가 18건으
로 가장 많았으나, 11일 오전 이경해씨 자살관련 보도를 제외하면, 전체 23건으로 방송3사는
일제히 농민의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2002년 10월 한국-칠레간 자유무역협정 과정에서도 되풀이되어 방송 3사는
협정내용보다 타결여부에 주목하고 추측보도가 횡횡했다. 이를테면 는 "한-
칠레 자유무역협상 타결"(10/24), 는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 연내 타
결"(10/16), "한국-칠레 FTA 최종타결"(10/24), 역시 "한국-칠레 자유무역
협정 사실상 타결"(10/16),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협상 결렬 위기"(10/21), "한-칠레 자유무
역협정 마침내 타결"(10/24) 등으로 보도했다.

사실 신문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닭이 허공에 날아오르다가 방역 관계자
에 의해 산채로 땅에 묻히는 장면 등이 방송이 시청자에게 주는 충격이라면 선정적 제목뽑
기와 함께 농민의 통곡을 확대사진으로 지면에 실으며 농민도 두 번 죽이고 소비자도 떠나
게 하는 누구를 위한 농업기사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이다. 농업 개방 문제가 불거질 때마
다 신문들은 해설기사나 사설·칼럼 등에서 "농업 살리기= 공산품 죽이기"식 단정보도로
'농민시위 호도', '농업 경시', '농업 무관심', '농업 전문성 결여' 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한 칠레FTA 비준 반대 고속도 농민시위 몸살"(중앙. 6.21), "농민 격렬시위 고속도
한때 마비"(국민.6.21) 등 시위나 교통 문제에 주목했고 국면이 국면이었던 만큼 농민 시위
를 집단 이기주의로 몰았던 <朝鮮>까지 농민의 죽음 앞에서는 "세계의 농업 앞에 몸 던진
농민 운동가"로 부각한 바 있다. 선정보도는 도를 넘어 해변 나체 시위 사진을 게재하기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국민.9.16).

최근 조류독감 관련 신문보도에서도 이런 관행은 지속되었다. "조류독감 인체 치사율 75%
넘을 수도"(조선 1.30), "조류독감 사망자 계속 증가, 에이즈보다 무서울 수도"(한국 1.29),
"대유행 땐 전세계 1억명 감염 예상"(파이낸셜 1.29), "조류 독감 인간감염 시한폭탄"(서울
1.30), "조류독감에 걸린 아시아 정치-경제 흔들"(동아 1.29) 등 외국 사례를 근거로 국내 상
황을 추측·과장·단정 보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언론, 생명존중 행복 추구권에 대한 대범한 시야 필요

특히 "닭·오리·쇠고기 기피…횟집 문전성시"(매경 1.30)라는 친구따라 강남가기 식 보도도
접할 수 있었다. 기자 자신이 타사 보도로 인한 마취제(탄환이론)에 맞은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지금 우리 나라 전국의 횟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30일 가족과 함께 모처럼 외식을 하고자 왕십리 시장, 남대문시장, 중부시장, 광장시장,
약수시장 등을 둘러보았다. 의외로 횟집은 잠잠했다. 물론 언론보도 영향과는 별개로 지속된
불경기 탓이라고 받는다. 또한 족발 뜯는 아줌마 군단을 보았고 호프집에서 닭꼬치 먹는 젊
은이들이며 설렁탕 집에서 소머리를 뜯는 술꾼들도 많이 보았다. 우리 가족 역시 치킨가게
에서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닭꼬치에 호프 잔도 기울이면서 말이다.

물론 일부 방송과 신문은 고기를 익혀 먹으면 괜찮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는 했다. 그러나 차
제에 조류독감과 광우병 등 농업 관련 보도 문제는 분명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어떤 사안을 왜곡하거나 감추어서도 안될 일이지만 언론 또한 외국 축산농가 사례를 지나치
게 과장하여 은연중에 대중들에게 국내 현주소인 것처럼 오도하는 바람에 농민을 두 번 세
번씩 죽이는 일은 시정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보도가 국민들의 사고를 뒤틀리게 만들고 소
비적 판단을 흐트러뜨려 국가경제는 물론 대외 신인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뻔한 일
이 아닌가.

아무리 가축이지만 죽어 가는 장면에 견딜 수 없는 가벼움으로 다가선 언론의 시각은 분명
지나친 것이다. 인간 생명만큼이나 짐승의 존귀함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국민의
행복 추구와 사회적 국가적인 파장도 고려하는 공공저널리즘에 근거한 언론의 대범하고 넓
은 시야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시야에서 진정한 대안과 비전이 제시될 것이다.

박상건(미디어비평지 오크노(OKNO)발행인·서울여대 언론학 강사)

(미디어오늘.인터넷 2004.02.02/신문 2004.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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