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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 길의 풍경

섬과 등대여행/섬사람들

by 한방울 2004. 2. 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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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귀경길 풍경 잊을 수 없습니다

가는 길은 아주 편했습니다
비행기로 내려서 렌트카로 쉬~~잉
고향 집 대문 앞에 당도했으니까요

첫날은 부모님을 모시고
완도항 어판장으로 갔습니다
각종 생선과 해삼 멍게 소라 등을 늘어놓고
자판대에서 칼질하는 아주머니들 모습이 파도처럼 싱싱했드랬습니다
광어 한 마리를 사서 쪼그려 앉아 먹고
주도(천연기념불 28호-오동도같이 생겼음) 앞을 서성이다가
귀가해 가족과 이야기꽃을 피웠드랬습니다

귀경 길...
갈 때는 목포행 비행기였으나
올 때는 광주발 비행기인지라
빨리 서둘러야 했습니다
우리가 집을 나서려자 작은집 식구들이 당도했습니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예의를 갖춘 게 그만....

렌트카 목포에서 반납하고
고속버스로 광주까지 갔습니다
다시 비행장으로 가야만 하는 코스인데

시골길은 이미 귀경전쟁이었습니다
남은 시간 30분
도저히 버스는 움직일줄을 몰랐습니다
도중에 내려서 택시회사 핸펀 두들기는데
아무 곳도 안받더군요
112
119
아무 곳도 도움을 못주더군요
이러다가 환자라도 발생하면...

결국 길 가는 차를 양해 받아 탔는데
도로는 똑 같이 엉금엉금
비행장 근처에 이르자
비행기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젠장....
머리를 긁고 있는데
우리 회사 우두머리가 내 뒤에 서있더군요
"너는 대기표냐?"
속도 모르고...

택시정거장으로 가서
"서울까지 얼마 받아요?"
"22만원이요"
비행기 값보다 많은 택시비...
그냥 돌아서는 나에게 그 택시 운전기사 하는말
"열차표도 있는데요?"
"얼마인데요?"
"1장당 6만원인데..저도 남아야 하니까..3만원은 얹어 주셔야..."
그러니까 15만원이란다..8만원짜리 열차표가 15만원이라....

우리는 일단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표가 없으면 관광버스라도 탈 요량이었다
애가 멀미가 심한지라 버스는 가능하면 안타려 했다
그런데 웬걸...버스표가 있었드랬습니다
우등은 없고 일반버스...일단 한숨을 길게 내 쉬고
점심은 4시30분에야 떡국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표는 매진되는 진풍경...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분으로 4시51분발 차에 올랐습니다
귀경전쟁은 호남고속도로 초입부터 시작됐습니다
휴게소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길게 늘어난 차량행렬
차 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화장실 가야 한다는 저 아우성....

결국 갓길에 멈춰선 고속버스
운전기사는 말했습니다
"여자분들은 저 산으로 올라 가시고..남자 승객은 대충 일을 보세요"
너나 할 것 없이 산으로 오르고 위에서 보든 말든 남자들은 갈기고....

가는 곳마다 차량행렬은 이어졌습니다
휴게소 쉬는 곳마다 "15분 후에 꼭 오세요" 라는 운전기사의 당부였습니다
그러나 15분 후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화장실도 식당도 모두 줄지어 있었으므로...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오징어 구이도 설 익고
튀김도 설익고
요금은 바가지
서비스는 온 데간 데 없고...

멀미 할줄 알고
나와 아내는 숨 죽이며 아들넘을 쳐다보며 가는 이중고통의 시간들
"엄마, 아빠? 우리 내기 하자?"
"뭘...."
"이 차 몇시간 걸리는지..."
방금 교통방송에서 광주-서울간 7시간 소요라는 말에 착안해
나는 12시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1시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2시라고 했습니다

버스는 강남고속터미널에 2시2분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은 아내에게 돈을 벌었습니다
아내는 정확히 약속대로 돈을 주었습니다
5천원짜리 2장
천원짜리 2장
하하하 이러다가 저 애 크면 경마장 다니는 것 아닐란지 모른다는 노파심까지 생겼습니다

그렇게 비행기로 1시간이면 올 거리를 시간에 못 맞춘 원죄로
9시간 고통의 업보로 고속도로를 울러메고 온 귀경길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을 거치지 않았다면
이번 설날 고생하는 사람들 속을 몰랐음으로...
균우도 멀미하지 않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음으로
우리는새벽 3시께 라면을 한그릇 끓여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여간 다시 서울살이를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그 제자리가 지겹습니다

하지만 어찌합니까?
고향과 서울 사이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작은 지혜라도 발견했으면 하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모두들 제 위치에서 바쁘지만 잠시라도 이녘을 지키고 가다듬을 수 있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기꺼이 일궈가는 묵은 새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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